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한라봉 씨를 심었는데 날카롭고 긴 가시를 단 탱자나무가 나왔다. 아이들 키우는 집에 가시가 있는 식물을 놓는 게 아니라고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아이들 먼저 생각하시는 생활 지혜에 감탄하며, 내 짧은 생각을 반성하며 얼른 뽑아버렸다. 꽃도 보고 열매도 보면 좋았을 텐데, 약간 아쉽다. 우리나라에서 귤, 한라봉, 천혜향 등 귤 종류는 탱자나무에 주로 접을 한다. 탱자나무를 많이 재배하는 이유이다. 그래서 감나무 씨를 심으면 대목인 고욤나무가 나고, 한라봉 씨를 심으면 탱자나무가 난다. 탱자나무는 줄기 전체가 초록색이다. 잎이 져도 줄기로 광합성을 할 수 있는 좋은 전략이다. 대개 나무들도 어린가지는 초록색으로 나지만 점점 초록색이 사라지면서 연한 가지가 단단한 나무로 변하는데, 특이하게도 이 나무는 초록색 그대로 단단해 진다. 키가 많이 크지 않는 나무이고 줄기와 긴 가시가 빈틈없이 자라나 산울타리로 손색이 없다.

필자 고향에는 아직도 탱자나무 울타리를 밭 경계로 심어놓은 곳이 많다. 고향에 갈 때면 항상 집 뒷산에 있는 밭에 간다. 석회암지대라 집으로 돌아올 때면 붉은 진흙이 신발에 잔뜩 묻어오지만, 이것저것 볼 것이 많아 아이들 데리고 산책을 겸해 다녀올 때가 많다. 탱자나무도 그 곳에서 보고 싶은 나무 중 하나이다. 봄에 가면 무서운 가시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청순한 꽃이 핀다. 가을에 가면 노랗고 예쁜 열매를 볼 수 있다. 향기도 참 좋다. 귤과 비슷한 향이지만 좀 덜 달고 상큼한 향이 난다. 좀 더 자연의 향이다. 탱자 열매는 살구처럼 잔털이 보송보송하다. 먹지는 못하지만 덜 익은 열매를 약재로 쓴다. 이 나무의 빽빽한 가지 사이에선 참새나 오목눈이들처럼 작은 새들의 날개소리, 지저귀는 소리를 자주 들을 수 있다. 매나 고양이, 사람들을 피해 숨어 있는 것이다. 너무도 푸근한 고향의 소리이다.

귤은 따뜻한 지역에서만 살 수 있지만 탱자나무는 추위도 잘 견딘다. 북한 개성시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탱자나무가 있다. 하지만 탱자나무는 우리나라에 자연적으로 생긴 군락은 없다고 한다. 심으면 살 수 있지만 씨가 자연적으로 발아하지 않는 모양이다. 중국, 우리나라, 일본에 분포하고 중국이 원산지라고는 말하지만 뚜렷한 근거는 없다. 탱자나무는 우리나라에서 귤의 대목으로 사용할 만큼 이 곳 환경에 잘 맞는 고유종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사람의 도움 없이 자연적으로 살 수 없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우리나라 자연환경이 자손을 퍼트리기에 적당하지 않은 모양이다. 더 따뜻한 곳이 고향인 나무인가, 조심스럽게 추측해본다.

요즘은 제주도뿐 아니라 전라남도, 경상남도 등 남해안 지역에서도 노지에서 귤을 키운다. 식물이 살아가려면 최저기온이 얼마이냐가 중요한데, 귤은 최저기온이 섭씨 영하 5도 이하로 내려가지 않는 따뜻한 곳에서 산다. 우리나라가 얼마나 따뜻해진 것일까? 예전엔 ‘귤’하면 당연히 제주도였는데, 지구의 기온이 올라가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 됐다. 기원전 3000~6000년 전에 지구 기온은 지금보다 평균 2~3℃ 높았다고 한다. 혹독한 빙하기가 지나고 식생이 풍부했던 그때는 낙엽활엽수림대가 지금보다도 더 넓었다. 온난한 기후는 여러 생물이 살기에 좋은 환경이었을 것이다. 기온 변화는 오랫동안 계속된 현상이다. 하지만 요즘 기온이 변화하는 속도는 좀 생각해볼 과제이다.

저작권자 © 용인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