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전쟁으로 한 아이가 고아가 됐다. 이 소년은 갑자기 말이 없어지고,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한다. 늘 혼자 놀면서 무기력한 행동을 보인다. 어느 날 이 소년이 시멘트 바닥에 엄마를 그린다. 그리고 그 엄마의 품에 안겨서 잠을 자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봤다 눈물이 하염없이 흐른다. 이 고아 소년에게 필요한 것은 밥도, 놀이도, 친구도 아니다. 엄마의 따뜻한 품안에서 자고 싶은 마음, 엄마의 목소리, 엄마의 숨결, 손길, 사랑이 필요할 뿐이다.

이 엄마 잃은 소년만 사랑이 필요할까? 우리 모두는 사랑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다. 밥을 매일 먹듯이 사랑을 매일 먹고, 느끼고, 주지 않으면 마음이 아프다. 마음이 아프면 몸도 아프게 되고, 우리 영혼까지 아프게 된다.

류시화의 <새는 날아가면서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를 읽다가 한 구절에서 갑자기 또 눈물이 난다. ‘우리는 불확실하게 존재하다가 사랑받음으로써 비로소 확실한 존재를 인정받는다. 그 사랑받은 경험으로 또 다시 불확실하게 존재하는 누군가를 일으켜 세우는 게 사람이다. 사람은 오직 사랑으로만 누군가를 일으켜 세울 수 있다.’ 폴 오스터는 소설 <달의 궁전>에서 말한다. ‘인간은 겨울을 견디는 나무이면서 또한 연약한 나뭇잎이다. 내게는 삶을 경이롭게 바라본 경험도 있고, 상처받은 경험도 있다. 성공한 경험과 실패한 경험도 있으며, 소유와 상실의 경험도 있다. 자비심을 발휘한 경험도 있고, 참을성을 잃은 적도 있다. 껴안은 적도, 주먹을 날리고 싶었던 적도 있다. 그 모든 감정 상태 중에서 결국 내가 죽을 때 기억하는 것은 사랑하고 사랑받은 경험일 것이다. 우리가 사랑을 잊지 못하는 것은 절벽에서 떨어지는 것 같은 그때, 누군가가 팔을 뻗어 우리를 붙잡아 추락을 멈추게 해주었기 때문이다.’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 죽을 때 가져갈 것은 부와 명예, 건강…, 아무 것도 없다. 오직 사랑받던 순간, 사랑 해주던 순간의 두근거림, 설렘, 뜨거움, 기쁨, 희열을 가져간다. 내가 이 세상에 온 근원적인 이유가 사랑 때문이라는 것을 이제야 깨닫게 됐다.

사랑이 답이었다. 교실에서 그 많은 방법, 기법들을 아이들에게 적용했을 때 변화가 일어난 게 아니었다. 오직 다 내려놓고 ‘사랑’, ‘연민’, ‘측은지심’이라는 눈으로 그 아이를 바라볼 때 그 아이의 모든 것이 달라졌다. 가장 빨리 변했다. 사람에게 필요한 건 훈계, 훈련, 가르침이 아니라 가슴으로 전해지는 사랑에너지 그 자체였다는 것을 참 많은 실패의 시간이 흘러서야 나는 깨달았다

사람의 수많은 감정을 크게 둘로 나눈다면 사랑, 두려움이다. 우리가 화가 나는 이유를 깊이 들어가 보면 사랑받고, 사랑을 나누고 싶은 욕구에서 오는 마음이거나 불안, 두려움 때문이다. 왜 화를 내는지 모르면 계속 화 에너지, 두려움 에너지는 눈덩이처럼 커진다. 또 두려움 안에 있으면 우측 전두엽이 활성화된 시스템으로 살고, 사랑 안에 있으면 좌측 전두엽이 활성화된 시스템으로 살게 된다. 사랑에너지 안에 있으면 문제아도 보석을 깨울 아이로 믿어주게 된다. “선생님이 네 아픈 맘을 조금이라도 토닥여줄게. 넌 원래 보석을 가진 아이야. 네가 아직 그게 있는지 몰라서 안 쓰고 있는 거야. 네가 만들 첫 번째 다이아몬드가 어떤 미덕일지 궁금하구나. 선생님이 그 미덕을 깨우도록 도와줄게.” 그 믿음은 머지않아 기적을 낳고 한 아이 인생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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