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상해 보니 그 옛날이 아득히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8·15 해방의 기쁨도 잠시, 민족의 비극 6·25 전쟁으로 폐허가 된 이 나라에 희망으로 다가오는 것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1960년대 초 우리나라 국민소득은 미화 83불, 북한은 92불이었으니 부존자원이란 전무한 세계에서 손에 꼽히는 빈국으로 아프리카 소말리아가 따로 없었습니다. 척박한 고향 땅에서 재래농법으로 농사지으며 가을 추수한 빈 들판을 바라보며 언제쯤, 어떻게 하면 이 나라는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 사람답게 사는 날이 오려나 걱정하시며 한숨 쉬던 부모님 생각을 떠올립니다. 그래도 “배워야 한다, 알아야 산다”는 대한민국 부모님들의 교육에 대한 열정과 뜨거운 일념으로 논밭 팔고 소 팔아 서울로, 해외로 유학을 보낸 부모님들이 계셨기에 대한민국의 오늘이 있었다고 확신합니다.

민족의 미래를 걱정하며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자는 국가지도자의 신념으로 새마을운동을 일으키고, 외국 차관을 들여와 경부고속도로를 놓고, 수출만이 살길이라는 수출국을 천명하면서 머리카락을 모아 가발을 만들고, 수제인형을 만들어 수출하는 등 눈물겨운 시절을 보냈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피눈물 나는 노력과 온 국민들이 혼연일체가 돼 마침내 한강의 기적을 이뤄내고 온 세상이 깜짝 놀라는 대한민국을 우뚝 세웠습니다. 통계적으로 인구 5000만 명 이상 국가 중 GNP 3만불 시대를 여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7번째라고 합니다. 열악한 농·수산업에서 과감히 박차고 일어서 중공업·중화학공업·철강·반도체·자동차·선박·IT산업을 주도하고 급속하게 변화와 변천을 거듭하면서 명실공히 제4차 산업혁명을 선도하며 세계인들이 경이의 눈빛으로 대한민국을 바라봅니다.

건국 이후 격랑의 물결 속에서 정치 민주화를 이뤄냈고 법치의 정리로 사회 안전망을 구축하고 교육제도를 개발해 발전시켰습니다. 국민의 복지향상 특히, 의료시스템을 선진국 대열에 정착시켰습니다. 이 모두 우리 국민들 특유의 부단한 끈기와 열정, 인내와 민족적 긍지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용인시도 수도권의 배후 외곽 도시로 마침내 상주인구 100만 명이 넘는 중견 도시로 부각되고 있어 자랑스럽고 자부심을 갖습니다. 한때 용인시 재정 상태가 경기도의 하위권에 맴돌아 시의 부채가 수천억을 상회해 시민들이 불안해했는데 정찬민 시장 취임 이후 부채를 청산하는 커다란 업적에 찬사와 격려를 보냅니다. 빚이 없는 행복도시 용인은 지형적으로나 산천이 자연 그대로 잘 보존돼 있어 제일 살고 싶은 도시로 인구에 회자하고 있습니다. 생각만 해도 행복하고 마음부터 부자가 됩니다.

용인은 조부를 비롯, 선대께서 대대로 생을 마칠 때까지 이곳에서 사셨고, 형제 남매들이 자라고 공부하며 살아 왔기에 용인은 영원한 나의 고향입니다. 필자 또한 이제 고향 지킴이로 살고 있습니다. 고향 분들과 어울려 마을 발전을 위한 토론을 하고 노인회장으로 봉사할 수 있는 행운도 차지했습니다. 마을 주민들의 화목과 협동, 건강증진을 위해 게이트볼과 그라운드골프도 즐기고 있습니다.

이번에 여러 분의 추천으로 자랑스러운 명예 용인시장으로 위촉돼 봉사하는 영광을 갖게 됐습니다. 생각만 해도 흐뭇하고 보람있는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문득 우리나라 개화기 초 김옥균·박영효 두 젊은 대신을 떠올립니다. 어서 우물 안에서 뛰쳐나와 새로운 서양문물을 깨우치자는 개혁과 변화를 주창하면서 ‘진충보국(충성을 다해 나라에 보답하자)’은 외침이 멀리서 메아리 되어 오는 밝은 아침입니다. 미천하지만 여생을 용인시민을 위해, 용인시민과 함께, 용인에서 살다가 봉사하며 생을 마칠 것을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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