결혼 10년차에 접어든 우리 부부에게 딸아이를 보육은 말다툼의 씨앗이기도 하다. 맞벌이를 하다 보니 시간은 없고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에 뭔가 해주고 싶은 마음은 더 간절하고. 하지만 정작 체력의 한계로 짜증을 내기 일쑤다. 하루 일과를 마무리 하는 저녁은 딸아이와 둘이 거의 보낸다. 퇴근이 늦은 아내를 기다리다 결국 혼자말로 짜증을 낸다. 아이는 놀아달라는 재잘거림은 귀가 멍할 정도다. 저녁 식사 준비에 정신없는 아빠의 참을성을 최대한 자극한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던 어느 날 아내와 결국 말다툼이 벌어졌다. 아이가 밥을 먹고 있는 동안에 말이다. 이래저래 다소 언성도 높아지니 아이도 불안해졌는지 숟가락을 내려놓고 가만히 쳐다본다. ‘그만해야지’라 생각을 하면서도 시동이 걸린 감정은 쉽게 조절이 되지 않는다. 10여 분간 할 말을 다하고서야 딸아이에게 “엄마 아빠 싸우는 것 아냐”라고 되지도 않은 위로성 거짓말을 했다. 눈을 끔뻑끔뻑하던 아이는 “엄마 아빠 싸우는 게 싫다”라는 말로 감정을 억제했다.

갑자기 조용해진 분위기에 아이는 불안해 할법한데 태연하게 다시 밥을 먹는다. 아빠 엄마도 따라 숟가락을 들고 일상으로 돌아온 듯하다. 역시 아이는 아이구나 싶다. 아주 오랜 기억을 되돌리고 되돌려 나의 그 시절을 살펴보니 부모의 말다툼은 그저 그런 것 정도였구나 싶다. 다행이다 싶은 생각도 잠시. 다시 여러 날이 지났다. 아직 시간 개념이 없는 딸아이가 문득 물었다. “오늘도 엄마 늦어” 왜냐고 물으니 “엄마 늦으면 아빠 화내잖아”라고 답했다. 이미 회사를 나서야할 시간이지만 아내에게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다. 늦는다는 뜻이다. 제 아무리 정신없이 일해도 정시 퇴근이 힘든 아내 상황을 잘 알면서도 매번 화를 내니 딸아이의 진단이 틀린 건 아니다.

그래도 애써 대범한척 “아냐, 아빠 화 안나”. 그리고 한 시간이 훌쩍 넘어 엄마가 도착하자 딸아이는 먼저 엄마를 보자 대뜸 왜 늦었냐고 화를 낸다. 아니 화를 내는 시슝을 한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 아빠의 화를 사전에 무력화시키기 위한 일종의 술책인 셈이다. (부모의 싸움에 대한 기억을)마음은 잊고자하나 머리가 계속 기억하려는 것을 딸아이 스스로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아닐까. 괜히 미안해지는 순간이다.

아이 앞에서는 장난으로도 싸우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느낀다. 물론 요즘에는 엄마 아빠가 티격하면 엄마를 이렇게 하고, 아빠는 이렇게 하라고 오히려 잔소리를 한다. 게다가 엄마가 늦은 날은 “엄마가 일이 많아 늦을 수도 있잖아. 그러니깐 아빠가 이해를 해줘야 하는 것 아냐”라며 아주 상세하게 엄마 입장을 대변해준다. 나름 부모 간 싸움을 막기 위해 여러 가지 방안을 마련해 둔 것이다.

부부가 티격 하는 이유는 정해져 있고, 현실적으로 그 이유를 해결하는 것을 쉽지 않은 상황에서 딸아이의 눈치까지 봐야 한다니. ‘싸우려면 싸워봐’란 아이의 선전포고는 아닐까.

그렇게 딸아이가 잠이 들고, 늦은 시간 전열을 가다듬고 전투를 이어가지만 이미 의지는 상실됐다. 아무것도 아닌 것에 괜히 감정만 내세워 딸아이만 불안하게 했다는 죄책감이 한정 없이 밀려온다.

아이들은 알까. 부모 대화의 90% 아니 99% 이상은 너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때로는 네 이야기를 하다 간혹은 싸울 수도 있어. 하지만 대부분은 네 이야기 때문에 더 없이 행복하다는 사실을. 이것을 안다면 아이들도 부모의 싸움을 조금은 덜 불안하게 바라보지 않을까.

저작권자 © 용인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