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성이 제보전화를 걸어 왔다. 자신이 경비로 근무하고 있는 아파트에 심각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정신질환으로 보이는 한 여성이 하루가 멀다 하고 괴성을 지르며, 그 집에서는 악취와 바퀴벌레가 창궐해 인근 주민들이 피해를 호소하고 있는 내용이었다. 지난해 11월 ‘용인 기흥구 임대아파트 현장, 방에서 텐트 생활해야 하는 주민의 절규’란 제목의 기사 취재는 그렇게 시작됐다. 2주간 수차례 주민을 만나고 피해 상황을 들었다.

유달리 대면을 외면해오던 당사자를 취재하기 위해 발품을 팔았지만 쉽지 않았다. 2회에 걸친 보도가 나가고 다소 변화가 생겼다. 하염없이 괴성을 지르던 여성은 병원에 입원했으며, 집안 쓰레기 더미는 조금씩 정리되고 있단다.

변명을 한다면 취재를 하다보면 특정 사안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표하는 것은 쉽지 않다. 마음은 그렇지 않는데 보도 이후 연락한번 해야지 하면서도 그때뿐이다.

이번 취재도 그랬다. 2개월 여간 약간의 변화가 있긴 하지만 어찌 보면 근본적인 변화가 없는 현실에 기자는 그저 “할 노릇은 한 것 아니냐”는 타협점을 찾았을지도 모른다.

기자의 양심마저 마비시킨 안일함은 한 통의 전화로 깨졌다. 마지막 보도가 나간 지 일주일여가 지났을까. 시청자가 궁금해 하는 이야기를 잘 기획해 호평 받고 있는 한 방송국 작가란다. 그 통화를 시작으로 2달여 동안 방송국 4곳에서 기사와 관련된 문의전화를 걸어왔다. 지금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으며,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은 도와주겠단다.

기자에게 기사는 인고의 결과물이다. 특히 최소한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사안은 각고의 과정이 더해져 감정이입이 남다를 수밖에 없다. 때문에 기자의 결과물에 응답을 보낸 방송국이 고맙기도 했다. “너희들이 도움을 주겠다며 손을 내미는 마음 선한 취지 그대로 받아줄게” 물론 인근 주민들이 더 이상 알려지는 것보다 조용히 처리되길 바라는 심정에 모든 취재는 고사됐다.

취재 과정에서 주민들은 말했다. 흔히 말하는 큰 신문사에 연락도 해봤고, 경찰, 관공서, LH까지 자신들이 겪고 있는 불편을 호소할 수 있는 곳은 다 타전해봤다고. 허나 돌아오는 건 해줄게 없다는 무표정한 답변에 매몰차게 외면하는 시선뿐이었단다. 이런 상황에서 <용인시민신문>은 어쩜 절박한 심정을 담을 수 있는 유일한 그릇이었을지 모른다. 누구라도 당시 주민을 만나 잠시라도 대화만 해봤다면 그 절박함을 여실히 느꼈을 것이다.

“역시 미디어가 무섭네요. ㅠㅠ 기자님께서 기사내주시고 하니까 또 이렇게 연락이 오고 ㅎㅎ 감사합니다. ^^”

방송국이 이 사안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도와주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는 연락에 한 주민이 보낸 답변이다. 조잡한 기사였지만 절실한 심정을 담아준 것 자체에 과한 반응을 보여준 것으로 이해하고 싶다.

그리고 며칠 전에는 임대 아파트 관리감독 기관 한 관계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기자님. 혹시 ◯◯◯방송국에서 연락 왔었어요?. 사무실에 기자님과 통화 후 제게 전화를 했다는 메모가 남겨져 있어서요”

앞서 해당 프로그램 작가와 통화에서 정확한 사안은 관리기관에 문의하라는 기자의 충언(?)을 실천한 모양이다.

착잡했다. 방송국이 저마다(물론 시청률 상승이라는 속내가 있겠지만) 도움을 손길을 내밀고 있을 그 때 용인 지역사회는 이 사안을 알고 있었을까. 그렇다면 무엇을 했을까. 아니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방송국에서 걸려온 전화 한통에 과민한 반응을 보인 해당 부서 관계자님은 앞서 주민들의 절실한 요구에는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취재 당시 기억 한 장면. 한 여성이 절규에 가까운 괴성을 지르고 수년째 고통에 시달리던 인근 주민들이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고, 기자가 카메라를 들고 취재를 하고 있을 때. 스쳐 지나가는 한 무리가 말을 건넸다.

“혹시 궁금한 이야기를 제작하는 방송국에서 나왔어요?”

“아니”라는 답변에 잠시 머뭇되더니 이내 가버린다. 그때 그들이 물어야 했던 것은 “무슨 일이에요”였다. 그게 관심의 시작이며 인구 100만 대도시 용인 공동체를 만드는 뼈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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