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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는 붕대를 감을 뿐 상처는 하느님이 치료한다
  • 이동훈(서울새로운내과 원장)
  • 승인 2017.10.10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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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덴만 여명 작전은 2011년 소말리아 해적에 피랍된 삼호주얼리호 선원들을 무사히 구해내고 해적을 소탕한 성공적인 작전이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 석해균 선장은 해적이 쏜 총에 맞아 중태에 빠졌는데 현지에 급파된 이국종 교수가 한국으로 이송, 성공적으로 치료했다. 한국의 경우 총상 환자가 흔하지 않지만 전투가 벌어질 경우 무기류에 의한 신체 손상과 외상이 많이 발생할 수밖에 없어 신속한 치료가 필요하다. 지금은 여러 외과적 치료 방법이 발전했지만 과거에도 각종 상처에 대한 치료방법은 존재했다.

인류의 역사만큼 오래된 전쟁의 뒤편에 수많은 전사자와 부상병들이 있었다. 고대에도 갈라진 피부상처를 봉합하거나 부러진 뼈를 다시 맞추는 치료법이 당연히 존재했다. 사기의 <편작열전>에 장기를 수술하고 장을 세척한다는 기록이 있고 부상당한 관우의 팔을 수술한 화타의 일화는 유명하다.

<동의보감>에도 쇠붙이로 장기가 상했을 경우 실과 바늘로 꿰매 봉합하는 방법이 기술돼 있고, 화살촉을 뽑아내기 위해 자석을 사용하는 방법, 상처에 약초를 바르는 치료법이 있다. 그러나 심각한 중상에서는 치료할 수 없다고 기록돼 있고 갑신정변 때 민영익의 상처를 봉합하지 않고 고약으로 치료하려던 것을 보면 서구와 같이 수술 후 감염증 등으로 결과가 좋지 않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서구에서도 치열한 전투에서 생긴 부상병을 치료하는 의료진이 존재했다. 트로이 전쟁을 묘사한 호머의 서사시 일리아드에는 영웅들의 대결뿐 아니라 치열한 싸움이 끝난 뒤 부상병을 치료하는 의사들의 활동이 기술돼 있다. 이를 살펴보면 난전이 벌어지는 상황에서 고위 지휘관들은 즉시 의사의 처치를 받아 생명을 구했으나, 일반 병사들은 치료 지연으로 화살에 맞았을 때는 42%, 칼이나 창으로 부상당했을 경우 80~100% 가까이 사망하는 큰 피해가 있었다. 부상병들을 얼마나 빨리 치료하는가가 생명을 구하는데 가장 중요하다는, 즉 현재의 ‘골든 아워’가 시작됐다.

그리스 의사들이 상처를 치료하기 위해 사용한 방법은 상처를 깨끗이 씻은 뒤 각종 약초, 광물, 동물 등을 사용해 상처의 벌어진 부분을 메우고 붕대로 감는 것이었다. 약초들 중 일부는 항생 물질이 있고 지혈 역할을 했지만 어떤 것들은 전혀 효과가 없었다. 그리스의 대표적 의학자 히포크라테스는 괴사된 조직을 제거하고 상처를 와인이나 식초 등으로 깨끗하게 씻어 주고 꿀이나 오일을 발라두면 자연이 저절로 치료하게 해준다고 믿었다. 기와 유사한 체액의 흐름을 믿었기에 붕대를 너무 단단하지 않게 동여매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당연히 나쁜 기를 뽑아내기 위해 피를 제거하는 사혈이 시도됐다. 건강한 사람의 경우 사혈로 인한 출혈을 감수할 수 있지만 과도한 출혈이 동반됐을 때는 매우 위험한 치료 방법이었다.

서구 중세시대에는 의학을 비롯한 과학 발전이 정체됐는데, 특히 환자의 피를 만지는 것은 부정한 것으로 생각하면서 이발사, 목수들이 외과 처치를 담당했다. 체계적 의학교육이 없는 이들이 외과 치료를 담당하면서 혈관을 묶어 지혈하는 방법과 괴사 조직을 제거한 뒤 창상봉합과 같은 적극적인 처치는 사라져갔고 중요한 상처 관찰은 간과되고 잊혀졌다. 상처 치료는 나쁜 기운을 몰아내는 자연 치유법과 식이요법이 사용됐지만 효과는 좋지 못했다.

14세기 유럽에서 화약무기가 사용되면서 부상병의 상처는 심각해졌다. 몸을 관통하거나 깊은 상처를 발생시키는 총알은 칼이나 활과는 다른 형태의 손상이었다. 총상은 몸 속 깊은 출혈을 발생시켰고 이차적인 감염은 전신으로 퍼지면서 생명을 위협했다. 치명적인 총알의 위력은 납으로 만든 탄환의 독 때문이라는 잘못된 생각으로 상처에 끓는 기름을 붓는 소독 방법이 나타났다. 현재 기준으로는 끔찍하고 어처구니없는 치료법이었지만 이탈리아의 파레가 나타나기 전까지 흔히 사용됐다.

1536년 이탈리아의 외과의사 파레는 총상을 입은 부상병 치료를 하고 있었는데 환자가 너무 많아지면서 끓는 기름이 다 떨어졌다. 파레는 고대 그리스 로마시대부터 전해져 내려오던 상처 치료 방식인 계란 흰자, 장미 기름, 송진 등으로 고약을 만들어 병사들 환부에 발랐다. 총알의 독으로 환자들이 죽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밤잠을 이룰 수가 없었던 파레는 다음날 일어났을 때 놀라운 상황을 맞이하게 된다. 끓는 기름으로 치료한 환자는 더 악화되고 고통스러워 한 반면 고약만 사용할 경우 회복되고 있었다.

파레는 총상에 더 이상 뜨거운 기름을 사용하지 않고 소독과 고약, 붕대를 감아주는 치료 방법을 사용해 큰 효과를 봤다. 단지 자신은 붕대를 감아줄 뿐 치료는 신이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파레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많은 부상병들은 여전히 회복되지 못하고 있었고 더 좋은 치료법이 필요했다.

이동훈(서울새로운내과 원장)  webmaster@yongin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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