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인은 떠나고 싶지 않은 도시…일과 생활 함께 할 자족도시 되길 바라죠”...신도시 대탐구-정착 시기별로 본 용인 신도시 사람들

▣ 참 석 자
    이석순 (71, 수지구 고기동 출생, 13대째 거주, 전 수지농협 조합장)
    이은영 (47, 수지구 풍덕천동 거주 22년차, 서울소재 중학교 교사)
    김경애 (49, 수지구 동천동 거주 8년차, 마을미디어 수지큐 활동가)
    김주연 (21, 이은영씨 딸로 태어나 용인에서 성장, 성공회대 2학년)
▣ 진 행 : 우상표 편집인  
▣ 일 시 : 2017년 3월 19일 오후 5시~6시 30분
▣ 장 소 : 수지구 동천동 느티나무도서관 3층

 

(사회) 먼저 각자 간단히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이석순 (71, 수지구 고기동 출생, 13대째 거주, 전 수지농협 조합장)

이은영 “출생은 서울 마포에서 하고 중학교까지는 서울서 살았다. 고등학교 이후 결혼 전까지 과천과 평촌에 거주했다. 1995년 결혼과 함께 수지구 풍덕천동에 신혼살림을 차리면서 줄곧 살고 있다. 서울에 있는 중학교 교사로 일하고 있어서 매일 서울과 집을 오간다. 신도시개발 이주 1세대로 20년 이상을 살았다.”

김주연 “용인 수지에서 자랐다. 중학교 때 학교를 그만두고 느티나무도서관을 학교 삼아 다녔다. 오늘 어머니와 함께 왔다. 지금까지 용인을 생활 근거지로 살아와서 사람관계도 주로 용인사람들과 맺어 있다. 결혼 이후에도 용인을 떠나고 싶지 않다.”

김경애 “용인에 와서 산지 8년차다. 이우학교에 아이들이 다니면서 용인에 오게 됐다. 아이들이 졸업하면 떠날 생각이었지만 정이 들고 마을공동체 활동에 참여하면서 정착하기로 마음 먹었다. 첫 번째 우리 집을 고기동에 지었다.”

이은영 (47, 수지구 풍덕천동 거주 22년차, 서울소재 중학교 교사)

이석순 “조상 대대로 고기동에서 살아왔다. 13대 째다. 고향은 오지라고 할 정도로 교통이 불편한 시골이었는데 지금은 상전벽해가 됐다. 어린 시절 당시 수지 관내 학교라곤 고등학교는 아예 없었고 문정중학교까지였다. 고기동에서 풍덕천까지 걸어다녔지만 힘들다는 생각을 해보진 못했다.”

(사회) 용인 이주를 통해 정착한 이들에겐 용인 첫 인상이 어떠했을지 궁금하다.

김경애 “이주 전 이미지는 대규모 신도시개발에 따른 베드타운이었다. 8년 전 이주 후 난개발 문제가 아주 심각하다는 걸 느꼈다. 도시정책이 여전히 부동산 개발에 집중하는 모습이 안타깝다. 현재 고기동에 살지만 이주 당시엔 동천동 아파트에 살았다. 동천동 삼성래미안 이스트팰리스가 한창 건설 중이어서 동네 곳곳이 어지러웠다.  아이들 교통사고가 자주 있었다.

이은영 “90년대 중반이었으니깐 개발 초기다. 여긴 어디? 처음 와보는 낯선 동네였다. 과천, 평촌 등 아파트 숲인 신도시에 오래 살아서인지 수지 신도시 개발 초기 모습은 개발 중이라 어수선하긴 했지만  사람도 차도 많지 않은 조용한 동네였다. 주말이면 남편과 고기리 쪽에 놀러가서 돗자리 펴 놓고 물고기 잡던 추억이 있다.”

김경애 (49, 수지구 동천동 거주 8년차, 문탁네트워크 활동가)

(사회) 수백 년 동안 누대에 걸쳐 터전을 지켜 온 분들에겐 그 변화과정이 남달랐을 것으로 보이는데.

이석순 “성장기 때를 떠 올려보면 하루의 일상은 어른들의 간섭없이 방치된 자유인이었다. 자연과 한 몸이었다. 누대를 같이 살아오던 이웃 간의 정리는 바로 이웃사촌 관계였다. 누가 이사를 가면 통곡을 하며 이별을 아쉬워했다. 지금은 이사 가고 오는 것은 일상이 돼 버렸고 관심의 대상이 되지도 못한다. 심지어 누가 이웃인지도 모르는 경우도 많다. 이웃을 알려고 하지 않으려는 이방인의 관계다. 신도시가 되면서 잃은 것은 전통과 이웃 간의 인심이고 느끼지 못했던 빈부 차이다. 얻은 것이 있다면 교육, 의료, 교통의 편리 등 문화혜택이라고 볼 수 있겠다.”
(사회) 용인에서 태어나 성장한 정착 2세가 바라보는 용인에 대한 시선은? 

김주연 (21, 이은영씨 딸로 태어나 용인에서 성장, 성공회대 2학년)

김주연 “부모님이 용인에 이주해 온 경우지만 부모님과 용인에 대해 생각이 다르다고 느낄 때는 거의 없는 것 같다.  문화소비 역시 부모님과 비슷한 것 같다. 청소년들의 경우 공부 이외에 만나는 장소는 수지 번화가 외에도 미금역, 오리역, 서현역, 서울 등이다.
수지가 용인에 속해 있긴 하지만 처인구 쪽으로는 용인시청과 에버랜드, 그리고 아빠가 일하는 원삼, 백암에 가본 적이 있다. 수지를 벗어나면 관내 다른 곳들 보다 서울과 성남 분당 등 다른 도시 쪽을 더 많이 간다. 교통이 더 편해서 그런 것 같다. 나는 용인 이주 전 부모들이 생활했던 도시보다는 현재 내가 살고 있는 용인에 대해 정서적 공감이 있다. 용인에서 태어나거나 성장한 것에 대해 자부심이란  표현은 과한 것 같고 그냥 정이 있는 것 같다.”

(사회) 용인 이주에 대한 기대감 또는 실망도 있었을 텐데.

이은영 “서울로 직장 생활을 하다 보니 퇴근 후, 주말에는 편안한 휴식처를 기대했다. 비교적 그 부분은 만족스러웠다. 기대감에 비해 실망했던 점은 집 근처에서 싱싱한 과일이나 생선 살만한 곳도 가까이 있지 않아서 멀리 걷거나 차를 타고 장보러 다녔다. 쇼핑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시장, 마트 등이 거의 없어서 처음 살림을 시작하는 입장에서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다.”

김경애 “이주 하면서 별다른 기대가 없었다. 아이들 졸업까지만 머물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실망을 좀 했다면 다른 신도시에 비해 대중교통이 불편했다. 인구 수에 비해 용인 시내로 움직일 때 필요한 대중교통이 부족하다. 자가용 없이 생활하는 게 불편했다.”

(사회) 정착 초기 토박이 원주민들이 이주민에 대한 태도는 어떠했나?

김경애 “사실 원주민들의 수가 워낙 적어 이질감은 별로 없다. 오히려 옛 동천동 고기동 이야기를 들을 때면 10년 전이 아니라 몇 십년 전같이 느껴진다. 1세대 정착주민들과의 차이는 별로 없다.”

이은영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이웃과의 교류가 많은 편은 아니었다. 토박이 원주민들에 대한 기억이나 경험은 거의 없다. 토박이 원주민 2세들이라고 해야 하나? 우리 가족이 자원활동가로서, 이용자로서 자주 다니던 느티나무도서관에서 만난 어린 아이들 중에는 지금도 애틋한 마음으로 가까이 지내는 청년이 있다. 수지가 개발되는 과정에서 가족이 해체되고 그 당시 돌봄으로부터 소외된 아이들에게 내가 뭐라도 해줄 것이 없을까를 생각하며 나름 인연을 맺었는데 지금은 청년이 되어서 살고 있는 모습을 보면 오히려 내가 위로 받는다. 이질감은 모르겠고 그저 함께 살아가야 할 이웃이라고 생각했다.”

(사회) 이주 초기 남들에게 용인에 산다고 밝히질 못했다는 얘길 많이 들었다. 

김경애 “숨길 이유가 전혀 없다. 그냥 용인수지라고 말한다.”

이은영 “떳떳하지 못할 건 전혀 없었고.. 용인이라고 하지 않고 수지라고 하면 아 는 사람들이 꽤 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당연히 수지를 모르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거 같다.”

이석순 “신도시 개발 초기만 해도 수지는 면단위였고 마을은 ‘동’이 아닌 ‘리’로 불리던 시기였다. 그러다 보니 어디 사냐? 하면 분당 또는 심지어는 서울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었다. 아마도 그런 곳이 있냐? 하는 재질문에 귀찮은 면도 있었을 것이고, ‘어디 산다’가 곧 그 사람의 여러 가지 정보와 경제적 수준 등으로 이해하는 일부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사회) 대대로 터전을 지키며 살아온 입장에서 유입 정착주민들을 어떻게 바라보나?

이석순 “사실 초기에 유입 주민들은 집시와 같다고 생각했다. 다른 곳에 아파트가 당첨되면 언제라도 떠난다. 유입 주민들과도 문화적 이질감 등 갈등 요인도 없는 건 아니다. 비판 의식을 서로 표현하지 않아 드러나진 않을 뿐이었다. 그러나 요즘 스스로 지역 공동체 발전을 위한 의미있는 움직임들을 보면서 변화와 가능성을 본다. 관변단체 등 지자체 의존형 활동이 많은 원주민들에 비해 자립형 참여활동이 많은 것을 본다. 희망적이다.”

(사회) 이주 정착 1세대 입장에서 용인시민의 입장에서 현재 용인생활에 대해 말한다면?

이은영 “만족보다 이제는 모든 것이  익숙해진 것  같다. 20년 이상 살다보니까.. 골목 구석구석에 애착이 있고 가족 같은 이웃들도 생겼다. 외동이인 딸에게 할머니, 이모, 언니, 오빠, 동생같은 좋은 사람들이 늘 함께 있고 절대로 이곳을 떠날 수 없는 중요한 이유가 되었다.
 개인적으로 서울로 출퇴근 하는 입장에서 보면 점점 차가 막혀서 불편한 점이 있다. 지금도 새로 짓고 입주를 앞두고 있는 아파트가 많아서 앞으로 교통 문제가 더 심각해 질 것 같다. 또 가끔 남편이 일하고 있는 용인 백암, 원삼 현장에 가보면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공기 맑고 풍경이 아름다운 곳들이 이렇게 가까운 곳에 있었구나 할 때도 있는데, 실제로 그 곳에 살고 있는 분들의 불만도 있을 것 같다.
용인 시내 쪽도 마찬가지고.. 사실 수지에만 살아서 용인의 한 부분밖에 알지 못한다. 용인 전체적으로 보면 어딘가 소외 받고, 집중되는 문제들이 분명히 있을 텐데 그런 불만을 해결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사회) 이주 정착 2세대 입장에서 용인시민의 한사람으로서 현재 용인생활에 대해 말한다면?

김경애 “결혼 후 도시생활에 익숙해져 좀 더 살기 좋은 도시지역을 찾아 이주했다. 아마 대부분 우리 또래의 삶이 그럴 것 같다. 돈을 많이 벌어 살기 좋은 곳으로 이사하는 것. 살기 좋다는 의미는 다양하겠지만 대체로 삶에 필요한 기반시설이 잘 되어있는 곳일 게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갇힌 메뚜기 같은 삶이 지치기도 하지만 거주하는 곳이 문제가 아니라 삶의 방식이 바뀌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거주하는 곳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자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위해 이웃주민들과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이 절실히 느껴졌다. 분당이나 수지나 별다른 차이를 못 느꼈는데 이곳에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굳히자 점차 수지만의 특성과 문제 그리고 기대감이 생기고 있다.
현재 용인생활은? 일단 남편이 강남쪽 직장이라 출퇴근의 어려움이 없고 서울에 비해 공기도 좋아 주거환경이 좋다. 구체적인 내 생활의 변화는 자가용 운전이 더 많아졌다. 고기동으로 이사하고는 여러 가지로 생활에 만족도가 높다. 지역적 특성으로 아파트단지가 아닌 주택에서 산다는 게 좋고 주변 환경도 좋은 편이다. 직장과 교육문제로 계속 이사 다녔는데 7년 정도 살면서 이곳에 정착하기로 결정하고 이웃주민들과 함께 하는 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사회) 용인을 지켜온 입장에선 신도시 개발 전과 개발 후 삶에 어떤 변화가 있었나?
이석순 “의식주 환경은 단독주택에서 아파트로 바뀌었다. 친구 관계 역시 수평적 관계에서 수직적 관계로 변화했다. 친구들 만나기가 일상에서 어렵다. 단지 친목회 정도나 동창회로 만난다.
원주민 중에 토지를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은 다른 곳으로 이주했고 나머지 사람들은 직업 없는 무직자로 생활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연령을 떠나서도 할 것이 없는 현실이다, 풍습과 인심도 엄청 변했다. 마을 중심의 공동체가 해체됐다. 미풍양속을 유지하던 풍습은 사라졌고 관 의존형 공동체만 존재한다. 자발적이고 협업적인 공동체가 없다. 전통문화는 마을중심 또는 협업을 통해 유지 발전되는 것이라 할 때 지자체의 지원 없이는 유지하기도 어렵다. 수지는 줄다리기 정도가 남아 있으나 수년간 시현이 중단된 상태에서도 확인된다.”

(사회) 최근 정착한 경우이고 특히 도시 마을공동체 활동을 하는 입장에서 용인사회의 미래를 어떻게 바라보나?  

김경애 “용인시의 이미지는 대규모 아파트 도시이다. 이제 인구 수가 100만명이고 앞으로도 베드타운의 성격으로 더 강해질 것 같다. 그러나 분당에 인접한 수지에 비해 기흥과 처인쪽은 생활과 문화 기반시설이 충분해 보이지 않는다. 수지도 분당과 강남에 가깝기 때문에 용인 기반보다 타도시의 기반들을 더 이용하는 편이다. 원주민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용인시는 타지 사람들의 수는 더 늘어나고 ‘용인’에 대한 지역에 대한 애정이 크지 않을 것 같다.
우리 마을, 우리 시라는 인식이 부족한 상태에서 용인시 정책담당자는 시민의 생활적 삶보다는 개발이익에 더 중점을 두고 있고 여전히 자연을 훼손하는 정책을 계속 고집하고 있는 것 같다. 부동산 버블의 위험성이 가장 높은 곳이라는 점도 불안하다. 이에 대해 시민들의 적극적인 문제인식과 함께 시당국의 인식전환도 필요할 것 같다. 백만의 도시에 걸맞은 시정책의 미래 비전이 부족해 보인다.

(사회) 정착 1세대이자 20년 이상 살아온 입장에서 용인사회의 바라보는 시선은? 

이은영 “변화하려고 노력하는 움직임이 있으니까 좋아지지 않을까? 이 인터뷰도 그 중의 하나라고 생각해서 하기로 한 거다. 딸아이가 먼저 나서서 하자고 하는 바람에. 딸아이가 수지에서 태어나서 21살이 되었다. 엄마 아빠 따라 용인의 이웃 아줌마, 아저씨 따라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었던 촛불 소녀가 이제 스스로 촛불을 들고 세상의 변화를 느끼고 말하려고 한다. 기성세대의 움직임도 중요하지만 청년들이 무한 가능성을 펼칠 수 있는 활동 영역이 좀 더 많아지면 좋겠다. 그렇다고 팍팍한 청년들의 삶에 무리한 요구를 할 수는 없으니 그들이 용인에 자리 잡을 수 있는 일자리, 삶의 터전을 만들어 주려는 어른들의 몫을 다 하면서 그런 기대를 해야 하지 않을까?”

(사회) 용인을 짊어질 미래세대로서 내 삶터 용인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김주연 “앞으로 성장해 사회생활을 하게 될 경우, 용인에서 머물고 싶다. 익숙함을 벗어나기 싫고, 수지에서 만난 좋은 사람들과 계속 함께하고 싶기 때문이다. 용인에서 생활하며 성장하고 지금은 서울로 학교를 다니지만 교통이 좋고 대부분의 원하는 일들을 동네에서 해결할 수 있다. 다만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정치적으로 계속해서 보수적인 정당이 당선되는 것이 청년세대로서 불만족스럽다.”
 
(사회) 끝으로 용인사회에 대한 바람을 말해 달라.

이석순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가기 위해선 무엇보다 정주생활이 이뤄져야 한다. 그 속에서 공동체의식이 생긴다. 시민으로서의 자긍심을 갖고 살 수 있도록 문화적 기반이 더 확충돼야 한다. 행정과 시민, 지역간 소통과 교류도 더 긴밀해져야 한다.”

김경애 “주관적인 판단일 수 있지만 다른 도시에 비해 공무원들의 복지부동이 심한편이다. 공무원들은 시민과 거버넌스(협치) 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 생각을 바꿔야 한다.  용인시의 장점을 활용했으면 좋겠다. 특히 교육과 문화면에서는 다양한 인적자원을 갖고 있지 않은가. 용인시가 다른 도시에서 돈 벌고 잠만 자는 곳이 아니라 돈을 벌고 생활할 수 있는 도시구조로 바뀌길 바란다. 끝으로 동서 지역 교류가 활발해지기 위해서도 교통체제 변화가 시급하다.”

이은영 “요즘 거리에서 빚 청산 홍보 현수막을 많이 보게 된다. 선언적인 것보단 살기 좋아졌다고 몸으로 느낄 수 있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정책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교사로서, 엄마로서 개인적인 바람은 청소년들이 누릴 수 있는 공간과 문화가 다양하게 있었으면 좋겠다. 수지 학원가로, 분당, 대치동으로 아이들을 내모는 현실 자체의 변화가 쉽지 않더라도 그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쉬어갈 수 있도록 고민이 필요하다.”

김주연 “앞으로 아파트 좀 그만 지었으면 좋겠다. 용인에서 자라온 내가 결혼 이후에도 용인에서 살고 싶은 꿈을 이루려면 일자리가 있어야 한다. 각자 능력과 적성에 맞는 일자리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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