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불면 후두둑 낙엽이 떨어진다. 숲에 온양 발에 낙엽이 감긴다. 이제는 낙엽을 쓰는 일이 헛된 일처럼 보인다. 그래도 아파트 경비 아저씨들은 자루에 낙엽을 쓸어 담으신다. 그 낙엽들은 모두 다 어디로 가는 것인지…. 내년 봄엔 냄새나는 퇴비를 뿌리는 수고를 또 해야 할 텐데. 하지 않아도 될 일들이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느낌이다. 얼마 전까지도 아파트 내에 아주 붉게 물든 담쟁이덩굴을 볼 수 있었다. 하얀 벽을 덮은 붉은 잎은 더 선명했다. 담쟁이덩굴은 잎자루가 잎 길이만큼 길다. 그래서인가 그 안에 많은 것을 숨겨놓았다. 잎이 떨어지고 나니, 멋지게 사방으로 뻗은 줄기와 포도처럼 진한 보라색 열매들이 드러났다. ‘자연의 아름다움은 이런 것인가!’ 새삼 느낀다. 법칙이 있으면서도 없는 듯한 모습이다. 

덩굴은 줄기의 끝부분이 스프링처럼 말려서 감고 올라가는 형태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담쟁이덩굴의 덩굴은 많이 다르다. 잎과 마주난 줄기 끝은 식물의 몸을 지탱하기 위해 지지해주는 물체에 직접 달라붙는다. 꼭 개구리 발가락처럼 생겼는데 그 끝에서 접착제 역할을 하는 물질이 나온다. 줄기와 물체가 하나처럼 붙어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가끔 담쟁이덩굴이 떼어진 담에서 개구리 발가락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담쟁이덩굴에 완전히 쌓인 건물들도 종종 볼 수 있다. 필자가 학창시절 다니던 서점도 그런 건물 중 하나였다.

평소에 잘 느끼지 못하다가 어느 날 문득 그곳이 왠지 어둡고 음산하게 느껴졌다. 아마도 그때가 여름의 한복판이었을 것이다. 그때부터 그 서점을 지나쳐 다른 서점을 다녔다. 하지만 오래된 대학 건물들이 담쟁이로 덮인 모습을 많이 보면서, 담쟁이덩굴이 학문과 관계가 있는 것인가, 혼자 생각하기도 했다. 에어컨이 없던 시절 건물을 시원하게 하는 방법 중 하나였을 수도 있겠다. 

숲에서는 담쟁이덩굴이 바닥을 기어 다니는 모습을 자주 본다. 바닥이 넓게 담쟁이덩굴로 덮인 것도 흔히 본다. 그러다가 큰 나무를 만나면 나무 줄기를 타고 오른다. 담쟁이덩굴의 잎자루가 긴 것은 이렇게 큰 나무를 타고 올라가서 그 나무의 잎보다 더 빛을 잘 받기 위함일까 아니면 그 나무의 잎처럼 보이기 위함일까, 열매가 다 익을 때까지 숨겨놓으려는 것일까, 정답이 없는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큰 나무만 있는 숲은 참 쓸쓸하다. 빽빽한 잣나무 숲, 일본잎갈나무 숲, 리기다소나무 숲처럼 사람들이 만든 숲이 대부분 그렇다. 숲의 맨 바닥은 작은 풀과 큰 풀이 어우러진 층(1m 이하)이 있고, 그 위는 키가 작은 나무들의 층이 있다. 키가 중간정도 되는 나무들(2~5m)과 덩굴층이 있고, 그 숲을 대표하는 키가 큰 나무층이 있다. 모든 숲이 이런 4~5층의 구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구조가 복잡할수록 그 숲은 다양하고 자연스러워 진다. 그중에서 덩굴의 역할은 크다고 본다.

실제로 큰 덩굴이 있는 숲이 더 울창하고 오래됐다. 같은 숲이지만 찾아갈 때마다 다른 느낌은 받는 것은 아마도 이런 덩굴들 때문이 아닐까? 여름에는 싱그러운 초록색 잎을, 가을엔 정말 빨간 단풍을 보며 즐거웠다. 지금은 남은 열매와 줄기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기에 참 아름답다. 그 자체로도 충분한데, 담쟁이덩굴이 만들어내는 2차 산물을 사람들이 발견해서 사용하려 한다. 접착제도 썬크림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아낌없이 주는 자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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