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에게 말하긴 부끄럽지만 외롭지 않고 설레”

몇 해 전 용인의 한 노인시설 관계자는 “시설을 찾아오는 분들 중 서로 의지하며 좋은 만남을 유지하는 분들이 계시다”고 말했다. 좋은 만남이란 게 흔히 말하는 연인관계라는 추가 설명이 이어졌다.
 
잠시 잊고 있던 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우연한 기회였다. 지난해 10월 노인의날을 즈음해 만난 한 취재원의 지인이 12월 새장가를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환갑을 넘어 고희에 가까운 나이에 새장가를 갔단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그들을 만나러 갔다. 

처인구 김량장동에 거주하는 한모(67)씨 부부는 처음 기자와의 만남을 반기지 않았다. 10년 전 혼자가 된 이후 자식과 함께 살다 지금은 새로 만난 아내 유모(64)씨와 살고 있단다. 

“요즘은 늦게 살림 합치는 사람들 많잖아. 근데 그게 신문에 나올만한 일은 아닌데 왜 찾아왔어”

한 씨의 첫 마디는 시큰둥했다. 2년 전 한 노인복지시설에서 만나 자연스럽게 인연이 됐다는 이들 부부는 잦은 만남에 정이 들었을 뿐 서로에게 특별한 매력은 없었단다. 때마침 집으로 돌아온 유 씨는 대뜸 손을 휘저으며 자리를 피했다. 

몇 분의 시간이 지났을까. 집을 찾아온 손님에게 커피를 권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과거에 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은 이들 부부가 지금의 심정을 묻는 말에는 “별 거 없다”고 짧은 대답만 남겼지만 점잖은 듯 설레는 웃음은 끊이질 않았다.

“남은 인생 함께 한다는 것” 한‧유 부부가 함께 살기 시작한 것은 애초 들은 것보다 더 빨랐다. 12월 새장가를 간다고 밝히기 2달전부터 이미 부부로 살았단다. 그러니 결혼 7개월여로 접어든 신혼부부인 셈이다. 

“자식들하고 살 때와는 전혀 다른 생활이지. 챙겨주는 사람이 옆에 있고 또 걱정해주는 것이  좋잖아. 길어봐야 십수년 함께 살겠지만 예전과는 다르게 한번 살아보려고 해. 솔직히 먼저 간(이들 부부는 모두 10여년전 사별을 했다) 사람한테는 조금 미안하지만”

30여분의 대화가 이어지자 한 씨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터벅터벅 마실 길에 나섰다. 부부로 인연을 맺은 이후 노인시설을 찾는 횟수는 줄었단다. 함께 찾아도 될법 한데 ‘보는 눈이 많아서’ 약간은 창피하단다. 

“그냥 우리끼리 재밌게 놀면 되는 거지. 복지관 찾아가면 사람들 눈치가 보이는 것 같아. 친한 사람은 괜찮은데 아직도 같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는 쉽게 못하겠어”

자녀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한 씨는 타지에 살고 있는 큰 딸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시켜줬다. 
“(아버지의 재혼)괜찮은 것 같아요. 외롭게 지내시는 것보다 두 분이 의지하시며 살아가니 걱정이 덜되죠. 솔직히 아직은 어색하지만 세월이 지나면 정말 한 가족처럼 지낼 수 있을 것 같아요”

가정의 달을 맞아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은 없을까. 한씨는 유씨에게 “잘해봅시다”라고 말을 했다. 이에 유 씨는 한 씨에게 “고맙습니다”라고 답했다. 

황혼에 맺은 부부의 연. 그 연을 소중히 이어가길 위해 “잘해봅시다”라고 말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끊어졌던 가정을 다시 이어갈 수 있게 돼 “고맙습니다”라고 답했을 것이다. 이들 부부의 결혼 일기는 그렇게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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