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새 학기가 시작됐다. 예전에는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말 잘 듣고, 사고 안 나게 할 것인가에 주의를 집중했다. 그래서 규칙과 통제로 3월을 시작해 한 달 내내 웃지 않는 교사로 지냈다. 그것이 아이들을 실수, 사고로부터 보호하고 지킬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때 ‘아이들은 실수, 사고를 일으키는 존재’라는 해석을 하고 출발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2학기가 되면 거의 눈도 마주치지 않았고, 이런 저런 사고를 냈다. 교사로 반복되는 어려움을 겪다가 여러 해가 흐른 뒤 깨달았다. 3월 첫 날부터 내 스스로 무의식안의 ‘두려움’을 선택했다는 것을.

하버드 정신과 필레이 박사는 ‘브레인 체인지 프로그램’에서 뇌의 메카니즘을 입증해 발표했다. 뇌는 저절로 두려움을 느끼는 것보다 주인의 선택에 따라 행동한다는 것이다. 두려움에 집중하면 전류가 뇌의 편도체에 불을 켠다. 활성화된 편도체는 두려움의 불을 끄기 위해 피하던 일에 오히려 관심, 주의를 기울인다. 결국 두려워서 피하려는 일을 빨리 경험하게 만든다. 뇌는 무의식적으로 불안, 걱정 등의 두려움과 사랑, 용기, 희망 중 선택하는 주인의 명령에 따라 전류를 보낸다. 결국 두려움이 왔을 때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더 큰 의미, 의도인 사랑을 선택해 관심과 주의를 기울일 수 있다. 결국 교사는 두려움과 사랑 중 한 가지를 선택한다.

두려움을 선택하면 나를 방어하는 데 에너지를 모두 쓴다. 1층 본능뇌가 작동해 점검을 시작한다. ‘내가 지금 공격을 받고 있다. 너도 공격하든지 뒤로 도망가든지 멈춰라!’ 아이에게 쉽게 화를 내고, 비난하게 되고, 말을 안 듣는 아이를 쉽게 포기한다. 결국 원래 가진 사랑도 모두 멈추게 된다. 모든 에너지를 교사 자신의 안전에 쓰다 보니, 애들을 바라볼 여유가 없다. 자꾸 ‘과거에 내가 이랬는데…’ 또 ‘앞으로 잘못하면 어떻게 하지?’ 등 늘 과거와 미래에 매달려 ‘지금’이 없다. 지금 아이들은 웃고 우는 모습이 안 보인다.

사랑은 에너지를 가진 성장 동기다. 한마디로 ‘너도 살고, 나도 살고’ 살리고, 돕고, 안아주고, 북돋아주는 것이다. ‘아이가 이미 온전한 존재, 미덕을 가진 존재’라는 믿음은 존재에 대한 사랑 에너지가 준다. 이 믿음은 따뜻한 마음의 눈으로 아이들을 관찰하고 존중하게 한다. 실수할 때도 미덕을 깨울 여유를 갖게 한다. 교사인 내가 아이들 앞에서 감정을 조절하는 모습, 존중하고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줬을 때 우리 아이들도 똑같이 나를 따라서 감정을 조절하고, 존중하고, 배려하는 감정뇌, 조절뇌가 발달된다. 또 아이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따뜻한 용기를 줄 수 있다.

“네 잘못이 아니야, 네 미덕이 자고 있어서 그래, 넌 미덕을 깨울 힘이 있는 사람이야. 어떤 미덕을 깨우면 좋을까?”

‘두려움 에너지’냐 ‘사랑 에너지냐’는 교사의 선택이다. 신기한 것은 교사가 선택한 사랑 에너지는 아이들의 두려움에도 영향을 준다. 아이들이 서로 공격 대신 교실의 약한 아이를 배려하고, 친구의 미덕을 찾아 주다보니 오히려 자존감은 급상승했다. 그토록 꿈꾸던 사랑의 교실이 됐다. 이제 는 교실에서 두려움이 순간순간 다가올 때마다 알아차리고, 사랑 에너지를 선택한다.
‘교사는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다. 그냥 아이들의 가장 큰 거울이 돼주는 교실 환경일 뿐이다.

아이들의 변화는 오직 자신이 선택할 때만 가능하다. 내가 아이와 따뜻하게 마음이 연결됐을 때, 아이는 좋은 선택을 하고자 할 것이다. 그리고 선택한 좋은 행동의 거울이 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교실 환경이다. 나에게서 나오는 존중으로 아이는 존중을 배우고, 나에게서 시작되는 배려로 아이는 배려를 배울 것이다.’

<그 아이만의 단 한사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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