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며 곳곳에서 트리가 반짝반짝 흥겨운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크리스마스트리는 중·북부유럽에서 처음 시작됐다고 한다. 수확의 기쁨을 기리며 농산물을 장식하는 전통풍습과 종교의식에서 살아있는 동물을 제물로 바치는 것을 바꾸고자 시도하는 과정에서 나무를 장식하는 관습으로 이어지다가 기독교와 결부돼 현재에 이르렀다는 설이 있다. 딱히 기독교를 믿는 가정이 아니더라도 산타할아버지가 주는 선물과 크리스마스트리는 한해를 마무리하며 행복한 기분을 느끼게 하고 새해를 맞는 설렘을 부추긴다. 

독일을 비롯한 겨울이 있는 나라에서 시작된 크리스마스트리에 어울리는 나무로는 어떤 나무가 있었을까? 나뭇잎이 다 떨어진 채 앙상한 나뭇가지만 남은 나무보다는 초록색 잎이 달린 싱그러운 나무가 훨씬 보기에 좋았을 것이다. 그래서 선택받은 나무들이 주로 전나무와 가문비나무 같은 상록침엽수였다. 요즘도 전 세계 유명한 크리스마스트리로 선정되는 나무를 보면 가문비나무가 압도적으로 많다. 삼각형의 안정적인 나무 수형과 40~50미터까지 클 수 있는 큰 키 덕분이라 할 수 있겠다. 요즘엔 우리 구상나무도 인기가 많다. 

가문비나무는 유럽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 고산 지역에서 많이 자라고 있다. 한반도에서 자생하는 가문비나무를 볼 수 있는 곳은 대표적으로 지리산, 계방산, 설악산, 금강산, 백두산 등 높은 산이다. 이는 구상나무와 같은 사연을 갖고 있기 때문인데, 옛날 한반도 전역에 있던 가문비나무 구상나무들이 빙하기가 끝나고 기온이 올라가자 낮은 평지에 있던 나무들은 변화를 견디지 못해 사라져버리고, 상대적으로 기온이 낮은 높은 산에서만 살아남게 돼 현재에 이르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구 온난화 현상에 의해 자꾸 기온이 올라감에 따라 점점 살 수 있는 땅이 줄어들어 힘들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어 걱정스럽다.

가문비나무 이름의 유래를 살펴보면 나무 껍질이 거무스름한 빛을 띤다 해서 거문빛나무 또는 거문피나무라 불리던 것이 점차 변해 가문비나무로 안착하게 됐다고 한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나무껍질이 희끗하게 보이는 것이 좀 의아하긴 하다.

암수한그루로 가지 끝 부분에 붉은 자주색 암꽃과 황갈색 수꽃이 달린다. 열매는 긴 솔방울 모양으로 처음에는 초록색으로 위를 보며 자라다가 아래쪽으로 기울어지고 익으면 갈색으로 변한 채 아래를 보고 달린다. 가문비나무 열매를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막상 보면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아마 예전에 뻐꾸기시계라 불렸던 커다란 벽시계의 똑딱똑딱 좌우로 흔들리는 긴 솔방울 모양의 추를 생각해보면 딱이다. 솔방울처럼 열매의 벌어진 껍질 사이로 날개 달린 씨가 바람의 도움을 받아 퍼진다.

갑자기 닥친 혹한의 추위를 잘 견딘 가문비나무와 이를 알아본 명장의 솜씨로 세계적 명품이 만들어졌다. 세계적인 현악기 명장 스트라디바리우스가 만든 바이올린이 그것인데 1700년 전후 약 70여년 간 알프스지역 가문비나무들이 아주 추운 기후에 처하게 됐다. 극한 환경에 생존의 위협을 받게 되자 생장이 더뎌져 나이테가 매우 촘촘하고 목재의 밀도가 균일하게 됐다고 한다.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이 가문비나무로 바이올린의 울림판을 만들었고 가장 아름다운 소리를 내게 됐다고 한다. 지금도 그와 같은 악기를 만들 수가 없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추위를 견뎌낸 가문비나무를 만나지 못해서라고 하니 참 절묘하다.

가문비나무의 생태가 그러하다보니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나무는 아니다. 그래도 가끔 공원이나 화단에 심은 가문비나무를 볼 때마다 잘 견녀 내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여러 사람의 소원과 감사를 대신해 빛내주는 나무니 오래 오래 같이 살 수 있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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