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너 뮤직 그룹의 유튜브 화면 캡쳐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인 2008년 여름, 베이징 올림픽 폐막식 실황을 아무 생각 없이 텔레비전을 통해 보고 있다가 나도 모르게 ‘어? 저 저 저’ 하는 소리가 입 밖으로 스르르 흘러나왔습니다. 다음 올림픽 개최지인 영국에 관련한 내용들이 나오는가 싶더니 레드 제플린의 ‘whole lotta love’라는 곡의 전주가 흐르면서 영국의 상징인 2층 버스 위에서 흰머리를 곱게 빗어 뒤로 묶은 노인이 기타를 연주하는데… 그랬습니다. 지미 페이지. 분명, 내 마음속에 있는 지미 페이지는 곱실거리는 검은 긴 머리를 날리며 지적인 인상과 맘씨 좋은 눈웃음을 가진 푸르딩딩한 청년으로 있어야 하는데, 버스 위에서 기타를 치고 있는 저 이는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하는 생각에 작은 충격이 오더라고요.

예전에 고등학교 다닐 무렵에 팝을 좀 듣네 했던 친구들끼리는 레드 제플린을 좋아했던 파와 딥 퍼플을 좋아했던 파가 양분돼 있었습니다. 무슨 조직도 아닌데도 서로 열을 올려가며 누가 더 잘하느니 누구 곡이 더 좋다느니 하며 서로 실랑이 했었는데, 저는 두 그룹 다 좋아했지만 그 중에서 레드 제플린을 조금 더 좋아했습니다. 존 본햄의 드러밍과 지미 페이지의 얼굴이 너무 좋았습니다. 우습지요? 지미 페이지의 기타가 아니라 얼굴이라니요.

당시에는 장발의 그 얼굴이 왜 그리도 지적이고 멋지게 보였던지, 팝송 잡지에서 오려낸 그의 얼굴을 제 방 벽에 덕지덕지 붙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랬던 지미 페이지가 한눈에 알아보기 힘든 노인이 되어 나타났으니 그 실망과 충격이 어떠했겠어요.

하드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밴드로도 일컬어지는 레드 제플린은 12년 동안 활동하다가 1980년에 해산하게 됩니다. 그 해산 이유도 그룹의 드러머인 존 본햄이 사망하자 ‘존 본햄이 없는 레드 제플린은 더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이었으니, 의리니 뭐니 하는 것에 예민해있던 고등학생 눈에 얼마나 레드 제플린이 대단해 보였겠습니까. 거의 우상이었지요.

레드 제플린의 재결합을 간절히 원했던 팬들의 입을 통해 가끔 재결합설이 나돌기는 했는데 다 루머로 그쳤고 레드 제플린의 모습은 다시 볼 수 없었습니다. 아쉬운 마음으로 가끔 예전의 레드 제플린 앨범을 꺼내 그들의 음악을 듣고는 할 뿐이었지요.

참! 레드 제플린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가 생각났습니다. 레드 제플린이 한참 활동을 하던 1970년대에 세계적으로 유행했던 헤어스타일은 장발이었던 모양입니다. 저는 그때 까까머리 학생시절이었던지라 장발을 하고 싶어도 못했었지만 제 선배 세대는 장발머리를 하고 다니다가 단속에 걸려서 곤욕을 치르곤 했지요. 그런데 레드 제플린도 장발 단속에 걸려서 공연을 못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뭐, 레드 제플린이 우리나라에 왔다가 단속에 걸려서 머리를 깎였다는 그런 이야기는 아니고요.

아마도 장발 단속이 우리나라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1972년 공연을 위해 싱가포르를 방문했는데, 싱가포르에서 레드 제플린의 긴 머리가 청소년들에게 나쁜 영향을 준다 하며 머리를 자르고 비행기에서 내리라는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실랑이가 있었는데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봐야 통하기나 했겠어요? 결국은 싱가포르까지 갔던 레드 제플린은 비행기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되돌아갔고 싱가포르 공연은 취소가 되고 말았던 일이 있었습니다.

사실 제가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싱가포르 정부가 문화적인 차이도 이해 못하는 고지식한 처사를 한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이 글을 쓰며 레드 제플린의 예전 사진을 보니까 ‘그 머리 좀 싹둑 자르지, 답답하지도 않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여하튼 이제 음악이야기를 하자고요. 레드 제플린의 최고 명곡이라는 ‘Stairway To Heaven’은 다들 아시죠? 이 곡이 들어가 있는 앨범이 그들의 네 번째 앨범인데 하드록 역사상 최고의 명반이라고 불리는 앨범입니다. 그 앨범 끝머리에 이전까지의 레드 제플린 곡과 차이가 있는 정말 아름다운 곡이 하나 숨어 있는데 그 곡이 ‘Going To California’예요.

이 곡은 지미 페이지의 어쿠스틱 기타와 키보드 주자였던 존 폴 존스의 만돌린, 그리고 로버트 플랜트의 기가 막힌 보컬로만 이뤄져있습니다. 물론 존 본햄의 드럼은 없고요. 언제 들어도 좋은 이 곡이 나오게 된 배경에는 비틀즈의 조지 해리슨이 있습니다. 어느 모임에서 조지 해리슨이 지미 페이지와 이야기를 하다가 레드 제플린은 비틀즈와는 달리 서정적인 곡이 없다고 이야기를 하자 지미 페이지가 그 대답으로 만든 곡이 바로 ‘Going To California’라는 곡이랍니다. 이 곡을 듣고 나면 여러분의 얼굴이 차분하고 아름답게 변해 있을 겁니다. 그리고 행복한 미소도 머금으실 것으로 기대합니다.(관련 동영상 https://youtu.be/3Af4-GOWO8s)

저작권자 © 용인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