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위협하는 악성 종양은 수천 년 간 인류를 괴롭히는 난치병중 하나였다. 암이라는 글자가 바위처럼 단단하다는 뜻에서 유래된 것처럼 단단한 종양은 촉진으로 감별이 가능했다. 피부 근처에서 발생한 암덩어리들은 거칠게 투박한 모양으로 만져진다. 그러나 몸속에서 발생된 종양은 촉진의 방법으로 확인할 수 없었다.

동의보감과 같은 조선시대 한의서에도 덩어리로 만져서 진단이 가능했던 유방암에 대한 경우 다양한 기록이 있는 반면 내부 장기인 간암 등의 기록이 많은 편이 아니다. 복부에 단단한 덩어리가 만져진다는 적(積)이라는 의미를 포괄적으로 사용했고, 기혈의 정체로 생긴 질환으로 생각했으며 근본적인 치료보다 증상을 완화시키는 시도가 기록돼 있다. 서구에서도 검사 기구들이 개발되기 이전 악성 종양의 조기 진단은 어려웠으며 치료도 힘들었다. 현미경, X선 등의 검사방법들이 개발되면서 몸 내부를 관찰할 수 있었고 악성 종양을 직접 관찰하면서 연구할 수 있게 됐다. 악성 종양이라 할지라도 초기에 발견하면 치료 효과가 더 좋을 것은 분명했다.

1962년 러시아의 아벨레프도 종양세포의 특징을 연구하는 과학자 중 한 명이었다. 1950년대 발전하기 시작한 항원, 항체 등 면역학적 분석 방법은 종양 세포의 특징을 찾아내는데 큰 도움을 줘 암세포의 여러 특성이 발견되고 있었다. 아벨레프는 면역학적 분석 방법을 이용해서 흰쥐의 간암세포에서 몇 개의 특별한 물질을 찾아냈고, 간세포 발달 과정에서 어느 물질이 결정적인 것인지 찾고 있었다.

그때 의대생 한 명이 실습을 위해 아벨레프 실험실에 찾아왔다. 면역분야에 관심이 많았던 의대생은 연구방법을 배우고 실험 검체로 사용되지 않아 남아 있던 흰쥐 태아의 간 세포로 실험을 진행했다. 어느 날 실험을 하던 학생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라졌고 실험실 사람들은 학생이 남긴 중간연구물을 이용해 결과를 만들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흰쥐 태아 간세포에서 아벨레프가 간암세포에서 발견한 물질이 엄청나게 많이 검출됐다.

아벨레프는 학생이 실험 과정에 뭔가 실수를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처음부터 실험을 다시 했다. 그런데 똑같은 결과가 나왔다. 이번에는 간암세포보다 더 많은 양의 물질이 흰쥐 태아 간세포에서 추출됐다. 간암세포의 특별한 물질로 생각했던 아벨레브의 연구는 실패한 것으로 보였다. 연구자들은 큰 실망에 휩싸이면서 이 물질의 정체를 찾아야 했다. 혹시 이 물질이 혈액으로 이동되지는 않을까? 그렇다면 여러 다른 장기에서도 관찰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태아 혈액을 이용해 검사해 보았다. 놀랍게도 태아 혈액에서 간암세포에서 발견된 물질이 높게 측정됐다. 태아 발생기에 높게 만들어졌다가 출생 이후 사라지는 현상을 발견했다. 그러면서 간암이 발생된 흰쥐 혈액에서도 높게 검출됐다.

이 물질은 태아 혈액에서도 발견됐으며 다른 종양에서도 일부 상승되는 것이 관찰됐으나 대부분 종양에서는 검출되지 않았다. 아벨레프가 발견한 물질은 알파 글로블린으로 태아 시기에 간의 빠른 성장을 위해 많이 필요해지고 성숙된 후 만들어지지 않았다가 간세포가 다시 증식될 때 생성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특히 빠르게 증식하는 간암세포에서는 매우 많은 양이 만들어졌다.

1962년 7월 모스크바 암학회에서 아벨레프의 발견이 알려졌다. 그러나 아벨레프는 알파 글로블린은 세포 증식 정도를 평가하는 방법 정도로 평가하고 진단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생각하지 못했다. 아벨레프의 연구 결과를 들은 타타리노프는 간암 환자의 진단에 활용해 보자는 생각을 하면서 아벨레프의 발견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됐다. 타타리노프는 곧바로 간암 환자의 혈액을 채취해 분석, 그 결과 알파 글로블린을 확인할 수 있었다. 간암 진단에 알파 글로블린을 사용할 수 있다는 생각은 전세계 의사들에게 알려졌고 많은 의사들이 간암 환자에서 알파 글로블린을 발견했다. 한국도 1970년대 간암환자 진단과 분석에 알파 글로블린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알파태아단백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며 간암의 중요한 진단 기준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아벨레프가 간암 진단을 위한 알파태아단백을 발견한 이후 태아 발생기에 사용되던 물질이 암세포에서도 존재할 가능성에 대한 연구가 계속되면서 1965년 캐나다의 골드와 프리맨은 태아 위장관 발달에 사용되는 암배아항원이 대장암 등에서 상승된다는 사실을 밝혀냈고 이후 수많은 종양 관련 물질들이 발견되면서 조기 암 진단을 위한 도움을 주고 있다. 눈에 보이거나 진찰을 통해서 발견할 수 없던 숨어있는 암도 이제는 혈액검사로 찾아낼 수 있는 새로운 접근방법이 발견된 것이다.

종양 관련 물질은 암표지자 등으로 많이 활용되고 있으며 비용적인 문제로 건강보험에서는 암환자에게 아주 제한적으로 검사가 가능하며 대부분 종합건강검진에 본인이 부담하는 형태로 활용되고 있다. 물론 종양 관련 물질은 암이 아닌 세포가 증식되는 경우에도 상승될 수 있으므로 결과 해석은 담당 의사와의 상담이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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