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철나무꽃

여름에는 왠지 화려하고 정열적인 색의 꽃을 기대하게 된다. 그런 색의 꽃이 뜨거운 여름의 태양 아래에서 잘 살아남을 것 같기도 하다. 아마도 강한 색의 꽃들을 주변에 두고 봐와서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름에 눈에 띄게 빨강이나 주황색인 꽃은 많지 않다. 특히 나무는 희소하다. 능소화, 장미, 배롱나무 정도가 생각나지만 모두 숲에서는 볼 수 없는 식물들이다. 신기하게도 꽃가루를 옮기는 곤충들은 빨강색을 인식하지 못한다. 주황, 노랑, 초록색도 거의 구별을 할 수 없다고 한다. 곤충들은 우리가 느끼는 가시광선보다 자외선에 더 민감한 눈을 가졌다. 그래서 우리에게 같게 느껴지는 색도 곤충들에게는 다르게 느껴진다.

사철나무 꽃이 피었다. 진한 초록색을 띄던 나무가 환해졌다. 화려한 색의 꽃을 피우진 않지만 작고 연한 녹색의 꽃들이 가지 끝에 옹기종기 모여 나니 전체적으로 밝은 느낌이 든다. 작년 가을, 붉은 열매를 보여줬던 것과는 많이 대조적이다. 꽃이 핀지 모르고 지나치는 사람들의 옷자락을 잡고 보여주고 싶다.

사철나무는 키가 작은 나무이다. 식물을 구분할 때, 키가 작은 나무는 5m 정도까지 크고, 키가 큰 나무는 10m 이상 자란다. 사람을 기준으로 키가 작은 나무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사철나무의 꽃색은 잎과 많이 다르지 않은데 곤충들은 어찌 알고 달려드는지, 꽃의 중심이자 꿀이 나오는 밀선 주변은 자외선이 많이 반사돼 곤충들에게 더 두드러져 보인다고 한다. 사람들의 눈에 연두색 정도로 보이는 꽃이 곤충들에게는 얼마나 유혹적이란 말인가. 사철나무 꽃엔 유독 초록빛의 똥파리가 많다. 파리는 가리는 것 없이 다양하게 먹이를 즐기는데, 그래도 꽃과 파리는 참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하지만 꽃에 파리가 모이는 것 또한 흔한 일이다. 이미 사철나무의 많은 꽃들이 지고, 그 자리에 열매가 앉았다. 사철나무가 속한 식물 무리의 꽃들은 거의 사철나무 꽃과 모양이 같다. 새싹을 나물로 먹는 회잎나무, 조경수로 많이 접하는 화살나무가 그렇다. 공장에서 틀에 찍어 나오는 장난감 플라스틱 꽃처럼 반듯반듯하고 에누리가 없다. 현실감이 많이 떨어지는 모양이다. 필자도 여전히 특이하다 생각하는 식물 중 하나이다.

사철나무 잎과 꽃

향이 진한가? 다가가 맡아보아도 별 느낌이 없다. 화려한 꽃색도, 진한 향기도, 실제로 식물의 생사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는 건 참 신기한 일이다. 오히려 꽃의 구조, 전체적인 모양, 가지고 있는 색소들의 조합이 더 중요하다. 우리가 생각하는 동식물의 세계와 그들이 살고 있는 세계는 큰 차이가 있는 듯하다.

계속되는 가뭄에 식물들도 축축 쳐지고, 심지어 꽃을 제대로 한번 펴보지 못하고 말라버렸다. 그래도 요 며칠 소나기같은 비가 내리고 앞으로 장마전선의 영향을 받는다고 하니 너무도 반가운 소식이다. 가뭄에도 끄떡없을 것 같은 사철나무 꽃이 요즘 한창이다. 오늘 필자가 사는 아파트에서 조경수 가지를 정리하였다. 항상 같은 높이, 같은 모양으로 잘라서 나무를 틀 안에 넣어 놓는 것 같아 마음이 좋지 않지만, 사는 사람들의 편의를 생각한다면 꼭 필요한 작업이기도 하다. 사철나무의 가지도 싹뚝싹뚝 잘렸다. 가져다가 흙에 꽂아 놓았다. 우리 집에도 사철나무가 쑥쑥 자라, 소박한 꽃이 피고 화려한 열매가 맺는 그 날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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