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 평화의 소녀상 설치 4개월…방향 찾아 나서다

‘꽃다운 나이에 일제의 침략전쟁에 끌려가 인간 존엄성 파괴와 여성인권 말살의 고통을 온 몸으로 겪은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을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용인시민의 이름으로 쓰여진 평화의 소녀상 평화비 문구는 이렇게 시작한다. 소녀상이 세워진 이유를 가장 잘 담고 있는 문구다. 아픈 치욕의 역사를 기억하고 그 의미를 더 많은 시민들에게 알리고 되새기겠다는 목적으로 세워진 소녀상이다. 하지만 설치 후 반년이 다 되가는 지금 용인은 목적을 이뤄가고 있을까. 용인 평화의 소녀상을 역사 바로 세우기 현장으로 만들어나갈 2018년을 위해 현재를 돌아보고 성남시와 원주시 사례를 통해 미래 방향과 방안을 들여다본다.

시민들의 힘으로 세워진 소녀상…지금은 

지난해 8월 15일 시청광장에 설치된 용인 평화의 소녀상은 시민 756명, 74개 단체의 후원과 참여로 세워졌다. 제막식 당시 평화의 소녀상 주인이 시민임을 강조하기 위해 내빈들이 헌화를 하고, 일반 시민과 청소년이 축사를 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추진위 실무대표를 맡은 오영희 공동대표는 제막식에서 “미래세대의 교육의 장이 되기 위해 지속적인 시민들의 참여와 관심이 중요하다”며 “시민들이 주체가 돼 건립된 소녀상은 관리주체가 시민이 돼야 하고 시청의 주인도 소녀상의 주인도 시민이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소녀상이 설치된 지 5개월이 넘은 지금 용인 평화의 소녀상은 수많은 시민들이 뜻을 모았던 그 의미를 잘 담아가고 있을까. 
소녀상 설치와 함께 건립추진위원회가 해산되고 관리위원회가 꾸려졌지만 현재 남은 위원은 5명에 불과하다. 일각에서는 당초 추진위가 소녀상 옆에 세울 계획이었던 모금 참여 시민 명단이 담긴 이름표 조형물 설치가 시 관련부서 불허로 무산된 데에 이유를 찾고 있다. 소모전에 동력을 잃었다는 것이다. 현재 이름표 조형물은 시와 관리위 간 협의를 통해 설치안이 가시화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아쉬운 점은 이름표 조형물보다 더 중요한 ‘소녀상 설치 목적’을 잊고 있다는 데 있다. 시민을 중심으로 한 활동 동력이 힘을 잃고 다소 분산된 모습마저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관리위는 이름표 조형물 설치를 3월 1일 전까지로 잡고, 이후 관련 기관과 연계해 청소년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시민들이 자유롭게 의사표현을 할 수 있는 공론의 장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을 내보이고 있다. 홍창기 위원장은 “소녀상이 평화와 화합, 치유와 교훈의 공간이 되길 바란다”며 “이름표 조형물 설치 이후 SNS를 통해 시민 참여를 독려하고 의견을 모을 계획이다. 또 시민 중심의 관리단체를 꾸려 정회원을 두고 꾸준히 관련 프로그램이나 행사를 이어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관리위의 이런 계획에도 불구하고 일부 시민들은 아쉬움을 내비치고 있다. 소녀상 건립 추진위 활동을 했던 한 시민은 “다수의 시민들이 모여 그 시민들이 주축이 돼 역사 현장을 만드는 작업이 이뤄졌으면 한다”며 “소수 의견으로 계획이 세워지고 사업이 진행되는 형태는 당초 순수한 목적이 왜곡될 수도 있다”고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시민과 지자체 함께 역사 현장 만들어야 

시민이 나서서 역사 알리는 성남시= 전국 곳곳에 세워진 소녀상은 현재 경기·인천 22곳, 서울 10곳, 경남·부산·울산 10곳 등 70여 곳에 달한다. 그 중 성남시는 2014년 4월 시청광장에 평화의 소녀상을 설치했다. 시민 모금으로 세워진 용인시와 달리 성남시는 지자체 주도로 세워졌다. 하지만 오히려 시민 참여와 활동은 설치와 함께 빠르게 확산됐다. 

성남시 소녀상 지킴이는 소녀상이 세워짐과 동시에 생긴 시민 단체다. 초기 30명으로 시작해 3년이 지난 지금은 초·중·고 학생들과 일반 시민들을 포함 100여명이 활동하고 있다. 
소녀상 지킴이 류재순 대표는 “성남 시청사에 위치한 덕분에 방문하는 많은 관람객과 민원인들로부터 큰 관심을 받고 있다”며 “방문 인원이 꾸준히 많고 주말에는 특히 몰리다보니 토요일에는 소녀상 지킴이들이 돌아가며 큐레이터 활동을 벌인다. 시에서 일정부분 운영예산을 지원하고 지킴이들이 자비를 보탠다. 모두 아픈 역사를 바로 알리자는 사명감에서 활동하는 시민들”이라고 말했다. 큐레이터들은 방문한 시민들에게 한일협의 무효와 일본군성노예제 문제 해결을 위한 1억명 서명운동도 함께 진행하고 있다. 

성남 소녀상 지킴이들은 주 1회 이상 소녀상을 방문해 닦고 주변을 청소하는 등 관리도 맡아 한다. 명절 때는 한복을 구입해 소녀상에 입히기도 했다. 꽃다운 나이에 강제로 끌려갔던 소녀들의 넋을 이렇게라도 달래고 싶다는 시민들의 의견에 따른 것이었다.   
올해 명절 한복 입히기 행사는 성남시 여성복지관에서 한복 수강생들이 손수 지은 한복을 기부했다. 류재순 대표는 “소녀상 지킴이가 활동을 이어갈수록 더 많은 학생과 일반 시민들이 자진해 참여하겠다고 꾸준히 나서고 있다”며 “몇몇 시민의 진심이 다른 시민에게 옮겨가고 퍼져나가는 것을 지난 3년간 몸소 체험했다”고 말했다. 

성남 소녀상 지킴이는 시민들이 함께 활동한다는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소녀상 목도리 제작에 100인의 시민을 참여시켜 한 땀 한 땀 힘을 모았던 것도 같은 이유다. 
류 대표는 “소녀상을 세운 이후 성남 지킴이들은 무거운 사명을 묵묵히 감당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평화의 소녀상을 많은 사람들이 찾는 역사교육의 현장이 되도록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소녀상 관리에 적극적인 원주시= 원주시는 지난해 11월 원창묵 시장이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로부터 소녀상 건립기여 특별 공로상을 받았다. 자치단체장이 소녀상 관련 공로를 인정받아 특별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원주시는 2015년 평화의 소녀상 건립 기금으로 2000만원을 지원하고 시민단체 성금을 모아 시청 공원에 소녀상을 설치했다. 

사실 이 같은 원주시의 기여가 가능했던 것은 시민의 결정과 지자체의 의지가 함께 작용한 덕분이다. 소녀상 건립 주체인 원주 시민들은 체계적인 소녀상 관리를 위해 시와 의회에 소녀상을 공공조형물로 등록할 것을 제안했다. 이후 이를 받아들인 원주시는 소녀상 주변에 CCTV와 조명을 설치하고 매년 기념식을 하도록 예산을 지원하는 등 적극적인 관리를 하고 있다. 

시민들의 참여도 함께다. 원주시민연대는 시민과 청소년·대학생을 중심으로 지킴이단을 모집해 역사 알리기 등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관리와 활용의 역할을 시민과 지자체가 적절히 나눠 감당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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