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자리를 지킨 사람들이 있기에 역사는 전진하는 것”

강의주제 : 대한민국 사회운동사(4·19에서 광화문까지)

지난 달 29일 경기도박물관에서 열린 용인민주시민교육 아카데미 <6강>은 격동의 한국현대사(4.19에서 광화문 촛불끼지)라는 주제로 진행됐다. 이날 특강은 한홍구 역사학자(성공회대 교수)로 최근 반민주행위자 열전 작업을 소개하기도 했다. 한 교수는 “여러 가지 이유로 현실에선 처벌할 순 없을 지라도 역사의 법정에 세우는 공소장을 만드는 것과 같은 작업”이라고 말했다. 한홍구 교수의 강연내용을 축약해 싣는다. /편집자

1년 전쯤 강의를 다니면서 제가 희망전도사처럼 느껴지는 느낌이 있었다. 그 때 분위기가 대개  축 쳐져 있었다. 그래도 강의 가선 ‘희망을 버리지 마십시오. 역사는 진보합니다’ 라고 말했다. 듣는 대중들은 속으로 ‘역사가 무슨 개뿔 진보하냐? 퇴보하고 있는데’ 그랬을 거다. 그런데 요 몇 달 사이에 확 변했다. 요샌 이렇게 말한다. ‘다 된 것처럼 착각하지 마세요. 세상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지금보다 더 좋은 찬스도 많았어요. 지금은 오히려 정신 바짝 차려야 합니다’라고 말이다.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역사학자

사회운동사, 대중운동사를 보면 우리가 끝마무리를 잘 못했다. 죽은 많이 쒔지만 개를 줬다. 지금도 죽은 얼추 쑤어가는 거 같지 않나? 해방직후 친일파 청산은 99.9%가 찬성이었다. 그런데 어떻게 됐나. 친일파가 살아남았다. 그냥 살아남은 게 아니다. 친일파 민족반역자를 처단해야 한다고 외친, 민족적 양심 가진 사람들이 거꾸로 청산 당했다. ‘역청산’이었다. 왜? 분단 때문이다. 또 어떤 찬스? 87년 6월 항쟁 때 쟁취한 직선제 선거에서 민주진영이 질 거라고 누가 상상했나. 97~98년 외환위기 때 재벌해체,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했던 거다.

21세기는 촛불과 함께 시작했다. 2002년에 미선이‧효순이 사건이 있었다. 세계사는 미국 911 테러로 시작했다면 우린 촛불과 함께 시작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언제 또 다시 촛불 들어야 할지 모른다.

우리 역사는  왜 그럴까. 변화, 우리가 가져왔지만 촛불을 졸업 못하고 이렇게 갈 수밖에 없는 이유는 뭘까. 국정교과서, 왜 밀어붙였을까. 박근혜 정권이 권력, 정부조직, 정보 다 장악하고  모든 자원 다 동원할 수 있는데 역사만 못 가졌다. 왜? 간단하다. 역사의 주인이 여러분이라서 그렇다. 여러분이 삶을 포기하고 갖다 바치지 않는 한 역사의 주인은 우리 다수의 시민들이기 때문이다. 권력이 역사를 만들어 낼 수 없다. 재벌이 돈 주고 살 수 없다. 역사 소유권 이전 등기? 그런 거 없다.

숱한 ‘역청산’의 역사가 주는 교훈 잊지 말아야
젊은 아이들이 역사가 진보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으면 어떻게 될까. 말 안 들을 거다. 왜? 역사를 우리 손으로 만들어 나가고 우리가 좋게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다면, 지금 세상이 힘들면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할 것 아닌가. 학교에서 평등하다고 배웠는데 불평등이 쫙 퍼져있으면 ‘뭔가 잘못됐다’, ‘바꿀 수 있어’, ‘바꿔왔잖아’ 할거다. 바꿔온 역사, 어제보다 오늘이 좋았던 역사를 쭉 배웠다면 내일은 더 좋게 만들 것이다. 그런데 ‘엘리트들이 다 했어. 한국사 한 번 봐. 다 그렇게 내려온 거야. 추운데 개고생하지 말고 열심히 공부해. 촛불들고 히죽거리는 애들 말고 시험 준비하고 스펙 열심히 쌓으면 밥은 먹게 해줄게.’

결국 국정교과서를 만든다는 게, 박정희 전 대통령이 조금 더 들어가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역사관 자체를 흔드는 문제인 것이다. 다시 말해 ‘세상을 바라보는 자세’에 대한 문제다. ‘세상 안 바뀌는 거야!’ 그런데 우리는 더 빨리 더 많이 세상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거다. 그게 역사전쟁이다.

<한국민중사> 사건이라고, 그거 만든 출판사 대표가 구속된 일이 있다. 징역 5년 구형에 3년 받았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라는 책은 당시 최고의 금서 중 하나다. 5월 광주에 대한 책을 내고도 무사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감옥에 가진 않았다. 역사를 민중의 시각으로 바라본다는 거, 그게 정말 중요한 거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시킨 변화가 어디서 시작됐는지 복기해볼 필요가 있다. 이런 엄청난 변화가 어디서 시작됐나. 나는 단연코 20대 4·13 총선이라고 본다. 전야의 분위기는 어땠나? 선거 해보나마나였다. 그런데 막상 투표해보니까 예상은 뒤집어졌다. 이 변화는 어디서 나왔을까. 누가 이런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을까. 바로 헬조선, 흙수저들이다.

그런데 왜 헬한국이 아니고 헬조선인가. 신분제 세습제 봉건제 사회로 돌아갔다는 의미다. 민주주의는 개뿔이다. 18·19세기 조선시대로 간다는 거다. 우리가 만들려는 세상이 어떤 세상인가. 못사는 것도 서러운데 가난 대물림, 권력과 재산, 사회적 계층 세습되는 사회는 정의로운 사회가 아니다. 정의로운 세상 한 번 만들어보자. 그래서 권력을 바꿔냈다. 그런데? 세상을 못 바꿨다. 오히려 전직 대통령은 부엉이바위에서 뛰어내렸다. 

울퉁불퉁한 역사 거쳐 만든 ‘민주주의 한류’  
역사는 왜 자꾸 되풀이될까. 2012년 대선을 복기해보면 우리보다 사흘 앞서 일본 총선, 아베가 당선됐다. 사흘 뒤 한국에서 박근혜 정권이 탄생했다. 아베와 박 전 대통령 모두 만주국 출신의 2세, 3세가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정상으로 떠올랐던 것이다. 20세기 후반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두 나라였는데 왜 이렇게 구체제로 돌아갈까. 북쪽은 3대째 항일무장투쟁의 정통성만 우려먹고 앉아있다. 아시아에서 제일 큰 중국은 어떤가. 시진핑은 대표적인 태자당이다. 아버지가 중국 혁명의 8대 원로다. 그러나 자학하지 말라.

유럽은? 프랑스혁명을 한 다음에 단두대를 갖다 놓고 왕의 목을 쳤다. 그런 프랑스에서도 역사의 반동이 왔다. 마르크스가 악담을 했다. 역사는 두 번 되풀이된다. 한 번은 비극, 한 번은 웃음거리로. 프랑스도 파리꼬뮨(파리혁명정부)을 겪고 수만 명이 피를 흘리면서 민주주의가 정착된 거다. 이런 울퉁불퉁한 역사를 거쳐서 여기까지 온 거다. 파리꼬뮨 겪으면서 몇 만 명이 죽었다. 촛불은 달랐다. 좀 이상한 놀라운 일이다. 민주주의의  새로운 장을 열면서 발을 내딛는데, 눈 덮인 길에 첫 발 내딛는 것처럼 잘 가야 한다.

한국은 언제나 미국처럼 민주주의 역사를 써보나 했다. 요즘은 미국이 오히려 ‘We can do it!(우리도 할 수 있어!)’라고 한다.  한국 민주주의가 전 세계 민주주의에 가장 앞선 실험이 되어버렸다. 백범선생이 쓴 회고록이 있다. 서산대사의 ‘눈길 함부로 걷지 마라. 우리 발자국이 뒷사람들이 보면서 따라오게 되니까.’ 진짜 한류는 K팝 아이돌을 넘어 민주주의의 한류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한국전쟁과 4·19혁명을 얘기해 보자.  1953년 7월에 한국전쟁 끝났다. 4·19가 1960년 4월에 일어났다. 전쟁이 끝나고 ‘만 7년이 지나지 않았는데’ 혁명이 일어난 것이다. 2차대전 뒤 첫번째 시민혁명이 4·19인데 결국 승리로 귀결되진 못했다. 장준하선생이 한 말이 있다. 수유리 4·19 묘지에 가보면 답이 있다고. 죽은 사람들 나이를 보라. 여중생에서 많아야 스물 서넛 먹은 대학생들이다. 아이들만 앞장서서 총알받이 했는데 성공하겠나. 앞으로는 제발 어른들이 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런데 이 아이들은 1960년 4월 당시에 십대 후반이었다. 1940~1945년에 태어난 아이들이다. 해방된 뒤 입학했다. 중요하다. 4·19의 진짜 주역들은 식민지 노예교육을 받지 않은 첫 세대였다. 일본군국주의 교육 대신 미국식 민주주의 교육, 일본어 아닌 한국어로 교육받은 세대가 엄청난 역사의 사고(?)를 친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 역사는 이 모양인가. 4·19세대 어디 가면 만날 수 있나. 탄핵반대집회에 가면 만날 수 있다. 이건 무슨 얘긴가. 한국 역사가 앞으로 어떻게 될 거냐 하면 촛불 30년, 50년 후에 어떤 자세를 취할 거냐에 달렸다. 이들이 수구꼴통이 되어 있으면 대한민국 그런 역사가 되는 거고 민주개혁의 길 계속 가고 있으면 민주개혁의 역사 되는 거다. 결코 복잡하지 않다. 그게 역사다.

‘살아남은자의 슬픔’이 변화 이끈 힘! 

광주. 올해 5·18이 37주년이었다. 얼마나 중요한지 강연가면 자세히 얘기했다. 내 인생을 바꾼 사건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줄여 말한다. 이유는? 시간이 너무 많이 흘렀기 때문이다. 해방된 뒤 대한민국이 의병 이야기를 거품물고 하는 것과 똑같은 거다. 딱 한 가지만 끝까지 생각해보라. 5월26일 밤10시반이다. 오늘 12시 넘어 몇 신지 모르지만, 계엄군이 쳐들어온다고 한다. 당신 같으면 어쩌겠나. 도청에 남을까 집에 갈까. 정직하게 끝까지 그 하나의 질문만 생각해보면 5‧18에 대해 알아야 할 건 거기 다 있다.

게임은 끝난 거였다. 그래서 대부분 집에 갔다. 그런데 1%쯤 되는 3백여 명이 남았다. 뭘 생각하고 남았을까. ‘죽기로 싸우면 계엄군 몰아낼 수 있어!’, 이런 생각이었을까. 그런 바보멍청이들은 없다. ‘그냥 남았어요. 왜? 다 집에 가면 안되니까…’  누구도 남으라 강요할 수 없는 분위기. 누구도 집에 간다고 욕하지 않는 그런 분위기에서…. 그 질문에 우리 세대는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다.

총소리가 멈추고 날이 밝았다. 이제 광주에선 평온이 왔다. 도청에서 폭도들이 다 소탕됐고. 이제 대한민국, 새 시대가 열리고, 새 시대를 끌어갈 위대한 대통령, 전두환! 그런 방송을 들었을 때 심경이 어땠을까. 그때부터 생긴 말, 그 분위기를 표현한 말이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었다. 80년대를 이끌어온 힘, 우리 역사를 관통해온 힘, 제일 중요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올해는 6월 항쟁 30주년이다. 인터뷰가 많이 들어와서 방송도 많이 나가는데, 6월 항쟁을 한마디로 이렇게 말한다. ‘5월에 집에 간 사람들이 6월에 다시 나와서 싸웠다’고.

죽을 줄 뻔히 알면서 수천 젊은이들이 싸웠을까. 왜 그런 바보가 많았을까. 노무현만 바보였던 시기가 아니다. 이 바보들이 족보있는 바보들이다. 생각이 광주에 가 닿으면… 그다음엔  계산이 안 되는 거다. 그게 광주의 힘이다.

사람 많이 죽은 걸로 치면 한국전쟁, 제주 4‧3때, 한 동네에서 하룻밤에 광주보다 더 많은 사람이 죽었다. 그런데 광주가 가졌던 힘은 살아남은 자의 슬픔, 살아남은 사람에게 주는 부채감, 죽은 다음에 다시 만날 때 그래도 부끄럽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도리를 생각하게 만드는 거다.

평범한 우리가 역사의 주인
현대사에서 발만 대면 되는 찬스를 세 번 놓쳤다. 1987년, 1998년, 2004년 탄핵 후다. 대중운동 자체가 성과를 못낸 거 아니다. 찬스 다 만들었다. 이른바 골 결정력 부족이다. 발만 대면되는데 왜 못 댔을까. 이번에 탄핵이 빨리 이루어진 것은 세월호 영향이 컸다. 전 국민이, 배가 기울어지는 거 보면서, 너무 큰 상처를 받았다. 그때 나온 얘기가 ‘국가란 무엇인가! 이게 나라냐! 이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보면서 나라가 왜 이 모양인지 답을 알게 됐다. 그래서 우리가 바꿔야겠다고 나선 것이다. 

적폐청산 과제는 역대 정권에서 거의 다 실패해왔다. 이번엔 가능할까. 난 가능하다고 본다. 이전에 가져보지 못한 걸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아주 중요한 ‘실패의 경험’이다. 그리고 세월호의 아픔 속에서 더 이상 역사를 망쳐선 안되겠다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다.

역사의 고비마다 대한민국을 지탱하는 힘이 있었다. 특별한 사람들이 아니다. 평범한 사람들이다. 세월호에서 학생들과 함께 돌아오지 못한 비정규직 교사, 매점에서 물건 팔던 여승무원들 등등 자기자리를 지킨 사람들이다. 역사를 책임지지 않는 자들에게 맡기면 안 된다.

울퉁불퉁한 역사에서 찬스는 생각보다 자주 온다. 찬스를 놓치게 되면  누군가 바위에서 뛰어내리고, 또 자녀들이 죽어가고, 또 헬조선이라고 말하게 될 거다. 찬스왔을 때 잘 해야 한다.  역사의 주인으로서 주인답게! 같이 만들어나가자!
정리 박영숙 느티나무도서관재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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