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식물원이나 수목원을 가보면 관람객의 흥미를 끌기 위해 만들어지는 곳 중 하나로 미로원을 꼽을 수 있다. 장소의 특색에 맞게 나무를 빽빽하게 심어 담장을 만들어 미로를 만드는데 이때 대표적으로 많이 심는 나무가 측백나무이다. 이는 생울타리로 많이 쓰였던 측백나무의 특성을 살린 예이다. 그러나 처음엔 계획해 묘목을 심었건만 시간이 지나며 군데군데 누렇게 말라 죽어버린 측백나무를 보게 된다. 안타깝다.

그래서 그런가, 어느 순간 우리 측백나무보다 미국에서 들어온 서양측백나무를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게 됐다. 공원이나 아파트 정원 등에서 보는 측백나무들 대부분이 서양측백나무이다. 좀 더 생존력이 강해서라는 경제적 이유가 그 원인이라 생각된다. 그러던 와중에 기흥구 동백동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울타리로 측백나무를 죽 심어놓은 것을 보며 어찌나 반갑던지.

측백나무는 우리나라와 중국에 많은 나무이다. 우리나라 천연기념물 1호가 대구의 측백나무숲인데 1934년에 처음 지정돼 지금까지 이르고 있다. 이 외에도 충북 단양이나 경북 안동, 울진과 같은 석회암지대에 많이 자생한다고 해서 석회암지대 지표식물로 여긴다. 자생지에서는 대부분 사람들이 잘 오를 수 없는 절벽에서 자란다. 환경이 맞으면 키가 25미터 직경 1미터까지 크게 자란다.

측백나무 이름에 대해서는 말이 많다. 측백(側柏)나무의 측은 곁을 얘기하는 측자와 측백나무 백자로 이뤄져 있다. 측백나무 ‘백(柏)’자를 풀어보자면 오방색 중에서 서쪽을 상징하는 색인 흰색을 뜻하며 ‘측’자로 인해 서쪽, 즉 흰색을 향해 기운 나무라는 의미로 해석한다. 그런데 이 ‘백’이라는 글자가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두 가지 나무를 한꺼번에 담아 버렸다. 즉 측백나무를 부를 때와 잣나무를 뜻할 때도 모두 이 백자를 쓰게 된 것이다. 소나무와 함께 이야기하며 송백이라는 단어로 많이 쓰이는데 이로써 이것이 측백나무인지 잣나무인지 헷갈리게 됐다. 다만 중국에서는 측백나무와 잣나무를 구분해 썼다는 것이다. 그래서 <논어>의 ‘子曰 歲寒然後知松栢之後凋(자왈,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의 구절은 ‘날씨가 추워진 후에야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늦게 시든다는 것을 안다’에 등장하는 ‘백’은 잣나무가 아니라 측백나무라는 것을 알뿐이다. 이와 비슷한 고사성어로 ‘설중송백’이란 말도 있는데 이도 같은 맥락으로 봐야 할듯하다.

측백나무 껍질은 세로로 갈라지고 큰 가지는 적갈색이며 일년생 가지는 녹색이다. 그런데 이 가지는 잎과 구별이 뚜렷하지 않고 비슷하게 생겼다. 봄이 되면 이러한 잎처럼 생긴 작년 가지 끝에 꽃들이 달리는데 수꽃은 작은 장미꽃송이마냥 생겼고 암꽃은 선인장 열매 중에 용과라하는 열매와 닮았다. 꽃 색깔은 옅은 갈색을 띈다. 처음 열매가 달릴 땐 초록색으로 둥근 모양에 울퉁불퉁 뿔이 달린 듯한 모양이다가 가을이 돼 갈색으로 익으면 열매가 틈새가 갈라지며 벌어진다. 그 사이로 씨앗은 떨어지게 된다. 겨울에도 열매가 달려있는 경우가 많다. 어쩔 땐 봄에 꽃이 피는데 아직도 지난해 열매 껍질이 달려있는 경우도 있다.

중국에서는 측백나무를 왕조의 번영을 상징하는 나무로 삼았다. 황제의 정원에 있는 측백나무는 정성껏 가꾸어져는데 측백나무가 무성하게 자라면 나라도 번성할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나라도 망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왕족의 묘지에도 측백나무를 심었다. 또한 태평양 연안의 인디언들도 자신들을 지켜줄 것으로 믿으며 가장 큰 측백나무를 골라 조각하고 장식해 토템기둥으로 세웠다. 나무에 대한 느낌은 지역과 인종을 뛰어넘는가보다.

저작권자 © 용인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