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대표하는 나무에는 뭐가 있을까? 나무이야기를 쓰려고 책상에 앉아 곰곰이 생각해본다. 뭐니 뭐니 해도 가을은 단풍과 열매의 계절이다. 지난 호에 홍은정 씨가 단풍에 대해 글을 썼으니 이번엔 열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볼까 한다. 

가을 열매를 이야기하라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도토리다. 도토리가 달리는 나무를 우리는 참나무라 불렀다. 참나무는 어느 한 종(種)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참나무과 참나무속에 속하는 여러 나무를 가리키는 명칭이다. 도토리라는 열매가 얼마나 중요했기에 ‘진짜, 으뜸, 정말’이라는 뜻의 ‘참’자를 나무 이름에 붙였을까 짐작해 볼 수 있다. 처음엔 열매 하나만을 보며 이것도 참나무 저것도 참나무 이렇게 불렀으리라. 그런데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도토리가 다 똑같지 않더라. 그래서 조금씩 다른 점을 찾아보며 특징을 찾아 이름을 붙였다. 그래서 나온 이름이 신갈나무 떡갈나무 갈참나무 졸참나무 굴참나무 그리고 상수리나무이다.

그런데 이름을 보면 참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다른 참나무들은 이름에 공통적으로 ‘참’자가 들어간다. 그런데 상수리나무만 다른 형식의 이름을 가졌다. 널리 알려져 있는 이야기로는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선조임금의 수라상에 올랐다고 해서 상수리나무라고 이름 지어졌다는 이야기가 있다. 정말일까?   

도토리가 사람들에게 식량으로 다가온 역사를 보면 신석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석기시대 사람이 살았던 집 유적에서 발견된 도토리 흔적들과 그 도토리를 요리하기 위해 사용된 도구들로 미루어 이미 그때부터 도토리는 중요한 식량이었음이 밝혀졌다. 또한 도토리에 있는 탄닌이라는 성분 때문에 생기는 떫은맛을 없애기 위해 물에 담가놓거나 바닷물에 담가놓기까지 했다. 이렇게 오랜 역사를 가진 도토리나무가 이름 없이 살다가 조선 중기가 돼서야 임금님으로 인해 이름이 생겼을 리는 없다. 그렇다면 그 전에는 어떤 이름으로 불리었을까?   

상수리나무 잎

‘한국식물생태보감’을 쓴 김종원 교수에 의하면 상수리나무를 뜻하는 한자어인 상(橡)자와 열매를 뜻하는 실(實)자가 합쳐져 ‘상실’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다가 상실이 상수리가 됐다고 한다. 그러나 이도 15세기 이후의 문헌에 나와 있는 내용일 뿐이다. 필자는 그 이전이 궁금하다. 한자를 공부하는 일부 선비들과 양반들의 지식보다는 도토리를 줍고 먹고 살아가는 대다수의 백성들이 어떻게 불렀을까가 더 궁금하다. 그들도 그렇게 불렀을까?  

필자는 시댁 부모님과 가까운 거리에 살고 있기에 해마다 가을이면 도토리묵을 얻어먹게 된다. 그러면서 어떻게 도토리묵이 만들어지는지 자세히 알게 됐다. 먼저 도토리를 열심히 주워오셨다. 주운 도토리를 일일이 껍질을 까고 말려서 방앗간에 가서 가루로 만들어온다. 그리곤 물에 담가 쓴맛을 우려내고 커다란 자루에 담아 짜내며 물을 따라내고 다시 받고를 몇 번이나 거듭하면 구수한 맛의 녹말이 만들어지고, 마지막으로 물을 빼고 말려서 도토리 가루를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도토리가루를 묵이 먹고 싶을 때마다 풀을 쑤듯이 쒀서 식혔다가 굳으면 잘라서 먹는 것이다.

가게에서 사먹는 도토리묵을 보면 비싸다는 생각이 많았는데 도토리가 묵이 되기까지 과정을 알고 나니 그 노력과 정성에 결코 비싸단 말을 못하겠다. 요즘 젊은 사람들보고 해보라 하면 힘들다며 못하겠다고 손사래를 칠 것이다. 그러니 어르신들이 해주시는 묵은 정말 절이라도 하며 감사하게 먹을 일이다. 

상수리나무는 참나무 종류 가운데 가장 빨리 자라는 나무로 남부지방에서는 어린 나무일 때 1년에 무려 1m씩이나 큰다. 상수리나무는 햇빛을 좋아하고 높지 않은 산비탈이나 낮을 곳을 좋아하기에 사람들이 사는 마을과 가까이에 있다. 사람들도 도토리를 얻기 위해 일부러 나무를 심고 숲을 가꾸었다. 요즘 숲에 가면 도토리를 주워가지 말라는 현수막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사람들에겐 맛있는 먹을거리 중에 하나이겠지만 다람쥐, 청설모, 멧돼지 등 야생동물들에게는 중요한 겨울 식량이 되기 때문이다. ‘적당히’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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