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시민신문
상단여백
HOME 오피니언 장호순 교수의 지역에서 희망찾기
사라진 '고향의 봄'
  • 장호순(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 승인 2017.12.19 09:48
  • 댓글 0

한 가족이면서도 부모 자식 간에 서로 다름을 확연하게 보여주는 것이 있다. 바로 좋아하는 노래이다. 자녀들과 TV드라마나 영화는 함께 볼 수 있어도 노래를 같이 듣기는 힘들다. 자녀들과 동승해서 차를 타고 가면 아이들은 으레 헤드폰을 꺼내어 꽂는다. 엄마 아빠가 틀어놓고 흥얼대는 음악이 귀에 거슬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대 간에 공유하는 노래들도 있다. 어릴 적 부르는 동요들이다. 요즘 초등학생 음악 교과서를 살펴봤더니 50년 전 필자가 초등학교 시절 배운 노래들이 여럿 보인다. “햇볕은 쨍쨍 모래알은 반짝…”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등 갓 입학해서 부르는 동요도 있고, <파란 마음 하얀 마음>, <과수원길>, <초록바다> 같은 5~6학년 시절에 배운 동요들도 남아 있다. 

하지만 전혀 모르는 동요들이 훨씬 더 많았다. 음악 교육도 변화하는 시대를 반영하고 있는 것 같다. “학교 종이 땡땡땡…” “따르릉 따르릉 비켜나세요…” 같은 동요들은 더 이상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는다. 그런데 놀랍게도 <고향의 봄>도 음악교과서에서 사라졌다. <애국가>와 <아리랑>에 버금가는 국민동요인데도 말이다. <고향의 봄>만이 아니라 ‘고향’을 주제로 한 동요들이 모두 교과서에 사라졌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고향의 봄)” “고향 땅이 여기서 얼마나 될까(고향땅)” “해는 져서 어두운데(고향생각)” 

고향을 노래한 동요들이 음악교과서에서 사라진 것은 교육적인 측면에서는 어쩔 수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지금의 20~30대 세대나 청소년 세대에게는 고향에 대한 그리운 정서가 없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이 아니다. 도시의 아파트에서 태어나, 아파트 숲 사이 놀이터와 학원 교실에서 대부분의 유년시절을 보냈기 때문이다. “나의 살던 고향은 ㅇㅇ아파트 단지…”이다. 

사실 초등학생들이 고향을 그리워할 수는 없다. <고향의 봄>이나 <고향생각>과 같은 동요는 타향살이하는 어른들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동요형태로 표현한 것이다. 지난 세기 한국인들은 유사 이래 없었던 격변의 시대를 겪으며 고향을 떠나야 했다. 많은 이들이 식민지 수탈로 중국이나 일본 등으로 이주해야 했고, 해방 후에는 공산정권을 피해 낯선 남쪽 지역에 정착해야 했다. 자연 이들이 부르는 노래 중에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타향살이의 서러움을 표현한 노래가 많았다. <타향살이>, <꿈에 본 내 고향>, <눈물 젖은 두만강> 등등. 

1960년대와 70년대에도 고향을 노래한 대중가요가 많았다. 일자리를 찾아 고향을 떠나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 주변에 몰려든 산업화 시대 청춘들의 애창곡들이었다. 지금도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가수 나훈아의 대표곡에는 <머나먼 고향>, <고향역> 등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노래가 많다. 당시 유행하던 팝송 중에도 고향에 관한 노래들이 많다. 존 덴버의 <Take Me Home Country Roads>, 탐 존스의 <Green Green Grass of Home> 등.  

그러나 고향을 그리워하는 정서는 오래가지 못했다. 1980년대 이후 고향에 관한 노래는 급속히 줄었다. 지난해 포털사이트 네이버가 한국의 대중가요 가사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고향’ 단어가 등장하는 횟수가 1960년대는 1225회, 1970년대는 1705회였으나, 1980년대는 824회로 크게 감소했다. 대신 ‘서울의 찬가’, ‘제3한강교’, ‘아파트’처럼 도시에서 새로운 삶을 다룬 노래들이 인기를 끌었다. 1990년대 이후 고향은 대중가요 가사에서 거의 사라졌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고향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극히 드물다. 대부분 지금 살고 있는 곳이 고향이거나, 고향과 그리 멀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명절의 귀향문화도 달라지고 있다. 설이나 추석이 되면 TV에서는 아직도 고향 시골집을 찾는 자녀들을 보여주지만 그런 세대들은 이제 거의 없다. 부모 자녀 모두 대부분 근거리 도시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명절 연휴에도 고속도로 정체는 평소 주말 고속도로 사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명절 연휴는 헤어진 가족을 만나러 머나먼 고향을 찾아가는 기간이 아니라, 근처에 살고 있는 가족들이 함께 해외여행을 가는 기간이다. 

“복숭아꽃 살구꽃” 피는 <고향의 봄>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살던 시대는 사실상 끝났다. 지금은 내가 사는 아파트 단지를, 내가 사는 지역을 사랑하는 동요를 불러야 하는 시대이다. 온 가족, 온 국민이 함께 부르는 새로운 지역사랑 동요가 음악교과서에 실렸으면 좋겠다. 

장호순(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webmaster@yongin21.co.kr

<저작권자 © 용인시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장호순(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