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화면캡쳐

삶이 고단했던 두 명의 여가수가 있습니다. 노래를 들어보면 무언가 속에 있는 이야기를 다 하고 싶어 하지만 너무나 아픈 것이 많아서 차마 내뱉지 못하는 그런 막혀 있는 목소리로 자기가 살아온 인생을 노래하는 듯한 두 여인입니다. 먼저 인생이 영화 그 자체였던 샹송의 여왕 에디뜨 삐아프(Edith Piaf)예요. 극심한 가난 속에서 폐인처럼 지내던 아버지에 이끌려 거리에서 노래 부르던 유년시절을 겪다가 우연히 카바레 주인의 눈에 띄어 직업 가수의 길로 들어선 후에 화려한 스타의 길을 걷게 됩니다. 그러나 항상 응어리 진 슬픔을 머금은 목소리로 비련의 삶을 노래하다 불꽃처럼 사그라진 그런 여인입니다. 

그에 못지않은 아주 가슴 아픈 삶을 살다 사라져버린 또 한 명의 가수가 빌리 할리데이(Billie Holiday)인데, 그녀의 삶에는 행복한 시절이 단 한번이라도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게 할 정도로 안타까운 삶을 살았습니다. 그녀의 요약된 인생은 배고픔, 성폭행, 매춘, 약물중독, 교도소생활, 쓸쓸한 죽음으로 정리가 되네요. 

축복받지 못하며 태어난 흑인소녀는 끼니를 위해 사창가에서 허드렛일을 했습니다. 희망이라는 것은 그 소녀에게는 해당되지 않은 사치품이었지요. 그런 소녀의 힘든 나날을 위로한 것은 루이 암스트롱의 음악뿐이었습니다. 루이 암스트롱이 첫 음반을 내게 되는 1925년에 소녀는 백인 남성에게 성폭행을 당합니다. 불과 11살의 나이었습니다. 만일 우리나라에서 지금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난리 났을 일이었겠지요. 하지만 거꾸로 백인남자는 무죄로 풀려나고, 흑인소녀는 불량죄로 감화원에 갇히게 됩니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마는 지금 전 세계에 인권의 중요성을 부르짖는 미국 땅에서 1925년에 일어났던 일이었습니다. 2년을 교도소에 갇혀있던 소녀는 13살부터 ‘먹고살기 위해서’라는 자기변명을 가슴속에 붙이고서는 매춘부 생활을 하게 되지요. 그러다가 더 이상 몸 파는 일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며, 허름한 나이트클럽의 가수 자리를 얻게 됩니다. 그녀의 이름이 바로 빌리 할리데이! 

평생의 음악생활 중 가장 완벽한 호흡을 맞췄던 색소폰연주자 레스터 영(Lester Young)은 무대 위에 있는 그녀를 기품 있는 숙녀 홀리데이 라는 뜻을 담아 Lady day라고 부르며 경의를 표했습니다. 그 정도로 무대 위에서 빌리 할리데이는 암울한 인생과 전혀 다른 기품을 보여주었지요. 하지만 당시의 미국사회는 흑백차별이 존재했던 시대. 흑인여성으로서 최초로 백인밴드와 일을 하면서도 멤버들과 함께 식사를 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호텔에서도 정문 대신 부엌문으로 출입을 해야 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는 흑인이라는 이유로 병실을 못 얻고 숨을 거두고 맙니다. 그 이후부터 얻은 마음의 상처로 마약에 손을 대기 시작했고, 그 마약은 그녀의 인생 전부를 암흑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만들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1930년대 말 미국 남부지방에서는 백인들에게 흑인이 무차별 공격을 당하는 대형 사건이 일어납니다. 백인들에게 희생당한 흑인들이 나무에 목이 매달려 있는 끔찍한 사진으로도 유명한 사건이지요. 그 사건 이후 한 무대에서 공연을 하는 그녀에게 한 백인 여성이 말을 건넵니다. ‘이봐! 제목이 뭐였더라? 검둥이 시체가 나무에 매달려 흔들리는 섹시한 노래, 그 노래 좀 불러봐’라고요.

‘Strange Fruit’ 라는 곡인데, 이 곡의 가사는 그 사건을 목격한 고등학교 교사가 그때의 끔찍한 광경을 시로 풀어서 쓴 것이었어요. ‘남쪽 지방 나무에는 이상한 열매가 열렸네. 이파리에 묻은 피와 뿌리에 고인 피 검은 몸뚱이가 남풍을 받아 건들거리네.’

노래를 부르는 그녀의 심정이 어떠했겠는 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간신히 노래를 마치고서 눈물을 터뜨려버리고 만 그녀는 그때 이후 공연마다 마지막에 항상 이 노래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3번의 결혼과 3번의 이혼, 전직 창녀로 마약 복용자로 5번의 감옥살이. 그렇게 서서히 쓰러져 가던 그녀는 결국 1959년 44세의 나이로 쓸쓸히 숨을 거두게 됩니다. 그녀의 사망 당시 진료기록에는 병명에 마약중독 말기증상이라고 적혀 있었고, 치료방법은 없음 이라고 적혀있었답니다. 세상에나! 그녀의 죽음 이후에 많은 이들은 그녀가 얼마나 기구한 삶을 살았으면 죽음으로 인해 진정한 평화를 얻었다고 이야기 했습니다.

우수와 슬픔을 머금은 목소리로 자신의 인생을 노래했던 빌리 할리데이, 독특하고 우울한 음색과 곡의 해석에 있어 천부적인 감각을 가졌습니다. 그녀의 음악에는 블루스 느낌이 아주 진했던지라 슬픈 멜로디를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감성에 누구보다도 잘 어울렸습니다. 빌리 할리데이의 노래 중에서도 가장 많이 사랑 받았던 곡은 ‘I'm A Fool To Want You’입니다.

1990년대 중반 국내에 느닷없이 재즈 열풍이 불어 닥쳤을 때 재즈 하면 이 곡이다 싶을 정도로 많이 들려졌던 곡이지요. 이 곡은 그녀가 죽기 전해인 1958년에 단 3일 만에 만들어진 그녀 최고의 명반에 수록돼 있습니다. 죽기 바로 직전에 만들어졌다고 하니 마지막 호흡을 혼신의 힘을 다해 노래에 담아 최고의 작품을 만들었다 생각하니 우리나라 김정호씨와 김현식씨도 생각나게 하는군요. 이 곡은 마약중독으로 인해 건강이 악화돼 죽음으로 한발 한발 들어서는 고통스럽고 괴로운 그녀의 음성이 끝없는 슬픔으로 듣는 이를 인도하는 것 같습니다. 이 가을날, 사랑과 행복을 간절히 원했던 빌리 할리데이의 울부짖음과도 같은 이 노래를 독자들과 함께 듣습니다.

빌리 할리데이 - I'm a Fool to Want You 음악 듣기
https://youtu.be/OcpuoVrbYlE

저작권자 © 용인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