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가 망종을 지나 하지를 향하고 있다. 저녁 8시가 돼도 어두운줄 모르겠으니 벌써 한여름이다. 숲을 들어설 때 그 잎의 푸르름으로 더위가 수그러든다. 꽃 찾으러 숲에 갔는데, 여름꽃 대신 봄에 폈던 꽃들이 열매를 맺고 여기저기서 눈에 띈다. 여름꽃 만큼이나 화려한 붉은색의 열매들이다. 그중에 제일은 산딸기다. 아직 꽃받침으로 싸여 있는 영글지 않은 산딸기부터 벌써 터질 듯 새빨간 열매까지, 너무도 탐스러워 군침이 돈다. 숲길 가장자리에 난 산딸기는 보는 사람이 임자다. 이미 꽃받침만 덩그러니 흔적으로 남은 것들도 몇 보인다. ‘부지런히 숲을 다니며 운동하시는 분의 간식이 되었구나, 내가 한발 늦었네.’ 웃음이 난다. 필자 고향에선 이쯤 되면 장터에 산딸기를 작은 스테인리스 그릇에 담아 한줌씩 파시는 할머님들이 많았다. 주변 산자락에서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따오셨을 산딸기가 얼마나 맛있었는지 모른다. 요즘은 하우스에서 재배한 딸기가 겨울에도 지천이어서 임신한 아내를 둔 남편들이 좀 수월해지긴 했겠다. 산딸기도 요즘은 많이 재배하고 있다.

산딸기는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키 나무이다. 무리를 이뤄 사는데, 땅 표면에 가까운 뿌리에서 싹이 나기 때문이다. 산딸기는 숲이 망가진 곳에서 초기에 숲을 다시 살아나게 하는 강한 생명력을 가진 식물이다. 하늘이 뻥 뚫린 숲에서 열매가 가득한 산딸기 밭을 만나게 되면 횡재한 느낌이 들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산딸기도 채소를 심어 가꿔야하는 밭의 어느 모퉁이에 자리를 잡게 되면 꽤 골치 아픈 식물이 되고 만다.

숲에서 산딸기처럼 생긴 열매는 모두 먹을 수 있다. 줄딸기, 멍석딸기가 흔한데, 모두 맛있는 산딸기 종류이다. 베리 종류가 요즘 ‘슈퍼 푸드’로 불리며 인기가 많다. 산딸기는 라즈베리이다. 멀베리는 뽕나무 열매인 오디이고, 엘더베리는 딱총나무 열매이다. 구스베리는 서양까치밥나무의 열매, 크렌베리는 우리나라에선 흔하게 볼 수 없는 넌출월귤의 열매이다. 열매들의 이름에는 모두 ‘베리’가 붙지만 찬찬히 생각해보면 그 모양이 모두 다르다. 모두 다른 무리에 속하는 식물들이기 때문이다. 대게 다른 무리에 속하는 식물들은 열매 모양도 다르다.

산딸기는 하나의 꽃에 여러 개의 암술이 익어서 만들어지는 ‘취(聚:모이다)과’라는 열매이다. 즉, 꽃은 하나이지만 여러 개의 자방(씨앗이 든 방)이 모여서 열매를 만든다는 뜻이다. 꽃 하나에 여러 개의 자방이라니, 이게 무슨 말인가! 일반적으로 알려진 열매는 하나의 암술이 수분이 돼 하나의 자방이 성숙하는 것이다. 설마 열매가 한 종류이겠는가. 콩도 또 다른 모양을 한 열매이니, 생각해보면 우리는 다양한 열매를 먹어본 기억이 있다. 뽕나무 열매인 오디는 언뜻 보면 산딸기와 같은 모양으로 보인다. 하지만 뽕나무 꽃은 작은 꽃이 다발로 피고 그 꽃 하나하나가 열매를 만든 것이기 때문에 다른 열매이다.

처음 열매에 대해 공부했던 때가 생각난다. 생각지도 않게 많은 종류의 열매를 알려주시고 시험을 보시는 교수님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실제로 열매는 23종류나 된다. 시험은 어려웠다. 하지만 다행인건 이상하게도 그것이 참 재미있었다. 그 후로 한동안 과일을 먹을 때면 열매를 ‘분류’했다. 지금도 산딸기를 보며 ‘취과네’ 하는 스스로를 보니, 알게 모르게 계속 분류를 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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