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지만 잘 자란 벼 보면
보람, 농업도 비전있는 사업” 

초등학생 때부터 트랙터 몰고 논 갈아
“농업-미래 비전·전망 밝아”

“초등학교 때부터 아버지 농사일을 돕기 시작한 게 여기까지 왔네요. 누군 그 힘든 걸 왜 하냐고 하지만 저는 벼농사가 좋아요. 다른 것은 할 줄 몰라요.”

처인구 포곡읍 금어리에서 벼농사를 짓고 있는 김경식(42)씨. 흔히 손에 흙 묻히며 그 힘든 농사를 왜 하느냐고 하지만 김씨는 농사는 미래가 있고, 비전이 있는 사업이라고 강조하는 이들 중 한 사람이다. 

이제 마흔을 갓 넘긴 젊은 농사꾼(?)이지만 김경식시는 벼농사 경력만 20년이 넘는 베테랑 농부이다. 고교 졸업 후 농사를 지으면서 산업기능요원으로 복무한 김씨는 23살 나이에 포곡읍 농어민후계자가 됐다. 아버지 김한영(82)씨로부터 농사를 배운 김씨는 어려서부터 농기계를 다룰 정도로 농사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데다, 일찌감치 농업을 천직으로 알고 23년째 벼농사를 짓고 있다. 

김씨의 농사에 대한 재능은 어려서부터 나타났다. 재능이라기보다 농사에 대한 관심이 그 누구보다 컸다. 동네 친구들과 들로 놀러 다닐 나이인 8살 때 경운기를 몰고 아버지 일을 도왔다. 초등학교 6학년이 돼서는 새벽 5시에 일어나 돼지 밥 주는 것을 시작으로 트랙터를 손수 몰고 논을 갈았단다. 

“벼농사뿐 아니라 집에서 돼지와 젖소까지 키웠던 탓에 중학교 때에는 봄·가을 농사철에는 집안일이 너무 바빠 20일 가량 학교 선생님에게 얼굴만 비치고 집에 와서 들녘으로 나갔을 정도였어요” 김씨의 유년시절과 청소년기는 경운기를 몰고, 이앙기로 모내기하고, 트랙터를 운전한 친구들과 어울릴 시간조차 없었던 그런 시절이었다.

그렇게 청소년기와 청년기를 거치며 벼농사를 짓다보니 어느 덧 불혹의 나이를 넘겼다. 지역에서 “성실한 친구, 열심히 사는 사람”으로 불리는 김씨는 원삼과 장호원 등의 논을 포함해 8만평에 이르는 벼농사를 지으면서도 단체 활동도 하고 있다. 한국농업경영인 용인시연합회, 용인시 쌀연구회 회원으로 있고, 포곡읍 농업경영인 총무도 맡고 있다. 잘 참여하지 못하지만 의용소방대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농기계를 만지고 손재주가 좋다보니 웬만한 고장이 아니면 수리나 부품교체 등은 모두 스스로 한다. 농한기는 농사꾼에게 휴식과 다음 농사에 대비하는 기간이지만, 김씨는 시간을 내어 대형면허뿐 아니라 포클레인·굴삭기·추레라 등 특수면허를 취득했다. 겨울철 일자리를 찾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워낙 넓은 면적에서 농사를 짓다보니 문제가 생기거나 해야 할 일이 생기면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서다.

그가 벼농사만 고집하는 이유가 있다. 김씨도 시설하우스를 해볼까 고민도 했었다. “잘 하는 것, 큰 돈을 벌기보다 꾸준히 안정적으로 할 수 있는 것, 기후변화에 미래에도 안정적이고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하니 벼농사밖에 없더라구요.” 벼농사가 힘들고 돈도 안되고 비전도 없다는 것은 그저 편경이라는 것이다.

몸은 다소 고되지만 농사가 재미있다는 김경식씨는 농업분야에 관심 있는 청년들에게 한마디 전했다. “열심히 하면 농업에서 비전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농업이 얼마나 소중한지, 전망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느끼게 될 겁니다. 이삭이 자라는 모습, 논을 걸으며 주위를 둘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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