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으로 놀아보는 알싸한 맥주 이야기

맥주 이야기 연재를 시작하며

보기에도 간지 나고 캐주얼한 청바지가 인류의 가장 오래된 옷이라고 한다면 믿을 수 있는가? 내가 살고 있는 집이 가장 오래된 주거 형태라고 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겠는가? 현대를 살고 있는 나와 고대를 살았던 조상들의 삶의 양식에서 오랜 세월에도 변함없는 무언가가 있다면, 거기서 우리는 오래된 유럽의 고풍스러운 거리를 걷는 듯한 멋스러움과 예스러움을 느낄 것이다.

대부분의 의식주는 그날이 그날 같이 큰 변화가 없는 듯 보여도 시대와 지역과 기술의 발전에 따라 계속해서 진화를 거듭해왔다. 하지만 맥주(곡물로 만든 술)는 유구한 세월 속에서도 큰 변화 없이 인류의 역사와 궤를 같이 해온 몇 안 되는 아이템 중 하나이다. 곡물과 효모와 물을 사용하는 기본적인 제조법과 내용을 오롯이 간직한 채 모든 술의 프로토타입(시제품)으로써 뿐 아니라 그 자체로도 변함없는 사랑을 받아 온 것이다.

이는 맥주가 단순한 기호음료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요즘이야 맥주를 어디에서나 쉽게 마실 수 있는 음료 정도로 여기지만 인류 역사에 있어서 맥주는 음료 이상 당당한 음식이었다. 맥주를 액체로 된 빵이라고 부르는 것도 맥주가 단순한 기호를 넘어서는 생필품의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맥주는 노동을 할 때 갈증 해소와 배고픔을 달래기 위한 중요한 에너지원으로 애용됐다. 이와 동시에 공동체 문화의 정점인 모든 의식과 축제에서 맥주는 빠질 수 없는 문화 필수품이기도 했다. 맥주는 생리 욕구 해소를 위한 생필품 이상으로 인간 존재의 의미를 담을 수 있는 하나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인류 최고의 서사시인 수메르의 길가메시 서사시(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서사시, 반신반인 길가메시를 주인공으로 한 문학작품) 맥주를 마신다는 것을 인간이 되는 길의 하나로 그렸다. 내용인즉, 왕이었던 길가메시는 야생에서 짐승처럼 살고 있는 신비한 존재 엔키두를 자기 편으로 만들기 위해 창녀를 보낸다. 빵을 먹을 줄도, 맥주를 마실 줄도 몰랐던 엔키두에게 창녀는 이렇게 말한다.

“빵을 먹어라, 그게 삶이니라. 술을 마셔라. 인생살이란 게 그런 것이다.” 그래서 엔키두는 배가 부르도록 빵을 먹었고 커다란 잔을 가득 채운 맥주도 일곱 잔이나 마셨다. 그러자 속이 풀리며 기분이 좋아졌고 심장이 즐겁게 뛰었으며, 얼굴이 환하게 빛났다. 이제 엔키두는 더러웠던 몸을 물로 씻고 향유를 바르며 창녀와 며칠 밤을 새운다. 그리고 엔키두는 드디어 인간이 됐다는 것이다. 이 고대 이야기가 뜻하는 것은 고대인들에게 있어서 동물처럼 살아가던 엔키두가 길가메시라는 당시의 문명인과 한편을 이루고 인간다운 인간이 되는데 맥주는 필수 불가결한 조건이었다고 본 것이다.

이처럼 맥주라는 주제는 인간으로서 삶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긴밀한 한 축을 형성해왔다. 그러기에 맥주를 인간에 대해 탐문하는 ‘인문학’의 한 영역으로도 다뤄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처음 맥주에 대한 연재를 요청받았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제목은 ‘맥주 인문학’이었다. 요즘 뜨는 인문학의 열풍에 편승해 맥주를 풀어내 보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이내 드는 마음은 ‘맥주를 인문학씩이나 할 필요가 있을까’ 라는 의문이었다.

가벼움을 숭상하는 현대의 문화 속에서 맛있게 즐기는 맥주를 고답한 학문의 영역으로 밀어 넣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도 없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제목으로 정한 것이 ‘맥주 입문학(口文謔)’이다. 맥주는 입으로 마시며 즐기는 것이니 알싸한 맛의 맥주 이야기(文)를 입으로 풀고 노는 모양새(謔)면 족하다는 마음에서였다. 누구나 좋아하는 맥주 한두 개쯤은 있고 수를 알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수입 맥주를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요즘, 늘 마시는 ‘맥주’에 새로운 낯빛을 들추며 맛있는 맥주의 세계에 입문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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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부터 맥주의 역사부터 어떻게 맥주를 더 맛있게 마실 수 있는 지까지 맥주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맥주 입문학을 연재하는 허준영씨는 하늘닮은교회 담임 목사로 작은씨앗도서관 관장, 주거권기독연대 공동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마을 수제맥주학교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는 허준영씨가 전해주는 맥주 이야기로 독자를 만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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