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시간 한국을 슬프게 했던 세월호가 마침내 수면 위로 올라왔다. 세월호는 수많은 생명만큼 무거운 몸을 옆으로 누워 긴 배를 드러내고 있다. 세월호 사고 원인으로는 과거 여러 대형사고 사례에서 보는 것처럼 안전불감증의 기본공식인 무리한 구조변경, 과적, 급변하는 상황에 대한 미숙한 대처 등이 언급되고 있다. 

초기 계획과 달리 구조변경과 과도한 부담을 주는 것은 한국 건강보험도 유사한 상황이다. 재원은 부족한데 중증질환, 초음파 등 비급여 부분 보험적용을 확대하면서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 한국 건강보험료는 소득의 6~7% 수준으로 10% 이상을 건강보험료로 지출하고 있는 OECD 국가들보다 낮은 편이다. 선진국의 의료보장성이 높은 것은 건강보험료 지출이 크기 때문이며 적정 보장성을 확보하려면 현재 보험료보다 40~50%정도 인상돼야 한다. 건강보험료 인상은 국민적 거부감이 높을 수밖에 없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건강보험은 질병 발생에 대비해 미리 조금씩 자금을 모아놓는 것이지 어디서 돈이 저절로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과거에도 의료비를 미리 모아서 질병에 대비하기도 했다. 동양에서 치료제로 사용되던 한약재 상당수가 한국에서 재배되지 않아 중국으로부터 수입했으며 가격이 비싸고 구하기도 어려웠다. 대도시의 경우 중앙정부나 관공서에서 확보한 약재를 지급하거나 판매가 됐지만 지방에서는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조선시대 지방 사람들은 계를 조직해 돈을 모아 치료용 약재를 구입하거나 채취해 보관했다가 병자가 발생할 때 저렴한 비용을 받고 지급했는데 이를 ‘약계’라고 불렀다. 지역 주민이 힘을 모아 질병에 대비한다는 측면에서 현대 건강보험과 유사하다.

현대적 한국 건강보험의 효시로 보는 것은 부산 청십자운동으로 미국 청십자운동을 국내에 도입한 것이다. 미국의 청십자운동이 시작된 것은 미국 텍사스의 베일러병원이라는 곳이다. 1930년대 세계적인 대공황으로 생계가 어려운 시민들이 진료를 기피하면서 환자뿐 아니라 의료기관도 경영난에 시달렸다.

미국 텍사스 베일러병원은 경영난을 극복하기 위해 교사 1500명에게 미리 조금씩 돈을 받고 아플 때 활용하는 일종의 선불제를 운영했다. 안정적인 병원 경영을 위해 시도된 제도였으나 환자들은 적은 비용으로 치료받을 수 있게 되면서 건강을 지킬 수 있게 됐고, 병원도 경영개선이 됐으니 일석이조의 효과였다. 베일리병원의 선불제도를 눈여겨 본 다른 병원들도 선불제도를 도입했다. 미국 청십자운동이라는 일종의 의료보험제도로 발전했으며 현재 청방패조합과 합병해서 ‘청십자-청방패연합 의료보험제도’로 이어지고 있다.

현대 건강보험의 효시는 부산 청십자운동

미국에서 청십자 운동이 환자 의료비 부담을 줄였다는 소식을 접한 장기려 박사는 1968년 부산지역 교회 신도 700여명으로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을 결성해 국내에서 청십자운동을 시작했다.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은 의료기관과 계약을 통해 조합원들이 진료를 받을 수 있게 했고 1989년 전 국민 의료보험 실시로 해산했다. 청십자의료보험조합은 일종의 봉사적 성격으로 의료비 중 인건비는 책정되지 않았고 의약품이나 검사비 등 소모품 비용을 받았는데, 이 문제는 현재까지도 의료계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유발시켰다.

청십자의료보험조합 자료는 1977년 한국 정부의 의료보험 추진 당시 참고 자료로 활용됐는데 의료비에 인건비가 반영되지 않은 결과 의료기관은 의료인력 채용을 기피했다. 반면 비교적 비용을 보상 받는 고가 의료장비에 집중 투자하게 됐다. 2015년 OECD 통계에 의하면 한국의 인구대비 CT 보유대 수는 호주, 미국 등에 이어 5위, MRI는 4위이다. 반면 의료기관의 의료 인력 고용은 부족해 병상당 간호 인력은 OECD 평균에 30%도 안 되며, 의사들은 매일 수십 명의 환자를 진료해야 의료기관이 유지되는 기형적인 의료현실로 이어졌다.

한국 의료보험은 의료인력 인건비 반영 안돼

국민소득이 1천 달러에 불과했던 1977년 의료보험료는 낮게 책정하고 의료보장도 조금만 주는 저부담 저급여 정책으로 추진됐다. 1980년대 민주화 이후 소득수준이 올라가면서 국민들의 높은 복지 요청에 따라 의료 보장성을 높이는 정책이 추진됐다. 2005년부터 61%에 불과한 건강보험 보장성을 3조5천억원을 투자해서 80%까지 높이려는 건강보험 보장성강화 정책이 시도됐다. 하지만 한국 총 의료비가 2014년 GDP대비 7.1%인 약 105조원을 고려하면 3조5억원으로 보장성을 20% 올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적절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 건강보험료를 올리는 것은 쉽지 않다. 오히려 각 정당과 정부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20조원의 건강보험을 국민에게 나눠주는 건강보험료 경감방안과 같은 달콤한 선심정책을 펼치고 있다. 재원을 줄이면서 보장성이라는 통계적 수치를 높이는 방법은 총 의료비용을 낮출 수밖에 없는데 정부도 상급병실료, 특진료 혹은 비보험 진료비를 줄여 실적 달성을 추진하고 있다. 비보험이나 과잉진료를 고려해도 한국의 총 의료비가 OECD 평균보다 2% 이상 낮기 때문에 더 줄이는 것은 과적으로 침몰한 세월호와 다를 바 없으며 국민 건강을 불안하게 만드는 위험한 정책이다.

대통령 선거가 시작되면서 각 후보들은 국민 건강을 지켜주겠다면서 각종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보장성 몇 %, 무언가를 더 주겠다’ 실적 위주의 공약보다 안전하고 튼튼한 의료 환경을 만들 정책을 꼼꼼히 살펴보는 지혜가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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