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전 대통령 너무 쉽게, 허무하게 보내..."당분간 책 쓰며 재충전 시간 갖고 싶어"

‘2002년. 4번의 낙선, 만년 꼴찌 후보 노무현이 기적처럼 국민경선에서 1위를 차지하더니 대통령에 당선됐다. 노란 물결 속 대통령을 태운 리무진이 기쁨의 행진을 하는 순간, 갑자기 화면은 운구차량 행렬로 덮이며 정적이 흐른다.’

영화 ‘노무현입니다’ 속 이 장면은 많은 관객들의 가슴을 울렸던 하이라이트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삶을 다룬 다큐 영화 ‘노무현입니다’는 개봉 20일 만에 관객 수 160만명을 넘기는 기염을 토했다. 독립 다큐 영화로서는 역대 최고 스코어다. ‘노무현입니다’ 성공엔 각본을 맡은 다큐영화 작가 양희(46)의 역할이 컸다. 기흥구 동백동에 아담한 주택을 짓고 살고 있는 용인사람 양희 작가를 만나봤다.

MBC 예능 작가로 10여년을 일하다 미국 유학길에 올랐던 그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도 EBS ‘명의’의 대표작가로 꾸준히 이름을 알리고 있었던 그녀가 다큐 영화에 발을 딛게 된 데는 ‘노무현입니다’ 이창재 감독과의 인연이 시작이었다.

“동료, 친구처럼 지내온 사이에요. 아이들과 함께 1년 간 케냐에서 생활한 적이 있는데 귀국을 2개월여 남기고 이 감독이 메일을 보냈어요. 당장 와줬으면 좋겠다고요. 같이 할 일이 있다면서요.”

이 감독이 말한 ‘같이 할 일’은 영화 ‘길 위에서’였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시기와 맞지 않아 자신과는 인연이 없겠다 생각하고 넘긴 그 영화가 결국 양희 작가의 첫 다큐멘터리 영화가 됐다.

“케냐에서 돌아온 지 일주일 지났을 즈음 이 감독이 전화를 했어요. 제작시기가 미뤄졌다면서 함께 하지 않겠냐는 거였죠. 인연인가 싶어 덥석 하겠다고 했어요. 개인적으로 '길 위에서'를 만들며 어떻게 살 것인가를 깊게 고민할 수 있었어요. 케냐에 다녀온 후 비워진 마음을 그 질문으로 채웠던 것 같아요.”

그렇게 완성한 영화는 제13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 경쟁’ 본선 진출, 제38회 서울 독립영화제 초청, 제6회 CINDI 영화제 ‘버터플라이’ 수상작으로 선정되는 등 호평을 받았다.

양희 작가는 영화나 EBS ‘명의’ 속에서 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특징을 드라마틱하게 잘 짚어내기로 유명하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부분을 찾아내 감칠맛 나게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모든 사람의 인생에는 특별한 스토리가 숨어있어요. 전 좀 더 멀찍이 떨어져 그 사람을 바라봐요. 그의 인생 속에 숨어있는 보석을 찾아내 재구성해보는 거죠.”

영화 ‘노무현입니다’ 제작 과정에서도 양희 작가의 역할은 컸다. 지난해 5월 정치 상황이나 환경의 어려움 속에서 가까스로 영화 제작을 결정했다. 영화가 완성된 후 상영이나 할 수 있겠냐는 주위 시선도 감당해야 했다. 그 때마다 양 작가는 이창재 감독에게 변함없는 확신을 심어줬다. 영화를 ‘노 전 대통령의 경선 과정을 중심으로 이어가자’고 한 것도 양 작가의 아이디어였다.

“이미 많이 알려진 대선보다 경선에서 승리하는 과정 속에서 전달할 수 있는 부분이 클거라 생각했어요.”

그녀의 직감은 적중했다. 국회의원 선거 등에서 연달아 낙선한 노 전 대통령이 대선 1위 후보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국민의 힘이 얼마나 컸는지를 극대화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대통령에 당선되고 노란 물결 속에 퍼레이드하던 차량이 순간 운구차량으로 바뀌는 장면은 철저히 계산된 전략이었다.

“우리가 그렇게 힘들게 만들어놓은 대통령을 너무 쉽게, 허무하게 보냈다는 느낌을 강조하고 싶었어요. 그 부분이 관객들에게 그대로 전달돼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고 하더라고요.”

양 작가는 최근 다큐 영화 ‘마리안느와 마가렛’으로 한국카톨릭 매스컴 특별상을 수상했다. 소록도 자원봉사자로 40여년간 한센병 환자를 보살핀 오스트리아 수녀들의 이야기다.

“어떤 작품보다 애정이 가는 영화예요. 오스트리아와 소록도를 오가며 사랑으로 가득했던 그들의 인생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장면들을 찾아냈죠. 보신다면 아마 한 장면 한 장면이 그림 같이 아름답다는 느낌이 드실 거예요.”

양희 작가는 한 해에 굵직한 영화를 두 편이나 낸 만큼 이제 재충전의 시간을 가지며 명의 집필과 글쓰기에 전념하고 싶다고 했다.

“책 쓰는 작업은 더없이 행복해요. 새벽에 혼자 일어나 작업을 하면 정말 금방 써내려가거든요. 꾸준히 운동도 하고, 책도 많이 읽고 필사도 하면서 다음에 또 온 힘을 쏟아내야 할 일이 생길 때를 준비하렵니다.”

그녀의 마이더스의 손이 또 누구의 인생을 영화 한편으로 탄생시킬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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