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까지만 해도 시원한 아이스커피가 생각나더니만 찬바람 불고 눈까지 내리니 따뜻한 차 한 잔 손에 잡고 온기를 즐기는 겨울이 됐다. 추운 게 딱 질색인 필자지만 겨울이 좋은 이유가 하나 있다. 일 때문에 다른 계절엔 짬을 못 내다가 겨울이 되면 좀 한가해지며 입버릇처럼 얘기하는 집시병이 도진다. 내가 살아보지 못한 이 세상 어딘가가 궁금하다. 그래서 매년 따듯한 남쪽으로 핸들을 돌린다. 주로 남해안을 따라 여행을 하게 되는데, 전라도 끝 진도나 경상도 끝 부산 중 맘에 끌리는 한 곳을 정해 집중적으로 파고드는 여행을 한다. 

남천을 처음 만난 곳도 남해안 어딘가 여행 중이었다. 한 겨울인데 빨간 열매가 수북이 달린 키 작은 나무가 눈에 띄었다. 이름도 나무 이름치고는 좀 어색한 ‘남천’이란다. 냇가 이름도 아니고 마을 이름도 아닌, 나무 이름이 남천. 참 독특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남천은 중국이 원산인 나무로 따뜻한 남부지방에서 주로 사는데 그곳에서 쓰는 이름을 그대로 가져와 부르게 됐다고 한다. 가는 줄기와 잎이 대나무와 닮았다고 해서 ‘남천죽’으로도 불린다. 숲에서 자생하지 않기에 주로 정원이나 공원, 가로수, 울타리에서 많이 볼 수 있다. 

남천 잎은 긴 물방울 모양으로 끝이 뾰족하며 가장자리는 밋밋하다. 나뭇가지에 잎자루가 없이 바로 붙으며 세 장씩 모여 달린다. 봄 여름 가을에는 초록색이다가 겨울이 되면 붉은 빛이 돌게 된다. 잎이 빳빳하고 두터운 가죽질로 돼 있어서 추운 겨울에도 잎을 떨어뜨리지 않고 달고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남천은 상록활엽관목으로 분류한다. 여기서 상록이란 낙엽이 지지 않고 일 년 내내 잎이 푸르게 달려있다는 뜻이고, 활엽은 소나무와 같은 뾰족한 바늘잎이 아니라 옆으로 펴져있는 넓은 잎이란 뜻이다. 관목이란 그리 크게 자라지 않으며 아래에서 줄기가 여러 가지로 갈라져 자라는 나무를 가리킨다. 풀어쓰면 ‘늘푸른넓은잎작은키’ 나무인 것이다. 

여름에 흰색 꽃을 피우는데 꽃이 지고 나면 가을에 빨간 구슬같은 열매가 주렁주렁 많이 달린다. 이 빨간 구슬들은 겨울에 새들의 좋은 먹이가 된다. 이처럼 남천이 사람들에게 각인되는 때는 주로 겨울이다. 잎도 붉은 색을 띄게 되고 열매 또한 빨갛게 익어 수북이 달린다. 다른 풀과 나무들이 밋밋한 갈색이나 회색을 취하고 있을 때 붉은 색이 얼마나 강렬하게 보이겠는가. 흔히 붉은색은 악귀를 물리치고 나쁜 기운을 막아준다는 벽사의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남천도 그런 용도로 많이 사용됐다고 한다. 집안에 심고, 생활도구를 만들고, 생활용품에 끼워 넣고, 선물로 전해지고, 심지어 진시황은 남천의 가지를 잘라 젓가락으로 사용했다고도 한다. 대나무의 가는 가지를 닮은 남천의 가지들을 보면 충분히 그렇게 사용할 수 있었겠구나 생각이 든다.  

그렇게 오래된 기억처럼 잊고 있었던 남천을 용인에서도 자주 보게 됐다. 처음엔 주로 큰 화분에 있는 것을 보게 됐고 그로부터 얼마 후 공원이나 화단에 심어 놓은 것도 보게 됐다. 놀라웠다. 따듯한 지역의 나무들은 기온이 떨어지는 겨울을 나는 것이 고비여서 그들의 생존지역을 쉽사리 넓히지 못하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도 주로 따듯한 남부지방 중심으로 심어져 있었는데 그것이 시나브로 용인의 정원까지 올라오게 된 것이다. 몇 년 사이에 나무가 변한 것일까? 나무의 생존능력을 과학의 힘으로 개량한 건가? 그만큼 용인이 겨울에 많이 춥지 않다는 뜻인가? 자연스러움이 어긋나버린 상황이 걱정스럽다. 그렇게 한 걱정하고 있을 때 남천의 꽃말을 알게 됐다.

사실 식물의 꽃말을 진지하게 생각해 본적은 없었지만 남천의 꽃말을 듣는 순간 믿고 싶어졌다. ‘전화위복’이란다. 전화위복이란 화가 바뀌어 오히려 복이 된다는 뜻으로 불행한 일이라도 노력하면 행복한 일로 바뀔 수 있다는 말이다. 붉은색 열매 알알이 소원들을 담아 사회적으로, 자연적으로, 지구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전화위복이란 말이 꼭 이뤄졌으면 좋겠다. 봄이 오면 나무시장 가서 남천 몇 그루 사다가 마당 한쪽에 심어야겠다. 우리 동네가 많이 추운데 잘 살아남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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