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폐용기 캡 생산 최강자 기술로 우뚝 선 일등기업

사출금형 제작과 사출성형 전문 생산 업체로 현재 그 분야 최고로 인정받고 있는 금명산업(주). 제조업 가운데 거칠기로(?) 소문난 업종에서 20여 년간 혼신의 노력으로 회사를 정상에 올려놓은 사람이 바로 여성CEO 박길숙 대표이사다.

금명산업(주)은 고난과 시련을 얼마나 처절하게 극복해 나갔는지를 보여주는 회사다. 가정주부이자 비전문가에서 오랜 담금질을 통해 어떻게 훌륭한 기업인으로 재탄생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생존의 경계를 넘어 성공신화를 일군 중소기업의 대표적인 경우에도 빠지지 않는 모범기업이기도 하다. 

처인구 양지면 남곡리에 위치한 금명산업(주)은 우여곡절 많았던 걸어온 길 만큼이나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곳이다. 회사가 설립된 것은 1998년이다. 박 대표의 남편은 오랫동안 이 분야 사업 경험이 있었다. 이를 바탕으로 사업확장에 박차를 가했고 당시 부천에 1,2공장과 용인 등 3곳에 사업장을 두고 있었다. 이 때 IMF 파고가 밀려들었다. 
잘 나가던 회사였고 지금은 업계 1위를 달리는 정상기업이지만 고난과 시련부터 헤쳐 나가야 했다. 손 쓸 겨를도 없었다. 주부였던 박 대표는 악전고투를 벌인 남편과 사업이 망가지고 나서야 사태를 짐작했다.

“그 때를 생각하면 참 기가 막히죠. 집안 일만 보던 터여서 밖의 일을 몰랐어요. 남편은 걱정할까봐 평소 밖의 일을 말하지 않았어요. 3개 공장이 있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외환위기 과정에서 남은 것이 없었지요. 거래처와 협력회사들도 줄줄이 무너졌는데 안 될 때는 다 안 되더라고요. 생각 끝에 은행을 찾았죠. 하나라도 건지게 해달라고 매달렸어요.”

꿈마저 빼앗아 간 IMF의 긴 터널을 지나

부천에 있던 1.2공장은 남의 손에 넘어가고 은행 도움으로 경매 처분됐던 용인 제3공장만 다시 가동할 수 있게 됐다. 이때부터 회사를 다시 세우고 꾸려가는 것은 사업 문외한인 박 대표의 온전한 몫이 됐다. 자금 융통을 위해 목동에 있던 아파트부터 팔았다. 일도 닥치는 대로 했다. 중고 사출기 몇 대 밖에 없는 현장은 물론 식당 일과 경리업무와 내부 관리 등 모든 걸 참 열심히 했다. 달리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원청회사와 거래처들이 대부분 도산한 상태였으니 일거리도 적었다. 그렇다고 어렵게 함께 하는 직원들을 돌려보내진 않았다. 궁여지책으로 몇 년간 월급을 나눠 주기로 하고 월급을 매달 세 번씩 쪼개서 지급했다. 

하지만 대표가 가져갈 급여가 없었다. ‘투 잡’이란 걸 그때 해봤다. 주간엔 회사 일을 보고 아이들 키우는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식당 주방 보조 일을 했다. 저녁 6시부터 새벽 2시까지 일하고 한 달 받아든 돈은 65만원이었다. 월세 방에 살며 회사 사장이자 식당 보조였던  ‘이중생활’은 3년여나 지속됐다. 10평 월세 방 생활은 10년이나 이어졌다. 지난하게 고생한 보람은 있었다. 더 버틸 힘이 없어 모든 것을 놓아야겠다고 생각할 즈음, 희미하게나마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신뢰를 지키니 거래처가 다시 발길을 돌려 다가왔다.   

박 대표이사는 그때 생각했다. 나를 버리고 다 놓아도 신뢰만큼은 지켜야한다는 것을. 기업이 포기하지 말아야 할 다른 한 가지가 있다면 함께 일하는 동료이자 직원들이라는 것을. 아무리 어려워도 멈추지 말고 새로운 기술개발로 경쟁력을 키워가야 한다는 것을.     

끈기와 기술개발로 위기를 딛고 일어서다 
세월이 흘러 오늘날 금명산업(주)은 직원 40여 명이 자부심을 갖고 일하는 멋진 직장이자 함께 땀을 흘리는 아름다운 삶과 꿈의 터전으로 변모했다. 남자도 어렵다는 사출금형 제작과 사출성형 분야에서 온갖 편견과 핸디캡을 극복하며 사출기 20대를 갖춘 어엿한 업계 선두가 됐다. 금명산업(주)은 주방용품 위주로 장점을 살려가고 있다. 특히 밀폐용기 캡에서 특허를 내는 등 그 분야 집중 전략이 성공하면서 예전보다 훨씬 뛰어난 기술력과 품질을 인정받았고 자연스럽게 매출 향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믹소컵, 냉동케이스, 맛찌미 등 다양한 제품 라인업을 선보이면서 밀폐용기 캡 부문을 선도하고 있다. 일상생활에서 많이 사용하는 밀폐용기들의 캡 부문은 세밀한 기술력을 요구한다. 동종 업체가 많아 경쟁도 심한 편이다. 이런 가운데 업계를 선도할 수 있는 위치에 오른 건 순전히 기술력 덕분이다. “캡은 상당히 예민한 제품이라서 업계에선 종합 예술이라고 부르기도 하죠. 우리 제품은 일반 캡에 비해 기능성이 많이 추가돼 있어요. 관련 특허를 꾸준히 받아 놓았죠.” 특허 확보는 큰 기업에 납품을 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걸 박 대표는 잘 알고 있다. 늘 새로운 연구를 통해 시대를 앞서가면서 새로운 소비자 요구와 트렌드를 반영한 제품을 선보이는 한편 특허출원으로 이를 증명해 나가고 있다. 이와 함께 다방면의 기술이 집약된 거의 완벽한 제품을 만들어 경쟁력에서 앞서가고 있다. 

또 한 가지는 거래처와 신뢰다. 그간 납기일을 맞추는 것을 소홀히 해 본 적이 없다. 노동력이 부족할 때면 지금도 현장으로 가장 먼저 달려가는 것은 박 대표다. “손 빠르기도 아마 나를 따라오기 어려울 거예요. 서너 사람이 처리할 몫을 하니까요. 하하” 
현장과 영업 심지어는 회계에 이르기까지 어려운 과정에서 익힌 노하우 덕분에 ‘멀티플레이어’가 돼야 하는 중소기업 사장으로서 최적화된 능력을 갖추게 된  셈이다. 

새로운 터전 새로운 꿈을 꾸다
사출기 20대를 비롯해 별도의 금형실 공간과 밀링, 방전기, 선반 등 기계를 두루 갖춰 어떠한 주문에도 대처할 수 있는 설비를 갖춘 금명산업(주) 박길숙 대표이사. 어엿한 업계 선두가 된 이 회사의 여성 CEO이지만 요즘 안정을 넘어 도약을 위한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첫째는 새로운 둥지 마련이다. 이태 후면 완공될 이동면 덕성리 ‘용인테크노밸리’에 새로운 터전을 이미 확보해 둔 상태다. 지금보다 공간도 넓고 최적화된 첨단공단인 만큼 기대도 크다. 바로 낡은 건물 탓에 근로자들에게 최상의 근무환경을 제공할 수 없었다. 머지않아 이 문제는 말끔히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두 번째는 든든한 파트너의 등장이다. 2010년 갑작스런 사고로 남편과 사별한 후 어렵게 키웠던 두 아들이 성장해 어머니를 돕고 있다. 금명산업 핵심사업 부문 가운데 두 축인 사출금형 제작과 사출성형 분야를 각각 맡기로 하고 이미 전문가가 되기 위한 현장과 이론수업을 받고 있다. 주방용품 위주로 입지를 다져 온 장점을 살려가면서 가능성과 사업성이 무궁한 사출금형에 더욱 투자와 사업영역을 넓혀 나간다는 계획이다. 

“그간 매출은 쏠림 현상이 문제였어요. 캡쪽이죠. 수요와 트렌드의 변화 등 시장의 가변성을 생각할 때 매출의 균형도 중요하거든요. 특히 금형은 뿌리산업입니다. 제조업이 흔들리면 안되죠. 다행히 두 아들이 합류해줘서 요즘 짐을 많이 덜었어요.” 이 얘기를 하는 순간, 박길숙 대표이사의 표정은 그 어느 때 보다 밝게 빛난다. 

다년간 사출금형 제작과 사출성형을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업체로 수 십 년간 축적된 노련한 기술력과 우수한 전문 인력으로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금명산업(주). 발 빠르게 변화하는 국내외 시장에서 경쟁을 통해 회사를 업계 선두기업으로 일군 박길숙 대표이사. 앞으로 용인과 대한민국을 빛낼 강소기업이자 여성 대표 CEO로 우뚝 서길 기대해본다. 

 

박길숙 대표이사의 경영노하우

1. 인내와 끈기 

 “이걸 놓치면 아이들과 갈 곳이 없었다. 다시 시작해 아이들한테 놓아버리는 모습을  보여줄 수 없었다. 재산은 아니어도 포기하는 모습을 보여줘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6시간을 매일같이 대중교통수단을 이용해 출퇴근하면서도 아이들에게 그 이유를 말하지 않았다. 힘들지만 아이들에게 엄마 얼굴을 보여주고, 엄마가 왜 힘든 길을 오가는 지를 스스로 알게 했다. 지금은 아이들에게 큰 가르침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2. 위임 

“회사에서 100% 가운데 1%만 지시한다. 가정주부였던 나도 해냈다. 아무것도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지금 경영의 큰 내공이 됐다. 무엇이든 할 수 있게 됐다. 난 잔소리를 일일이 하기 보단 모범을 보이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처음엔 힘들고 잘못되더라도 그 과정을 거쳐 더 나은 체질로 변하게 한다. 온실 속 화초보다 노지 화초가 강한 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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