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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열전] ㈜부국화학 유병수 대표이사해외까지 뻗어가는 국내 최대 비닐쇼핑백 제조기업

좋은 일자리 창출은 물론 지역 성장동력을 만들어나가는 용인 소재 강소기업들. 자족도시를 향한 용인의 미래에도 그 역할에 대한 기대감은 크기만 하다. 선두에는 혁신과 창조, 성장의 상징 강소기업을 이끌어가는 최고경영자(CEO)들이 있다. 이들의 삶과 경영철학 그리고 땀의 현장모습을 통해 꿈과 용기의 메시지를 공유하고자 기획 지면을 마련한다./편집주

CEO 유병수의 경영노하우

1. 항상 꿈을 꿔라

“공무원을 할 수 있었지만 그만뒀다. 늘 내 일을 해보겠다는 말이 사업의 기회를 열어줬다. 사업을 대비해 공장직원 때는 남몰래 기계를 해체와 결합을 반복하며 익혔다, 잘 다니던 회사도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표냈다. 왜? 나에겐 꿈이 있었고 그것이 이루어지리란 희망이 있었기에 어느 순간에도 주저앉지 않았다.”

2. 원칙과 기본을 지켜라

“비닐 쇼핑백을 거래하기 위한 대기업 시장 진입은 쉽지 않았다. 다들 큰 회사를 거래하기 위해 관행을 따랐다. 접대문화에 순응했다. 나는 거부하고 대신 남들이 하기 싫어하는 일을 했다. 그러다 보니 기회가 왔다. 남들이 안하는 것을 하다가 7~8년 하니 부도나는 회사들이 생겼다. 다들 관행대로 영업을 한 경우들이었다. 기술과 성실로 인정받았고 마침내 업계 1위에 오를 수 있었다.”

3. 범사에 최선을 다하라

“나는 노력만으로 성공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운도 좋았다. 그러나 운조차도 거져 오는 건 아니다. 매사에 범사에 충실할 때 우연히 찾아온다. 사업을 일으키는 데 큰 도움이 됐던 인연은 교통사고 현장에 있었던 거였다. 봉고차를 타고 바쁘게 지나던 길이었지만 사고 피해자를 목격하곤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상황이고 상식적인 대처였다. 하지만 그런 상식적 행동은 커다란 행운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반팔 티셔츠에 수건을 두룬 장년의 남자가 연신 땀을 훔치며 사무실로 들어선다. 국내 최고의 비닐쇼핑백 제조업체를 이끌고 있는 ㈜부국화학 유병수(59) 대표이사다. 평소 스타일을 미리 전해 듣지 않았더라면 상상할 수 없는 CEO의 모습이다. “얼마 전부터 108배를 합니다. 담배는 올 3월에 아예 끊었고, 술도 거의 안 마실 정도로 줄였어요.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회사를 이끌 수 있잖아요. 하하”

사람 좋아 보이는 소탈한 웃음, 직원들 틈에 끼어 막일을 도맡아 하는 솔선수범, 정직과 신용이란 경영철학을 가슴에 새기며 오늘날의 업계 최고를 이룬 기업인 유병수 대표. 그가 성공의 발판을 마련한 깊은 내공은 10대 시절, 뜻하지 않은 가난으로부터 시작됐다.

“고향이 전남 광양인데, 아버지는 택시 운수사업을 했어요. 잘 나갔죠. 자동차 보험도 안 되는 시절이다 보니 차량사고가 나면 논 팔아 땜방하던 시절이었죠. 그런데 하루는 밤에 집에 들어온 아버지가 가족들을 시켜 급히 짐을 싸게 했어요. 그리곤 그 밤을 넘기기 전에 집을 비우고 도망치듯 떠났죠. 이유는 알 수 없었어요.”

야반도주로 상경, 17세에 생계전선에 뛰어들다

그야말로 야반도주를 한 그 때, 유병수는 갓 순천고에 입학하고 두어 달을 다녔을 무렵이었다. 부산으로 옮겼지만 사기를 당하곤 다시 정착한 곳이 안양의 인덕원이었다. 70년대 말, 그 곳은 이주자 판자촌에 다름없었다. 천막을 치고 사는 이들도 있었다. 엉성한 벽돌을 두르고 미장만 한 집이니 겨울이면 방에 고드름이 달릴 정도로 추웠다. 공부를 계속하고 싶었지만 막내 여동생은 고작 생후 100일이 지날 정도로 어렸다.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방 한 칸에 7식구가 생활하는 셋방살이에 쌀 한 톨 없이 밀가루 죽으로 6개월 생활을 하기도 했다. 밑으로 4명의 동생들을 둔 그는 연고로 아는 경비반장의 소개로 군포 소재 제지공장에 들어갔다. 그의 나이 17세에 이미 본격적인 사회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기술을 배워가며 죽어라 일만 했지요. 우선 살아야 했고 동생들 건사를 해야 하는 장남이었으니까요.”

서너 해 공장생활을 하는 동안 나이는 20대에 접어들었고 군대 갈 때가 됐다. 신체검사에서 갑종 1급을 받아 현역입영을 해야 했으나 안양은 당시 지역방위지역이어서 방위로 편재됐다. 그러나 편안한 방위병으로 청춘을 보내진 않았다. “가족 생계를 떠맡고 있었던 저로선 행운이었죠. 돈을 벌 기회가 주어졌으니까요. 낮엔 방위병 생활, 밤에는 직장을 다니는 초인적 생활을 했어요.”

낮엔 방위병, 밤엔 직장인…유병수의 신화

그의 방위병 근무지는 안양시청이었다. 병사계에서 병적 확인서 찾아 떼어주는 게 주요 업무였다. 시간이 많았다. 9시 출근해 5시 퇴근하면 그는 제지공장 3교대 야간근무조로 들어가 돈을 벌었다. 회사에도 미리 양해를 구했다. 죽기 일보직전까지 가면 손을 들겠다고. 새벽에 퇴근하면 단 몇 시간이라도 잠을 자야 했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어머니가 조그만 장사를 했는데 이를 도와야 했다. “사실상 거의 잠 없이 일만 한 셈이죠. 어쩌다 길을 걸으며 잠을 자 봤어요. 때로는 논두렁에 박힌 적도 있었죠.” 결국 7개월을 버텼지만 한계에 다다랐다. 제대할 즈음이 됐을 때 부시장이 불렀다. “‘자네, 어디 갈 데 없으면 계속 시청에서 일할 생각 없나?’하고 묻더군요. 6개월 정도 근무하면 당시엔 공무원 임용이 가능할 때였어요.” 권유로 3개월을 다녔지만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그는 늘 가슴속에 장사나 사업을 일궈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성장 발판 마련한 인연이 낳은 행운

부시장과 아버지의 의아해하는 시선을 뿌리치고 공장으로 돌아갔을 무렵, 우연하게 제안이 들어왔다. 안양 D제과 포장지 인쇄 기능직으로 근무하는 친구가 비닐봉투 사업을 권유했다. 기계를 들여 놓고 절단만 해서 가공하는 단순사업이었다. 돈이 없었다. 아버지에게 사업을 해보겠다고 하니 반대했다. 그냥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던졌다. 배수진을 친 거였다. 노발대발하는 아버지를 뒤로 하고 친구에게 50만원을 빌리고 여기저기서 200만원을 마련해 인덕원사거리 지하실에 공장을 차렸다, 예닐곱 평 규모의 지하실 공장이었지만 그의 첫 사업이 시작된 것이다. 26살 때였다. 후일 부국상사의 전신 격이었다.

밤새 제품을 만들어 아침이면 자전거에 싣고 팔러 나갔다. 오토바이를 구입한 이후론 판매 반경을 넓혀 서울에 있는 재래시장을 두루 다녔다. 그러면서 단골은 하나둘 늘어났다. 지하에 작은 공장을 하나 더 차리고 이어 92년엔 월세로 200평짜리 공장을 마련했다. 이처럼 한 단계씩 성장해 7~8년을 달러오던 어느 날, 뜻밖의 인연을 만나게 됐다.

할부로 봉고차를 뽑아 시흥방면을 지나던 중 교통사고를 목격했다. 피해자는 할머니였는데 급히 보호자 연락처를 찾아 연결하고 경찰에 신고해 생명을 건질 수 있었다. “당시엔 잊고 있었는데 전화가 걸려왔어요. 할머니의 보호자였는데, 감사하다며 보자고 하대요. 대림동 골목을 누비다나 별 생각없이 찾아갔는데 알고 보니 동서식품 임원이었어요. 이것저것 물어보던 그 임원은 도와줄 방도로 커피 박스 인쇄를 할 수 있느냐고 묻길래 자본이 없어 추가 설비도 없지만 기회를 주면 목숨 바쳐 하겠다고 했지요.” 그로부터 4~5년간 유병수 대표이사는 또 한 번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용인공장 시대 열며 업계 1위로 등극하다

신영통을 거쳐 1991년 부국화학으로 상호를 변경한 유병수 대표는 마침내 자신의 공장을 세우겠다는 꿈을 실현했다. 1996년 6월 29일, 태안 반월리에서 신축 준공식을 가졌다. 다시 9년만인 2005년, 용인으로 공장을 확장 이전해 안착하게 됐다. 처인구 남사면에 소재한 공장부지는 2400평에 이르며 용인이전 후 명실공히 중견기업으로서 국내 최고의 비닐쇼핑백 회사로 거듭나게 됐다.

압출생산부터 인쇄까지 원스톱으로 처리되는 설비는 하루 24시간, 연중무휴 가동함으로써 최고의 제품과 품질로 신뢰를 쌓아가고 있다. 업체 역사와 함께 늘어난 거래처는 롯데백화점, 롯데마트, 롯데 슈퍼, 홈플러스, 세븐일레븐, 그랜드백화점 등 200여 곳에 이른다. 기술력을 인정받아 해외 수출 길까지 열어가고 있다. 2010년엔 미국 뉴욕으로 수출한 데 이어 현재 LA 등 매월 컨테이너 일곱 대 분량을 해외로 수출하고 있다.

업종의 특성상 어려움은 적지 않다. 3D업종인데다가 고부가가치 산업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인력 수급에 어려움이 적지 않다. 그럼에도 30여 명의 직원들 가운데 7명이 20년 이상 동고동락해 온 사람들이다. 회사에서는 매년 근로자의 날에 우수 직원을 선발해 IBK 기업은행에서 진행하는 해외포상 여행과 기업은행장 표창을 수여하고 있다.

유 대표의 경영철학은 ‘인무원려 치성대업(人無遠慮 稚成大業)’이다. 사람이 멀리 생각하지 않으면 큰 일을 이루기 어렵다는 뜻이다. IMF 외환위기 등 숱한 고비가 많았지만 그는 잘 견뎌낼 수 있었다. 멀리 내다보는 경영, 그리고 10년 단위로 철저히 다음 목표를 설정해 서서히 치밀하게 전진해 왔기 때문이다. “기업 경영 40년을 채우려고 해요. 앞으로 8년이나 남았지요. 다시 의지를 불태우고 있어요.”

무서운 집념으로 매일 아침 출근해 108배를 하고 음주와 금연까지 실천하는 이유다.

우상표 기자  spwoo@yongin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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