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가을 무렵. 아직 세상물정 잘 모르는 딸 아이 운동회에 갔다. 아내가 셋밖에 되지 않은 가족, 단합을 잘해야 한다며 같은 색 옷을 입혀줬다. 일종의 가족 간 깔맞춤을 한 것이다. 어림잡아 수십 팀이 참석했지만 깔맞춤은 우리가 전부다. 아내의 꼼꼼한 배려가 빛을 내는 순간이다. 

2년 내리 출근도장을 찍으면서도 늘 피하고 싶은 종목이 있다. 달리기다. 학창시절 고향에서는 내로라하는 날쌘돌이였다지만 하세월을 어찌하겠나. 이제야 생각하건데 육상은 애당초 기록경기가 아니었을지 모른다. 그저 기록과는 무관하게 달리는 무리 중 맨 먼저 들어오면 되는 것. 그렇게 기록과는 무관한 달리기 종목 중에도 특별히 애정이 가는 것은 아이와 함께 하는 2인3각 경기다. 

아이와 키 차이가 점점 줄고 있다지만 여전히 허리춤 정도인 상대와 보폭을 맞춰 달려 나간다는 것은 쉽지 않다. 한발 내딛기도 힘든 상황. 고작 50여 미터 정도 되는 거리를 달리는데 넘어지고 일어나길 수차례. 중간 중간 밀가루가 가득 묻은 사탕을 손 안 대고 먹어야 하는 무시무시한 장애물까지 있다. 단합을 보여주기 위해 옷까지 맞춰 입은 노력이 다소 퇴색된다. 주위 사람들의 웃음소리는 아이와의 엇박자와 정곡선을 그린다. 넘어지고 헛발길이 더해질수록 주위 소리는 더 냉혹해지는 듯하다. 그 소리 정중앙에는 귀에 익은 목소리가 있다. 아내다. 이쯤 되면 아이를 안고 냅다 달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뻘겋게 타오른 눈빛으로 아이를 쳐다본다. 웃고 있다. 신나해 한다. 무엇보다 결승점을 쳐다보며 달리고 있다. 넘어져도 ‘스스로 펜’처럼 벌떡 일어나 다시 자세를 잡는다. 안되겠다. 아이만 보며 달리자. 특별히 변한 건 없었다. 반을 지나 되돌아오는 길. 다시 넘어지고, 넘어지고 넘어졌다. 근데 이상하다. 익숙해진 걸까. 넘어져도 툭툭 털고 일어나 아이의 손을 잡고 ‘하나 둘’, ‘하나 둘’을 외쳤다. 아이가 제법 구령에 맞춰 발을 내 딛는다. 속도라고 하기에도 뭐하지만 조금 빨라졌다(고 말하고 싶다). 그저 우리 모습에 ‘깔깔’ 웃는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제각각 가족을 응원하는 목소리란 것도 그제야 알았다. 아이보다 한 뼘 정도 큰 한반 친구들에게 완패 했지만 올해는 기대해본다. 아이의 키도 훌쩍 클 것이며, 무엇보다 불가능해 보이기만 했던 하나 됨이 기대 이상으로 성과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2018년이 시작됐다. 많은 새로움과 함께. 그중 하나는 바로 지난해 큰 폭으로 오른 최저임금이다. 시간 당 7000원을 조금 넘는 인건비를 지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2016년에 비해 1000원 이상 인상됐다. 그래서 일까. 중소·영세 상공인들은 인건비 지출에 힘겨워 하고 있다는 소리를 직 간접적으로 들을 수 있다. 기자가 만난 상공인들 역시 한숨을 먼저 내쉰다. 버겁다는 소리도 이어졌다. 그럴 것이다. 장사도 고만고만한데 인건비를 더 올려줘야 한다니. 한명의 제자와 함께 도장을 운영하고 있는 한 청년. 올해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된다. 

도장 사무실 일을 도맡아 해온 아내마저 다음달부터는 태교에 들어간단다. 직원 한명이 더 필요한 상태다. 하지만 이이는 월 20만원을 올려줘야 하는 제자 임금도 솔직히 부담스럽단다. 4대 보험에서부터 국가에서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이 뭐가 있는지 알려달라는 30대 관장은 최저 임금은 넘어야 할 산이라며 다소 버거운 시간을 보낼 채비를 하고 있다. 

30대 관장과 제자간의 2인3각 경기가 시작된 듯하다. 임금을 두고 자본가와 노동자간의 개념 차는 어른과 아이의 키 차이 보다 더하기에 분명 이들이 길을 가다보면 넘어지기도 할 것이다. 

가다보면 밀가루가 가득 묻은 사탕보다 더 험한 장애물도 즐비할 것이다. 관장도 제자도 각각의 이견에 그냥 포기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제 아무리 옆에서 이겨내라고, 힘내라고 응원해도 귓등을 넘을 수 있겠나. 정말 힘든데 힘들단 소리도 못하는 30대 관장에게 하고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올 8월 출생할 아이가 자라 언젠가 노동의 대가를 받을 때. 그 아이는 어떤 생각을 할까. “이게 다 우리 부모님 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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