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바야흐로 대선정국이다. 언론의 최순실 사건 보도, 국회 탄핵의결, 헌재 탄핵판결, 박근헤 전 대통령 구속 등 그야말로 순식간에 청와대 권력의 균열과 붕괴가 진행됐다. 지난 가을 시작된 일련의 정치적 격변을 몰아 부친 것은 물론 광화문 촛불집회였다. 그래서 의회정치에서 광장정치로 권력의 배양지가 바뀐 듯 착시현상마저 일어났다. 그러나 대한민국 역사를 바꾼 단초는 광장이 아니라 투표함이었다. 박근혜 정부의 참담한 종말로 이어진 일련의 사태는 지난 4·13 총선에서 여당이 민심을 잃고 참패하면서 시작됐다.

4·13 총선 직전까지 당시 여당인 새누리당은 전체 국회의원 300석 중 과반수가 넘는 157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선거의 여왕’이 청와대를 차지한 상황에서, 여당의 원내 다수 확보는 어렵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선거승리를 과신한 새누리당의 무리한 후보자 공천으로 전통적 지지기반인 영남지역에서조차 민심이 대거 이탈했다. 개표 결과 여당은 122석을 확보하는데 그쳤고, 정국의 주도권은 야당에게 넘어갔다. 청와대와 여당의 정치적 동력은 고갈되고 통제사슬은 느슨해졌다. 최순실 사태로 상징되는 권력 남용과 오만은 성난 민심 앞에 결국 무릎을 꿇었다. 나는 새도 떨어트릴 만한 세도를 부리며 권력의 정점에 서있던 사람들이 이제는 죄수복을 입은 채 초췌한 모습으로 재판을 받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대통령을 하겠다는 사람, 대통령을 만들겠다는 사람들은 차고 넘친다. 이들은 한결같이 과거와는 다른 정치를 하겠다지만, 이들에게 새로워진 것은 소속정당 명칭이 바뀐 정도가 전부이다. 지역적 지지기반에 안주하면서 상대방 헐뜯기에 몰두하는 구습은 여전하다. 자신의 능력은 과장하고, 상대방은 깎아내리고, 남에게 양보는 절대 안하면서 통합과 화합의 지도자가 되겠다고 하는 점도 모두 동일하다.

선거를 보도하는 언론 행태도 달라진 것이 거의 없다. 유권자의 선택에 도움이 될 만한 뉴스는 눈을 씻고 찾아도 보이지 않는다. 선거보도라기보다 여론조사 중계방송이나 다름없다. 보수 진보라는 단어와 지지율 숫자를 빼면 알맹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심지어 허무맹랑한 소설도 버젓이 선거보도라고 신문과 방송에 나온다. 소위 ‘가상대결’이라는 것이다. 다른 후보들은 제쳐 두고 특정 후보들만이 경쟁할 경우를 가정해 누가 이길 것인가 예측하는 선거보도이다. 이러한 가상대결이 일어날 가능성은 사실상 전무하기 때문에 가상대결 선거보도는 가짜뉴스나 다름이 없다. 노골적으로 혹은 은밀하게 특정후보나 정당을 지지하는 언론보도도 적지 않다.

후보자와 언론은 달라진 게 하나도 없지만, 유권자들은 그렇지 않다. 많은 유권자들이 지난 대선에서 잘못된 선택을 한 것을 후회하면서, 이번에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저 선거 당일 한 표를 행사하는 것으로 끝나는 수동적 유권자가 아니라 후보자의 공약과 자질을 꼼꼼히 검증하는 까다로운 유권자가 늘어날 것이다. 보수니까 혹은 진보니까 한 표를 거저 주는 인심 좋은 유권자가 아니라, 보수가 맞는지 진보가 맞는지 깐깐하게 따지는 유권자들 역시 늘어날 것이다.

덕분에 선거문화도 많이 달라질 것이다. 과거 선거에서 유권자들은 후보자의 능력이나 정책 공약을 중시하지 않았다. 대다수 유권자들은 능력보다 이념을, 공약보다 인상을 중시하는 정서적 투표 성향을 보였다. 그러나 이번 선거에서는 감정적 선택보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선택을 하는 유권자들이 크게 늘어날 것이다. 노인복지, 인구감소, 청년실업, 북핵안보 등 산적한 현안에 대한 후보자들의 해결방식에 주목할 것이고 상호 비교할 것이다.

촛불시위는 박근혜 정권을 해체하기도 했지만, 직업 정치인들과 언론이 주도하던 선거문화도 바꿀 준비를 하고 있다. 5월 9일 대선을 맞아 유권자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그리고 깐깐하게 한 표를 던질 것이다. 정당의 과도한 이념공세나 후보자의 허세에 넘어가지 않고, 언론의 지지율 중계보도에도 흔들리지 않고, 후보자들의 자질과 공약을 꼼꼼히 따져서 한 표를 행사하는 유권자들이 크게 늘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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