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대떡(혹은 치킨), 올챙이, 대통령.”

드디어 시제가 발표됐습니다. 백일장 시작을 알리는 고기교회 종소리가 땡땡땡~ 귓가에 울립니다. 도서관 앞에 모여 시끌벅적 하던 아이들, 청소년, 어른 할 것 없이 일제히 점찍어 둔 장소로 갑니다. 누구는 도서관 안으로, 누구는 널찍한 앞마당으로, 누구는 뒷마당 밤나무 밑 데크로 자리를 잡습니다. 그리고 원고지를 펼쳐듭니다. “어떤 시제로 글을 쓸까?” “시를 쓸까 산문을 쓸까.” 연필을 입에 물고 생각에 잠긴 아이, 일필휘지 써내려가는 아이, 마당을 서성대며 고민하는 어른, 눈부신 햇살과 푸른 나무, 작은 들꽃, 시원한 바람도 이들을 응원하는 듯합니다.

밤토실백일장, 어느덧 다섯 번째입니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원고지에 글을 쓰지 않습니다. 제가 초등학생 때만 해도 방학 숙제 독후감은 꼭 원고지에 쓰곤 했는데 말이죠. 이제는 스마트폰과 태블릿PC에 글을 씁니다. 그렇지만 한번쯤 이렇게 밖으로 나와 푸른 하늘과 나무를 바라보며 원고지에 직접 글을 쓰는 경험은 또 다른 즐거움이지요.

참, 백일장의 유래를 아시나요? 백일장은 조선시대 유생들의 학업을 장려하기 위해 각 지방의 유생들을 모아 시문(時文) 짓기를 겨루던 것에서 시작했다고 합니다. 관리 임용과 관계없이 즉석에서 시문을 지어 재예를 시험하는 것인데 주로 민간 차원에서 주도돼 우수한 사람은 장원을 뽑아 상을 줬다고 합니다. 재미난 것은 대낮(白日)에 시재를 겨눈다 해서 백일장이라고 부른다는군요.

이제 2시간 동안의 글쓰기가 끝났습니다. 아, 2시간이 이렇게 짧게 느껴지다니요. 두근두근 심사를 기다리는 동안 ‘이야기 와글와글’이 재미난 공연을 펼칩니다. ‘이야기 와글와글’은 도서관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이야기책을 재미나게 들려주기 위해 만든 동아리입니다. 벌써 활동한 지 6년이나 된 인근에 제법 알려진 공연팀이지요. 오늘은 그 엄마들이 <팥이 영감과 우르르 산토끼>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하네요. 팥을 지키려는 ‘팥이 영감’과 그 팥을 몰래 따먹는 토끼의 한바탕 소동이 신나게 펼쳐집니다. 꾀돌이 토끼에게 당하는 팥이 영감이 우스워 깔깔 웃다보니 어느 덧 발표시간입니다. 심사는 우리 마을에 사는 아동문학작가님이 맡아주셨습니다. 깐깐한 심사 앞에 마음이 졸아듭니다.

상을 탔든 못 탔든 그건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무는 푸르고 바람은 선선한 5월, 우리는 마음껏 내 마음의 소리를 들었고 그것을 글로 표현했으니까요. 고개를 들어 푸른 하늘을과 수줍게 핀 들꽃을 보았고 내 마음에 무언가 움직이는 것들을 느끼기 시작했으니까요.

오늘도 바쁜 하루를 보냈겠지요? 잠깐이라도 멈추어 하늘을 바라보세요. 그리고 바람을 느껴보세요. 어느덧 나도 모르게 시인이 돼 있을지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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