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복, 중복이 지났다. 예전부터 삼복더위를 이겨내라고 몸보신하는 음식들이 따로 있었다. 이제는 항상 몸보신하는 음식들을 먹을 수 있으니 따로 먹을 필요가 있을까 싶은데, 그래도 먹지 않고 넘겼다가는 왠지 더위를 먹을 것 같은 느낌에, 올해도 삼계탕과 추어탕을 챙겨 먹었다. 개인적으로 삼계탕보다 추어탕이 더 몸에 맞는 필자는 얼마 전까지도 추어탕집에서 선뜻 산초가루에 손이 가지 않았다. 이게 웬 팥 없는 팥빵 먹는 소리인가 싶겠지만, 실제로 그랬다. 그런데 어느 날, 회식자리에서 옆자리 계신 분이 당연하다는 듯 산초가루를 한 숟가락 넣어주었다. 그때 얼떨결에 추어탕의 진정한 맛을 알게 됐다. 추어탕 맛이 더 깔끔하고 칼칼해진 것이다. 주변에 추어탕을 꺼리는 지인들이 꽤 있는데, 언젠가 이 맛의 세계로 인도하고 싶다.

산초나무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키가 작은 나무이다. 지금부터 늦은 여름까지 연한 노란색의 작은 꽃들이 모여서 핀다. 산초나무는 소나무 숲에 주로 많이 있다. 필자가 나무이야기를 쓰면서 언급한 적이 있는데, 신기하게 숲도 하나의 동아리로서 서로 잘 맞는 식물들이 따로 있다. 참나무 숲은 단풍나무와 친하고, 소나무 숲은 산초나무가 필수 구성원이다. 그래서 주변 소나무 숲에 가면 반드시 산초나무를 발견할 수 있다. 작은 잎들이 깃털 모양으로 나고, 어긋나는 가시가 있다. 키는 어른보다 작거나 크다. 흔히 초피나무와 산초나무가 비슷해 헷갈린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책으로 식물을 익히면 그런 현상이 생긴다.

산초나무는 우리나라 중부 위쪽에 분포하고, 초피나무는 따뜻한 남쪽에서 자란다. 지역적으로 다르게 분포하기 때문에 용인에서 보는 가시달린 키 작은 나무는 산딸기나 청미래덩굴을 제외하고는 산초가 유일할 듯싶다. 산초가루는 산초나무의 덜 익은 열매로 만든다. 고춧가루가 우리나라에 들어오기 전, 음식에 매운맛을 내거나 향을 내는 향신료로 사용했다는 기록이 많다. 특별한 향신료가 없던 우리나라에서 어쩜 유일한 식품첨가물이 아니었을까. 산초가 많이 나는 지역에선 산초를 이용해 장아찌, 물김치도 담그고 나물을 무치거나 전을 부칠 때도 많이 이용한다. 삼겹살을 구울 때 시판하는 허브솔트나 타임, 로즈마리 등의 다른 나라 허브를 뿌리지 말고 산초나무 잎을 깔고 구워보자. 돼지의 비린내도 잡아주고 은은한 향이 나서 좋다. 중국의 유명한 혼합향신료인 ‘오향’에도 산초가 들어가는데, 그 맛과 향이 참 좋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충북 청주시, 초정약수의 ‘초’는 산초의 ‘초’로, 산초처럼 알싸하게 톡 쏘는 맛이 있다는 의미이다. 산초의 맛을 가늠해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산초나무의 잘 익은 열매로는 기름을 짠다. 약으로 산초기름을 한 숟가락씩 먹기도 한다. 기름으로 두부를 지져먹으면 또 그럴게 별미라는데 아직 맛을 볼 기회가 없었다. 식물을 알아가다 보면, 음식에 소질 없는 것이 참 불리하다 느낄 때가 많다. 식물의 대부분이 먹을 수 있는 것인데, 이것저것 안 먹어본 것이 이렇게 많으니, 식물을 진짜로 안다고 말하기 무안하다. 이럴 땐 시골의 연세 드신 어머님들이 참 대단해 보인다. 산과 들에서 먹을 수 있는 것을 가져오셔서 뚝딱뚝딱 요리를 하시니 말이다. 요리의 맛을 내는 데에는 남다른 재능이 필요하니, 남은 인생을 지역 맛집을 찾아다니며 보내야 겠다.

갑자기 밥이 보약이란 말이 떠오른다. 식용하는 식물은 대부분 약용한다. 우리가 평상시 먹는 나무, 풀들이 약으로 쓰인다는 말이다. 주부의 한 사람으로서 또 깊이 반성한다. 신경을 조금만 더 쓴 식탁이 내 가족의 보약이라니. 탄수화물, 단백질만 수북한 밥상은 치우고 양은 적어도 다양한 음식을 내어 놓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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