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15일 포항에서 규모 5.4의 지진이 발생했다. 용인시민뿐 아니라 전 국민이 진동을 느낄 정도로 흔들림이 있었다. 지진 발생 위치와 가까운 포항에서는 많은 건물에 금이 가거나 벽이 무너지는 피해가 발생했고 많은 여진으로 시민들은 불안해했다.

포항 지진 뉴스 중 필로티라는 생소한 단어가 등장했다. 1층을 주차장 등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벽을 만들지 않고 기둥으로 만든 건물이다. 이번 지진에서 일부 필로티 구조로 만든 건물 기둥이 부러지는 큰 피해가 발생했다. 구조 자체도 취약하지만 기둥에 넣어야 할 철근 등의 재료가 부실했다는 보도가 있다.

큰 구조물의 하중을 견디기 위해서는 기둥이 튼튼해야하고 튼튼한 기둥을 만들기 위해서는 좋은 재료를 사용해야 한다. 당연한 진리이지만 가장 기본이 되는 내용을 종종 잊어버리곤 한다. 최근 북한 귀순병사 치료 과정에서 중증외상외과가 사회적 관심사로 떠올랐다. 중증외상치료의 국내 최고 권위자로 알려진 아주대병원 이국종 교수는 매년 수십억 원의 적자를 발생시킨다. 환자를 잘 치료하고 쾌차시켜줬는데 적자를 본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일이다. 생명을 구했으니 큰 돈을 벌어야 당연한데 오히려 적자가 발생하는 이유는 한국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 때문이다. 

한국의 건강보험은 1977년 출범 당시 낮은 소득 수준으로 국민 부담을 줄이면서 보험혜택도 적게 설계됐다. 그러나 민주화와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국민의 기대가 늘어나게 됐고 정치권에서는 선거 때마다 건강보험으로 더 많은 질병 치료가 가능하도록 정책을 추진했다. 그 결과 국민들이 내는 보험료는 2016년 기준으로 연간 54만원에 불과한 반면 보험급여로 받는 혜택은 97만원으로 1.8배나 더 많다. 미국뿐 아니라 중국 교포마저 한국으로 원정 치료를 하고 있는 현실이다.

문재인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이 추진되면서 걱정의 목소리가 높은 이유는 바로 충분한 재정계획이 없는 정책은 부실한 의료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케어에 3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주장하지만 2018년 예산에서 건강보험료 국고지원분은 7조원에 불과해 보장성 강화 예산인 3조7000억원을 제외하면 2017년 6조8000억원보다 오히려 3조원 가까이 줄어든 금액이 된다. 보건당국은 부족한 재원을 보충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의약품의 보험급여 기준을 까다롭게 해서 의사들이 사용하기 힘들게 하고 각종 검사 비용을 매년 10%씩 5년간 50%나 깎는 작업이 시작됐다. 보험 규정을 천천히 살펴가면서 진료할 수도 있지만 생사가 급박하고 1분 1초가 급한 상황에서 정말 꼼꼼히 살펴봐도 이해가 안 되는 각종 규정을 일일이 찾아가면서 치료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국종 교수가 환자를 살리려고 노력할수록 각종 규정을 위반하고 결국 불법으로 환자 생명을 구했기 때문에 치료비를 받지 못하고 적자로 이어지는 원인 중 하나다. 국가의 지원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인 제도의 문제이다. 규제가 까다로운 이유는 재원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의료비가 싸지고 건강보험 혜택이 늘어나는 것을 한국 국민들은 좋은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건물을 지을 때 적정 비용 이하로 싸게 지은 부실한 건물을 좋은 건물이라고 할 수 없다. 낮은 의료비용과 많은 치료 혜택은 부실한 필로티 구조물로 서 있는 건물처럼 평소에는 멋있고 쾌적한 건물로 보이지만 지진과 같은 재난이 발생할 경우 위험성이 드러난다.

보이지 않는 기둥 철근을 빼내도 모르는 것처럼 부족한 건강보험재정으로 난치성 질환이나 중증질환의 혜택을 확대하고 보장성을 확대해 나가면 점점 부실해지고 정작 필요한 생명을 구하는 전문 분야가 쇠퇴할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결과를 만들게 된다. 부실한 정책을 확장하는 것보다 집중적인 투자와 생명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깊은 관심을 가질 때 더 안전하고 행복한 나라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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