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돈주’ 등장 등 밑으로부터 변화…새로운 대응전략 필요”

민주공화국 권력 주체인 시민! 민주시민으로서 요구되는 자질과 소양을 키우고 삶 속에서 실천을 모색해보고자 마련한 <용인 민주시민교육 아카데미> 프로그램이 6주에 걸쳐 진행되고 있다. 본지는 각 분야 전문가들의 강연 내용을 매주 요약해  <지상중계> 방식으로 독자 여러분께 전달하고자 한다. 


지난 15일 경기도박물관에서 열린 용인 민주시민아카데미 <3강>은 한반도 전문가로 오랫동안 취재 현장을 지키고 있는 <시사IN>의 남문희 대기자를 초청해 북한 정세와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관계 등에 대해 들어봤다. 이 자리에서 남 대기자는 북한 경제체제가 급격히 시장경제로 재편되고 있으며, 핵무기 보유를 강력한 생존의 디딤돌로 삼고 있다고 전했다. 남북관계의 특성상 민감한 부분을 제외하고 강연 내용을 정리해 싣는다. /편집자   

북한의 시장 경제

남문희 시사인 대기자

당초의 북한 사회주의 경제 시스템에서는 원칙적으로 ‘돈주’라는 집단이 성립할 수 없다. 기본적으로 국가가 식량 등 각종 생필품의 종목과 양 등을 결정해서 국영기업(공산품)과 협동농장(농산품)에 생산을 ‘명령’한다. 생산에 필요한 원자재와 에너지도 국가가 책임지고 공급해준다.

생산자들(국영기업과 협동농장)은 국가의 명령대로 만든 제품을 국유 상점에 보낸다. 국유 상점들은 정해진 가격으로 인민들에게 ‘판매’한다. 이 같은 사회주의 국가 특유의 생산·분배 시스템에서는, 돈을 좀 가졌다고 해서 투자하고 여기서 수익을 얻을 만한 여지 자체가 없다.

그런데 북한 사회주의 시스템이 서서히 삐걱거리다 1990년대 들어 사실상 멈추고 만다. 국유기업들은 국가로부터 원자재와 에너지를 공급받지 못하게 되면서 생산을 중단했다. 노동자들은 출근해봤자 할 일이 없었다. 배급이 중단되고, 국영상점에서도 살 수 있는 물건이 없었다. 이 같은 국가 부문의 쇠퇴와 더불어 ‘돈주’는 점차 강력한 경제 집단으로 등장하게 된다. ‘돈주’ 집단의 발전은 대략 세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첫 단계(~1980년대 말)-‘돈주’의 기본 조건은 북한 돈, 즉 ‘조선 원화’를 많이 가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돈을 축적할 수 있었을까? 바로 북송 재일동포다.

두 번째는 중국의 문화혁명(홍위병들은 김일성 일가 역시 ‘반동’으로 몰아붙였다)으로 소원해졌던 북·중 관계가 1982년 재개되면서 두 번째 돈주 집단이 등장한다. 바로 중국에 친척을 둔 북한 화교들이다. 

북한의 토착 주민 가운데 돈주가 된 경우가 있다. 북한에는 국가경제(국영기업 및 국영상점, 배급)가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는 물품을 인민들이 자발적으로 거래하는 ‘(자유)시장’이 존재해왔다. 농촌에서는 농민시장, 도시에서는 장마당이라고 불린다. 그러나 그 단계의 돈주들은 문자 그대로 ‘돈을 가진 사람’들에 불과하다. ‘돈주’가 ‘붉은 자본가’로 불리려면, 그 돈을 어딘가 투자해서 더 늘릴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1990년대 중반 대규모의 아사 사태가 발생했던 ‘고난의 행군’ 시기와 더불어 ‘천지개벽’이 일어난다. 북한 당국이 배급을 중단하는 대신 시장을 허용한 것이다. 1993년 3월에는 농민시장을 상시로 열 수 있게 했다. ‘국가가 인민들의 생존을 책임질 수 없으니, 시장 거래를 통해 알아서 먹고살라’는 이야기다. 살길이 막막해진 주민들은 너도나도 시장으로 뛰어들었다.
일반적으로 ‘시장주의 개혁’에는 두 가지 길이 있다고 한다. 하나는 중국처럼 국가가 계획적으로 추진하는 ‘위로부터의 시장화’이고, 다른 하나는 인민들이 일상적으로 시장을 활용하고 이를 국가가 제도적으로 수용해나가는 ‘아래로부터의 변화’다. 북한이 두 번째 경우다.

이처럼 국제사회의 제재 속에서도 북한 경제성장의 물주 구실을 해온 세력은 바로 시장화의 물결 속에서 북한 전역에 확산된 돈주들이었다. 김정은 시대의 북한은 생산수단의 ‘공식적 소유자’인 국가와 ‘붉은 모자 쓴 개인사업가’ 돈주의 공생체제다.

최근 북한에선 ‘한라혈통’이라 불리는 층이 있다고 한다. 바로 탈북자 가족들이다. 남쪽에서 벌어 보내준 돈으로 이들 또한 ‘돈주’로 떠오르고 있다. 

김정은 세대와 핵전략-양탄일성

김정은 비서 집권 이후 우리 정부의 대북 담당 부서들은 북한의 움직임이 종잡을 수 없다고 하소연한다. 김정일 위원장만 해도 국제관계를 염두에 두고 수를 두기 때문에 예측 가능한 측면이 많았으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정부 대북 부서의 한 관계자는 “김정은과 그 주변 세대는 한마디로 ‘마이 웨이’ 스타일이다. 주변이 어떻든 신경 쓰지 않고 내 갈 길을 가겠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사실 김정은 비서를 둘러싸고 있는 세대의 특징에 대해서는 2012년 그가 권좌에 오른 직후 일정한 분석이 시도됐다. 북한 내에서 김정은 세대는 일반적으로 1966년생 이하 주로 1970년대 생을 뜻한다. 이들은 전 세대와 비교해서도 집안(혁명 4세대)과 학벌(김일성대학)이 좋을 뿐 아니라 거의 대부분 해외 유학 경험이 있다. 그런데 그 앞 세대가 주로 시장경제 조사를 위해 해외 유학을 갔다면 이들은 북한을 부국강병의 길로 이끌기 위한 방법을 찾으러 해외 유학을 갔다고 한다. 김정일 전 위원장조차 이들을 ‘똑똑한 세대’라고 부르며 기대했을 정도로 이들의 어깨에 북한의 미래가 달려 있었던 셈이다. 이들이 찾은 부국강병의 묘책은 무엇이었을까.

첫 번째가 바로 핵이었다고 한다. 김정일 위원장만 해도 핵에 대한 태도가 일정하지 않았다. 조건만 맞으면 협상이 가능했다. 그러나 김정은 세대에게는 핵이 자신들이 꿈꾸는 강성국가의 초석이다. 핵무기로 외부의 간섭을 배제하고 북한에 풍부히 매장돼 있다고 확신하는 석유와 희토류 등의 지하자원, 그리고 과학기술의 발전을 통해 ‘단숨에’ 점프하겠다는 게 이들의 당시 구상이었다.

그렇다면 이들 세대의 부상과 핵실험은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앞에서 언급했듯 핵문제에서 이들의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난다. 2013년 3월31일 발표한 ‘핵·경제 병진노선’이 얘기하듯이 이들에게 핵은 이미 되돌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국제적으로 검증된 핵무기 고도화의 프로세스를 끝까지 밟아 나가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 그 결정적인 움직임이 ‘전략군’의 존재다. 북한이 보유하고 있는 단거리·중거리·장거리 미사일과 플루토늄, 고농축 우라늄, 수소폭탄 등 다종화한 핵무기를 총괄하는 새로운 군종이 등장한 것이다. 이를 계기로 북한의 군 시스템은 육군·해군, 그리고 2012년 항공 및 반항공군으로 개칭한 공군에다 제4군으로서의 전략군 체제로 재편됐다. 

과거 소련과 중국의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 과정에서 전략군이 차지한 위상을 보면 북한의 의도를 정확히 알 수 있다. 소련의 경우 1950년대 중반 핵·미사일 관련 무기 체계가 광범위하게 도입되면서 이를 총괄하는 전략로케트군을 1959년 창설했다. 중국은 1956년 전략 미사일 개발, 1964년 핵실험 성공 이후 1966년 7월 전략군에 해당하는 ‘제2포병부대’를 창설했다. 두 나라 공히 전략군 창설을 계기로 핵무기의 소형화·경량화·다종화뿐 아니라 ICBM, SLBM, MIRV(다탄두 각개 목표 재돌입 미사일)라는 전략핵무기 3원 체제를 갖춰나갔다.

북한 역시 3차에 이르는 핵실험과 인공위성 발사를 통해 얻은 ICBM 능력을 기초로 전략군 체제를 갖추고, 이를 발판으로 과거 중국과 소련이 그랬던 것처럼 핵과 미사일 능력을 획기적으로 고도화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그다음은 어떻게 될 것인가. 중국은 1967년 제2포병 부대 창설을 통해 핵과 미사일 능력을 획기적으로 증강해 체제 안팎의 안보 위협을 제거했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1970년대부터 닉슨의 방중을 받아들이며 개혁·개방의 길로 나서게 된 것이다. 마오쩌둥이 입버릇처럼 얘기했다는 ‘양탄일성(兩彈一星)’, 즉 원자폭탄과 수소폭탄 그리고 인공위성을 갖춘 후에야 비로소 문호를 열어젖힌 것이다. 김정은 비서 역시 이번 신년사에서 7차 당 대회를 계기로 경제 강국 건설에 총력을 집중하자고 제시했다. 중국과 마찬가지로 안보 위협을 근본적으로 차단한 뒤 경제에 올인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김정일 시대가 다분히 한 개인의 카리스마에 의존한 시대였다면 김정은 시대는 그를 둘러싼 세대의 집단지성에 입각해 조직적이고 치밀하게 자신들의 국가 목표를 추구해가는 시대라 할 것이다. 

동북아 정세의 이해

아·태 지역의 미국 동맹국들은 앞으로 큰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그동안 미국에 의지해 중국과 대치해온 제1열도선 국가들은 상당히 답답하게 됐다. 미국에 의존해왔던 자국 방위의 상당 부분을 스스로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개정된 미·일 방위협력지침에 이미 그 전조가 나타났다. 겉으로는 미·일 동맹이 세계적으로 격상됐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일본 자위대의 임무가 많아진 반면, 미군은 일본 본토 방위와 관련해 종전 지침보다 훨씬 축소되거나 후퇴했다. 즉 일본 방위는 이제 일본이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센카쿠 열도를 의미하는 이도(離島) 방위에 미·일이 함께한다는 내용이 새로 추가됐지만, 여기서 말하는 이도가 센카쿠뿐만 아니라 남중국해도 포함된다는 얘기가 있다. 

앞으로 일본 유사시 미국 항공모함이나 대규모 지원병력 파견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미국 측 연구소들이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 바로 제1열도선 국가들의 ‘A2/AD 네트워크’였다. ‘아시아의 안보는 아시아인의 손으로’라고 했던 닉슨 독트린 쇼크가 다시 몰려오고 있다.

지난해 11월 미국 랜드연구소는 미국과 중국이 전쟁을 벌일 경우를 시뮬레이션했다. 당시 보고서가 두 건 나왔는데, 각각 <중국과의 전쟁-상정 불가능에서 상정 가능한 것으로>와 <미·중 군사력 비교 스코어 가드>이다(이하 랜드 보고서). 타이완 해협과 남중국해에서 전쟁이 발발한다는 두 가지 시나리오를 상정하고 해전 및 공중전, 우주전쟁 등 9개 관점에서 18가지를 시뮬레이션했다. 미군은 사이버 전투 등 6개 분야에서 우위를 보였지만 나머지 대부분은 중국군과 호각지세였다.

그동안 첨단기술에서 앞선 미국이 여전히 압도적 우위를 보이리라는 막연한 환상이 깨져버린 것이다. 중국군이 탄도미사일 및 순항미사일 수백 발을 쏜다면 미국의 미사일방어(MD)가 전혀 힘을 못 쓴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떻게 될까. 오산과 군산에도 미국 공군기지가 있다. 지정학적으로 따지면 중국의 심장부인 베이징과 상하이에서 최단거리다. 앞의 랜드 보고서는 이들 기지에 대해 묘한 여운을 남겼다. “한국 기지들은 중국 탄도미사일의 매우 좋은 표적이 된다. 한국 정부는 이를 두려워해 미군이 양 기지(오산·군산)에서 중국을 공격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언급했다. 그런데 만약 한국 정부가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면? 예를 들어 한국 내 다른 미군 기지가 중국의 공격을 받게 되어 미군이 반격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그동안 미국이 사드 배치를 왜 그토록 집요하게 강행하려는지를 둘러싸고 주장이 난무했다. 북한 미사일 방어용이라는 것은 한·미 양국의 공식 주장일 뿐 군사기술적 타당성이 적다는 게 중론이다. 사드 자체 기능이 아니라 사드를 배치했을 때의 효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사드를 배치하는 순간 한국은 미·중 간 무력 충돌의 한복판으로 자동 편입된다. 일본은 자신들이 최전선이라고 하지만 일본보다도 더 최전선이 바로 한국이 된다. 사드가 바로 그 ‘인계철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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