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추워 아이들과 집에만 있었다. 방학이 돼 여행을 가자는 얘기도 있었지만 바람이 세게 불고 기온이 뚝 떨어진 날씨에 어딜 가나 집만한 곳이 없다고 아이들을 달랬다. 이런 필자를 밖으로 나오라 손짓하는 소식이 들렸으니 바로 아랫녘에서 올라오는 꽃소식이다. 겨울철 꽃소식은 봄이 온다는 희망을 싣고 온다. 이 추위도 이제 얼마 후 작별을 얘기할 것이다.

이번에 들려온 꽃 소식은 자연의 숲이 아닌 공원이나 식물원, 수목원에서 살고 있는 중국에서 온 납매와 일본에서 온 풍년화였다. 이들은 낯선 땅에 와서도 잘 적응했고 이따위 추위쯤이야 하며 노란 꽃망울을 터뜨렸다. 이로 보아 이들의 조상은 분명 우리 땅보다 추운 곳에서 살던 꽃나무일거라 조심스레 유추해본다. 용인의 땅에 살고 있는 자생식물은 아직 꽃을 피울 시기가 아닌가보다. 조금 더 기다리라 한다.

처음 꽃을 봤을 때 어린 시절 장난기 가득한 추억이 떠올라 웃음 짓게 만들었던 풍년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한다. 풍년화는 2월부터 3월까지 꽃이 피는 나무로 중부지방에서 보는 꽃나무 중 가장 먼저 피는 꽃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첫 꽃망울을 터뜨린 시점에 대한 이야기가 관심 대상이다. 이는 기후변화와 관련이 있다. 그 날짜가 점점 빨라지고 있는 것에 예의주시하고 있는 셈이다.

잎이 나오기 전 노란 꽃망울부터 터트리는 풍년화는 아직 1년 농사가 시작되기 전 슬슬 계획을 세우고 준비를 해가는 시점인 이때 꽃이 활짝 피면 보는 이도 기분이 좋았을 것이다. 매년 꽃이 얼마나 예쁘게 풍성하게 피느냐에 따라 그 해 농사의 풍년을 점친다 해서 풍년화란 이름을 붙였다.

풍년화를 보면 꽃받침이 네 개로 갈라져있고 그 사이로 노란 꽃잎이 마치 국수 가락 같이 길게 뻗어있는 모습이 독특하다. 늦봄, 초여름에 피는 이팝나무 꽃과 꽃잎 모양이 닮았다. 그런데 더 들여다보면 이 꽃잎이 작았다가 점점 커지며 길게 자라난 것이 아니라 이미 긴 꽃잎이 꽃봉오리 속에 빙글빙글 감겨서 웅크리고 있다가 기지개를 펴듯 감긴 것이 풀리며 피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치 어린 시절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 중에 ‘삐에로피리’라 해서 입에 물고 훅 불면 돌돌 말려있던 비닐 튜브가 길게 뻗어져 나가고 불지 않으면 다시 돌돌 말리는 그것과 정말 똑같다.

우리가 풍년화라 부르는 것은 1930년대 일본에서 처음 들어온 노란 꽃 피는 풍년화이다. 그 후 중국, 미국 등의 풍년화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그래서 노란색 꽃잎을 가진 풍년화도 있고, 붉은색 꽃잎을 가진 풍년화도 있다. 심지어 봄에 피지 않고 가을에 피는 풍년화까지 다양한 풍년화들이 이 땅에 살고 있다. 그러나 아직 숲에서 자라는 풍년화는 본 적이 없다. 대부분 공원이나 식물원 등에서 기르고 있는 나무들이다. 추위와 공해에 강해 제주부터 중부지방까지 관상용이나 조경용으로 많이 심고 있는데, 평소에는 눈에 띄지 않다가 겨울에 꽃이 피어서야 자신의 존재감을 알린다. 역시 꽃은 나무의 명찰이다.

우리나라에서 아직 풍년화 쓰임에 대해서는 연구나 알려진 바가 미흡하지만 미국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아온 나무였다. 영어로는 ‘위치 헤이즐(witch hazel)’이라고 한다. 직역하면 마녀의 개암나무란 뜻인데 왜 그런 이름이 붙었는지 궁금하다. 열매가 개암나무 열매처럼 생겨서 그런 건지, 향이 좋아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오래전부터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피부질환에 사용했다고 하고 풍년화 식물 이름인 학명에서 따온 ‘하마멜리스’란 이름으로 피부상처 치료용 연고 등으로 많이 쓰였다고 한다.

아직 추위가 떠난 것은 아니지만 연이어 꽃소식이 들릴 것이다. 또한 이를 시샘하는 꽃샘추위도 기다리고 있다. 그래도 마음이 가벼워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우리도 자연의 일부로 봄을 기다리고 있는 마음은 나무와 같을 테니까.

저작권자 © 용인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