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조상들은 참 배가 고팠나보다. 나무에 핀 꽃을 보며 ‘아! 저게 맛있는 밥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을까. 그래서 그 바람을 담아 나무의 이름을 밥과 관련해서 지었다. 하얀 쌀밥을 닮았다해서 쌀밥 즉 이밥에서 온 이팝나무, 좁쌀처럼 작은 밥이라 해서 조밥 즉 조팝나무,  밥알 모양과 비슷한 꽃이 핀다 해서 밥티기, 밥풀때기 하다가 부른 박태기나무가 있다.

필자가 사는 동네에는 마당이 있는 집들이 많은데 열에 여덟은 요즘 붉은 자주색 꽃봉오리가 강렬한 박태기나무가 한창이다. 시골 어르신들의 조경에도 유행이 있는지 눈에 띄는 예쁜 나무는 어느 집 담장 안에나 꼭 있기 마련이다.

박태기나무는 밥티나무라고도 부르는데 북쪽지방에서는 꽃봉오리가 구슬 같다 해서 구슬꽃나무라 하고 유럽에서는 칼처럼 생긴 열매 꼬투리가 달린다 해서 칼집나무라고 부른다. 또한 기독교에서는 예수를 배반한 유다가 이 나무에 목매어 죽은 나무라고 해서 유다나무라고 부른다니 나무 입장에서 그리 썩 내키지 않는 이름일 것이다. 보는 관점에 따라 이야기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리지만 한번 그 강렬한 꽃을 보게 되면 누구에게든 쉽게 잊혀 지지 않는 나무가 된다. 그래서 그 꽃을 본 많은 사람들로부터 이름을 질문 받는다. 박태기나무라고 알려주면 이름이 참 독특하다 한다. “나무 성이 박씨에요?”라고 질문했던 어린 꼬마녀석의 말에 웃음이 터졌다.

박태기나무는 아주 옛날 중국에서 들어온 나무로 키가 기껏해야 3~4 미터밖에 자라지 않기에 공원이나 정원에 심기에 적당한 나무다. 성격도 무난해 양지, 음지 별로 가리지 않는다. 추위에도 잘 견디니 마당에 심기에 딱인 나무다. 금상첨화로 봄에 피는 꽃도 예쁘고, 여름에 푸르른 잎도 예쁘다. 더구나 가을엔 노랗게 단풍이 들고 콩꼬투리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모습이 독특하다.

박태기나무의 꽃은 붉은 자주색으로 작은 꽃들이 줄기에 다닥다닥 붙어있어 봄에 잎보다 먼저 피는 꽃은 나무 전체를 붉게 디자인한다. 꽃 모양이 처음엔 쌀모양으로 길쭉한 타원형 꽃봉오리였다가 이윽고 콩이나 아까시나무처럼 다른 콩과식물의 꽃 모양과 비슷하게 위 아래로 벌어진다. 강렬한 색감에 눈을 뗄 수가 없다.

꽃이 지고 나면 잎이 돋아난다. 꽃을 보며 강한 인상을 뇌리에 남겼다가 잎을 보면 이내 마음에 따듯함이 전해져온다. 완벽한 하트모양이다. 그것도 아주 통통하면서 빛이 난다. 본능적인건지 아니면 오랜 경험과 학습으로 인한 세뇌인건지 하트모양을 보면 우린 사랑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고 사랑이 주는 따듯함과 설렘을 기억한다. 초록색 하트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박태기나무 앞에 서면 괜스레 설렌다. 사람의 심장과 거의 같은 높이에 있는 키 크지 않은 박태기나무가 가지고 있는 매력이다.

박태기나무와 같은 콩과식물은 개척자다. 우리가 알고 있고 먹고 있는 수많은 콩이 달리는 풀들과 아카시아로 잘못 알려져 있는 아까시나무, 싸리나무, 등나무, 칡 등이 모두 콩과에 속한다. 풀과 나무로 나뉘고 잎 모양도 다 제각각이지만 열매 모양이 꼬투리로 생기고 안에 둥근 씨앗이 있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콩과식물들은 땅이 비옥하지 않은 곳에서도 뿌리혹박테리아들과의 공생관계로 공기 중의 질소를 고정해 잘 살아갈 수 있다. 그래서 황무지나 처음 일구는 밭에는 콩을 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한 그러한 땅에 싸리나무나 아까시나무, 칡 등이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

개척자로서 이들이 먼저 들어가 땅을 비옥하게 만들어주면 다른 풀들과 나무도 들어와 살 수 있는 좋은 터전이 마련된다. 식물 생태계에도 각자 능력에 맞는 역할이 있다. 서로 조화 속에 숲이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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