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모니카 사랑에 빠진 조지수씨

 

청력이 약해져 잘 들리지 않는다. 곁에서 말하는 대화 소리는 물론 걸려온 전화 소리도 쉽게 듣질 못한다. 몇 번의 물음을 듣고서야 답변이 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올해 여든도 꺾였다. 그런 노신사가 손에서 떼놓지 못하는 것이 있다. 일주일에 한 두 번은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과 모임도 가진다.

호흡을 가다듬고 긴 숨을 내 쉬니 손에 쥔 한뻠만한 악기에서 투박한 듯 혹은 섬세한 소리가 흘러나온다. 자리를 함께 한 사람들의 소리까지 더해지니 제법 음률이 맞다. 2분여의 연주가 끝나자 조지수(85·사진)씨는 하모니카를 손에서 내려놨다.

하모니카 소리보다 분명 큰 사람의 목소리도 쉬 듣지 못하지만 조지수 할아버지는 동료들의 이탈음을 잡아주는 선생님 역할을 톡톡해 해내고 있다.

지난달 21일 가을 빛 화창한 그날. 용인시청 한 곳에 모인 서너명의 이들이 각개전식으로 하모니카 연습을 하고 있다. 평균 나이가 칠순을 넘었지만 일주일에 두시간 가깝게 연습할 정도로 열정이 대단하다. 모임 이름을 물으니 그런거 없단다. 그저 실력이 모자라 늘 연습하는 사람들이란 말만 한다. 수다스럽지도 않은 무리에서 조지수씨는 선생님이란 호칭을 듣고 있다.

“아니에요. 연습을 더 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인데 선생님이 따로 있나요. 서로 틀린 부분이 있으면 바로 잡아주며 어울리는 거죠”

하모니카를 배운지 2년째라는 조지수씨는 애초 이 악기에 관심이 없었단다. 소리도 크고 역동적인 동작도 더할 수 있는 아코디언에 ‘엄지척’ 했단다.

그런데 왜 하모니카를 선택했나고요. “아코이언은 악기가 너무 크잖아요. 이동하는데 어렵고, 솔직히 가격도 너무 비싸고요. 반면 하모니카는 조그마한데도 정말 훌륭한 악기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2년째 연습하고 있는데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이 많아요”

주변에 큰 잡음이 없는데도 조지수씨는 잘 듣질 못했다. 기자에게도 큰 소리로 말해달라는 양해를 수차례 한터다.  

근데 이상하다. ‘선생님’이라 불릴 만큼 하모니카의 섬세한 소리를 어떻게 들을까. “실력이 부족해 계속 연습을 하고 있어요. 그렇다보니 하모니카 소리는 다른 것보다 더 잘 들리는 것 같아요. 청력이 약해진 것과 하모니카 소리를 듣지 못하는 건 큰 상관이 없어 보여요”

이내 조 할아버지는 사람들에게 한곡을 함께 연주할 것을 부탁한다. 잠깐의 조율을 마치더니  연습에서 익힌 익숙한 모습을 보인다. 긴 호흡을 필요로 하는 하모니카 연주지만 누구 하나 끊임이 없다. 2분여에 걸친 연주를 끝내자 박수소리가 나온다. 관객이라곤 없는 깜짝 연주회. 그 모습에 스스로가 박수를 보낸 것이다. 

“이 나이가 돼서 무언가 새롭게 시작한다는게 쉽지 않아요. 집에서도 하모니카 연습을 제대로 할 시간이 없거든요. 그렇다 보니 일주일에 한두 번 여기 계시는 분들과 연습하는게 너무 즐거워요. 그냥 참 좋은 것 같아요”

얼마나 지났을까. 연습을 시작한지 한시간이 훌쩍 넘었다. 가을 오후 햇살이 땅으로 스며들 시간. 주변을 오가던 사람들의 발길도 뜸해진 그때서야 주섬주섬 악기를 챙겨든다.

조 할아버지의 하모니카 한쪽에는 그의 ‘조지수’란 이름이 아로새겨져 있다. 마치 학교생활을 시작한 새내기의 모습처럼 여겨진다. 

“기자 양반. 내 이야기를 신문에 실을 건가요? 실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연습하는게 특별한게 없잖아요. 그냥 이렇게만 적어줘요. 악기를 배우고, 사람들을 만나 즐겁게 연습하고, 하모니카를 부르면 호흡도 좋아지니 더 많은 분들이 함께 했으면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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