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르니에가 개발한 신생아 인큐베이터

중국을 통일한 진시황제는 북쪽에 흉노족을 몰아내고 긴 성을 쌓았다. 만리장성으로 불리고 있는 이 건축물을 만들기 위해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동원됐다. 많은 사람들이 동원돼도 긴 성을 만드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고 일하는 사람들의 기본적인 식량 보급도 아주 큰일이었다.

모든 사람들의 먹을 것을 운반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일부는 현지에서 조달했다. 식량 보급을 위한 획기적인 방법이 개발됐는데 바로 달걀을 대규모로 부화시켜 병아리를 사육하는 것이다. 엄청나게 많은 달걀을 따뜻한 아궁이 위에 놓고 보호하면 어미닭 없이도 부화돼 병아리가 되었던 것이다.

동양뿐 아니라 서구에서도 비슷한 형태의 달걀 부화기가 개발돼 사용된 곳이 있었는데 바로 이집트 피라미드 건설현장이었다. 이집트인 역시 피라미드를 건축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위해 달걀 부화기를 사용했다. 진흙 벽돌로 만들어진 거대한 가마에 달걀을 놓고 적당한 온도를 유지했다. 그 결과 수만 개의 달걀이 동시에 부화돼 병아리를 키울 수 있었다. 대규모 부화 장치를 이용한 동물 사육 방식은 중세를 거쳐 현재에도 많은 축산농가에서 활용되고 있다. 인공 부화기는 의학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1870년 프로이센과 전쟁에서 패배한 프랑스는 큰 인명 피해가 발생했고 출산률 저하로 인구감소에 직면했다. 특히 경쟁국인 독일의 절반밖에 안 되는 출산율은 인구가 국력이던 시절 매우 큰 문제였다. 전쟁 후유증과 사회불안 등으로 산모들은 스트레스를 받았다. 10개월을 다 채우지 못하고 미리 태어나는 조산아들은 저체온증, 감염, 영양 부족으로 대부분 사망했다. 의료진은 아이들을 위해서 깨끗하게 하고, 모유 수유를 권장하면서 따뜻한 담요로 감싸줄 뿐이었다. 당시 의학계는 조산아들을 위한 치료 방침을 내놓지 못하고 있었다.

의사들이 조산아들에게 본격적으로 손길을 내밀기 시작한 획기적인 전환점은 인큐베이터 개발이었다. 1880년 프랑스의 타르니에는 파리 동물원을 방문했다가 병아리 부화기를 관람했다. 달걀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해 병아리가 부화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방법은 신생아들의 가장 큰 사망원인 중 하나였던 저체온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타르니에는 곧 뜨거운 물을 바닥에 두고 나무로 만든 아기요람을 위에 두어서 따뜻한 온도가 유지되는 인큐베이터를 개발했다.

타르니에의 인큐베이터는 66%에 이르던 조산아 사망률을 절반 가까운 38%까지 낮춰 수많은 신생아들의 생명을 구했다. 새로운 인큐베이터는 의료계의 주목을 받았고 여러가지 개량형이 나타났다. 인구 문제에 관심이 컸던 프랑스 정부는 아낌없는 재정 지원을 했고, 1893년 파리에서 인큐베이터를 갖춘 전문병원이 설립됐다.

인큐베이터를 갖춘 전문병원의 신생아실은 큰 기대와 달리 재앙이었다. 사망률은 75%까지 치솟았고 대부분의 신생아는 병원에 입원한지 하루 이틀 만에 사망했다. 가장 큰 원인은 집에서 출산한 조산아를 병원으로 이송하는 과정에서 저체온과 감염이었다. 타르니에가 은퇴하자 높은 사망률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고, 정치권은 조산아 치료보다 예방하는 쪽으로 정책을 바꾸려고 했다.

나무로 만들어진 인큐베이터는 감염에 취약했다. 타르니에와 같이 인큐베이터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프랑스 의사 부딘은 아픈 아기를 격리하고 멸균된 우유를 사용하며 손 씻기를 강조하는 세심한 접근 방법을 시도했다. 신생아실을 주의 깊게 관찰하던 부딘은 신생아실에 엄마가 자주 방문할수록 생존률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신생아실 인큐베이터라는 낮선 환경에 엄마의 손길이 보다 편안함을 주었던 것이다. 부모로부터 격리됐던 신생아실은 모유 수유를 위해 개방됐고 이후 신생아 사망률은 조금씩 줄어들었으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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