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여름 태양의 에너지를 듬뿍 받고 자란 포도는 거의 검은빛에 가깝다. 검은색 음식이 이렇게 먹음직스럽게 식욕을 자극하는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 달콤하게 잘 익은 포도송이는 겉에 하얀 분이 베어 나온다. 발그레한 포도를 한 개 집어 손가락으로 잡고 입안에 넣는 순간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다. 이로 살짝 깨물며 껍질의 약한 부분을 톡 하고 터지게 해 말랑말랑한 과육과 새콤달콤한 과즙이 입안으로 돌진하게 해야만 한다. 껍질에 남은 한 방울의 과즙도 아까워하며 쓰읍 껍질을 빨아먹곤 빼내는 것이 우리가 포도를 아낌없이 즐기는 기술이다. 해마다 이맘때면 집집마다 ‘포도대장’을 임명케 하는 포도는 포도주, 포도즙, 포도주스, 포도잼, 건포도 등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모해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대부분 우리가 포도나무를 처음 보는 건 과수원, 특별히 포도원이라 이름 붙여진 곳에서 만나게 된다. 포도가 달리는 포도나무를 본 적이 있는가? 포도나무는 다른 과일나무에 비해 가느다란 몸을 가졌다. 가냘픈 허리와 몸을 가진 채 기다란 팔을 뻗어 깡다구만 남은 어깨로 떠받쳐 수많은 포도를 키워낸다. 열매를 만드느라 제 몸을 살찌우지 못하는 포도나무 줄기가 애처로우면서도 대견하다. 

포도나무 껍질은 적갈색으로 세로로 길게 갈라지며 벗겨진다. 잎은 마주나며 덩굴손으로 다른 물체를 감고 올라간다. 잎 뒷면에는 흰색 털이 있다. 꽃은 6월에 피고 노란빛을 띤 녹색의 작은 꽃이 포도송이마냥 많이 달린다. 포도나무는 꽃이 암수가 따로 다른 나무에 피는 종류와 한 나무에 암꽃과 수꽃이 함께 달리는 나무가 존재한다. 우리가 먹는 포도는 주로 암수 한그루 종류에서 진화해왔다고 한다. 꽃이 지고 열매가 달리면 여름 햇살을 받으며 검게 그을려간다. 포도알은 성숙함에 따라 단맛이 강해지고 신맛이 줄어든다. 이 때 향도 같이 달달해진다. 포도 입으로 부르기도 전에 입안에 침이 고인다.

포도는 과일 중 가장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키워온 과일이다. 야생 포도는 신석기 시대부터 먹기 시작했고, 기원전 3000~3500년 전부터 재배되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는 머루 또는 멀위라고 부르는 야생포도가 있는데 지금 먹는 포도와는 좀 다르게 생겼다. 오늘날 먹는 포도와 비슷한 종류가 들어온 것은 중국을 통해 유럽종포도가 들어온 고려시대라고 추측된다. 포도라는 명칭은 유럽종포도의 원산지인 서아시아지방의 원어 ‘Budow’에 근원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예전엔 그해 첫 포도를 따면 사당에 먼저 고한 다음 집안 맏며느리에게 먹였다고 하는데 이는 주렁주렁 달린 포도송이가 다산을 상징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의 포도재배는 조선시대 초기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조선왕조실록》 《산림경제》 《지봉유설》 《임원경제지》 등에 포도에 관한 기록이 실려 있는 것으로 봐서 포도에 대한 관심이 많았음을 알 수 있다. 본격적인 재배는 구한말 일본을 통해서 미국계 포도를 도입하며 시작됐다. 1901년 프랑스 신부 안토니오 콩베르에 의해 처음 도입됐고, 구포동 성당 한 교인에 의해 안성에서 처음 대량으로 재배됐다. 

포도나무는 음식으로서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상징적 의미를 띄며 인류의 역사와 문화에 녹아들어왔다. 기독교에서는 예수님을 상징하게 됐고, 그리스 로마신화에서는 디오니소스가 유명하다. 포도로 만든 술인 와인은 이제 음료를 떠나 문화적 현상으로까지 자리 잡고 있다. 또한 수많은 그림 속에서 열매를 맺어왔는데, 현재 가장 유명한 포도 그림은 아마 신사임당의 포도도일 것이다. 현재 오만원권 지폐에 신사임당의 초상과 함께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조선 중종 때 황집중이 그린 ‘묵포도도’가 유명한데 이 그림의 소재가 된 종류는 잎이 다섯 갈래로 갈라지는 까마귀머루라고 한다.

열매를 만드느라 제 몸을 살찌우지 못하는 포도나무를 보며, 자식을 위해 마냥 희생하시는 부모세대가 생각이 난다. 아무리 바쁘더라도 조만간 엄마를 찾아가 포도송이 놓고 또옥 똑 따먹으며 이야기꽃을 피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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