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모아놓았던 음반을 별생각 없이 꺼내보다가 아주 앳된 얼굴을 한 조용필 씨의 초창기 앨범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그 앨범 재킷 뒷면을 훑다가 문득 눈에 들어오는 노래제목 하나. ‘Lead Me On(A- Green)’ 조용필 씨가 3집 앨범에 다시 ‘님이여’라는 제목의 번안 곡으로 취입해서 히트를 했었는데, 의외로 많은 분들이 우리 고유의 민요리듬을 딴 가요로 오해하고 있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그 곡은 바비 블랜드라는 약칭으로 불렸던 바비 블루 블랜드(Bobby Blue Bland)의 곡이 원곡이에요.  

이 곡은 지금의 조용필이 있게 된 계기를 만들어준 것이기에 조용필과 이 곡 이야기는 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이 곡을 조용필 씨가 부르게 된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무명시절 때 한 미군부대 클럽에서 기타리스트로 일을 하던 어느 날, 팀의 보컬리스트가 자리를 비우는 바람에 대신 노래를 부르게 되었답니다.

그렇게 뜻 아니게 노래를 부르던 조용필에게 마침 한 미군병사가 ‘Lead Me On’은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곡이라며 꼭 좀 불러달라고 신청을 했다는 군요. 당일은 그 노래를 잘 알지 못했기에 불러주질 못하고 그 곡을 밤새워 연습하게 됩니다. 그리고는 다음날 그 미군병사 앞에서 이 노래를 불러주게 됐고, 그 곡을 듣게 된 미군 병사는 원곡을 뛰어 넘는 조용필의 보컬에 감동해 눈물을 흘렸답니다.

그때 마침 현장에서 그의 노래를 듣게 됐던 왕년의 명 드러머 김대환 씨가 최이철 씨와 함께 팀을 만들어 1971년 모 팝콘테스트에서 ‘Lead Me On’을 번안한 ‘님이여’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는 이야기가 지금까지 전해져 옵니다. 그리고 ‘돌아와요 부산항에’ 이후로 넘볼 수 없는 최고 가수의 자리를 지키고 있는 조용필은 Lead Me On이 열어준 가왕의 자리에 대한 보답인지 모르겠지만 3집 앨범에 다시 그 곡을 넣어 감사와 의리를 지킨 것으로 보인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곡을 번안곡이라고 알고 있는 분들 중에서도 원곡이 Bobby Bland의 곡이 아니라 알 그린(Al Green)의 곡으로 알고 계시는 분들이 꽤 있더라고요. 급기야 많은 신문기사에 그렇게 쓰여 있는 것을 확인했는데, 알 그린은 Lead Me On을 불러 취입해본 일이 전혀 없음을 알려드리지요. 아마도 조용필의 그 앨범 재킷에 ‘Lead Me On(A-Green)’이라고 쓰여 있어서 그렇게 됐던 것 같은데 명백한 오류이며, 지금도 인터넷상으로 수없이 떠도는 알 그린의 Lead Me On은 전부 조용필 씨의 목소리랍니다. 

그런 저런 이유로 오늘은 Lead Me On의 다른 버전을 한번 들려드리려 합니다. 우리나라에서 아름다운 발라드로 크게 알려진 ‘Almaz’라는 곡 있잖아요. 바로 그 곡을 부른 소울 향기 물씬 풍기는 블루지한 목소리의 주인공 랜디 크로포드(Randy Crawford)예요. 아주 어린 시절부터 무대에 올라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그녀는 환갑이 넘은 지금까지도 아주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답니다.

어렸을 때부터 많은 곡을 불러온 대부분의 가수들이 그러하듯 랜디 크로포드도 생활을 위해 기존의 유명한 곡들을 부르며 다른 가수들의 음반 취입이나 공연에 세션보컬로 참여하는데 잔뼈가 굵은 가수입니다. 그러다 서울재즈페스티벌에도 여러 번 참가해서 우리나라의 팝 애호가들에게도 익숙한 조지 벤슨(George Benson)과 흑인 재즈펑크그룹인 Crusaders와 함께 일하게 된 것을 계기로 이름이 서서히 알려지기 시작한 노력파 가수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이름이 알려진 이후에도 본인의 노래보다는 익히 알려져 있는 수많은 명곡들을 흑인 특유의 블루스적 감각으로 재해석해서 부른 리메이크 곡들을 주로 불러서 히트시켰지요. 

사실, 아무리 빛깔 좋고 튼실하게 생긴 씨앗일지라도 그에 맞는 토양과 햇빛, 바람, 물 등을 만나지 못하면 싹도 피우지 못하는데, 랜디 크로포드의 이름을 불러줘 꽃으로 피게 해준 이는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조 샘플(Joe Sample)이예요. 대부분의 작곡가들은 작곡해서 가수에게 노래하게 하면 그 역할이 끝나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인 반면, 조 샘플은 지금의 랜디 크로포드가 있게 하는데 아주 커다란 역할을 했습니다.

그 두 사람이 몇 해 전에 의기투합해서 만든 앨범에 ‘Lead Me On’이 있더라고요. 바비 블랜드의 원곡이나 조용필의 번안 곡과는 또 다른 그녀만의 달콤하고 아름다운 음색이 녹아 있는 새로운 형식의 걸작이에요. 그래서 이곳에 얹어놓습니다.

랜디 클로포드와 조샘플의 ‘Lead Me On’ 들어보기
http://youtu.be/KFD_-REUE1I

저작권자 © 용인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