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느티나무도서관 박영숙 관장...“도서관은 시민이 탄생하는 제3의 공간”
끊임없이 말 걸고 질문 던져야

느티나무도서관의 모든 사서들은 지역 주민의 이름을 줄줄이 꾀고 있다. 주민들과 대화하는 일은 이들에겐 가장 중요한 업무다. 사람들의 생각을 읽고 책을 추천하거나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하며 토론한다. 오른쪽에서 세 번째가 박영숙 느티나무도서관 관장.

박영숙 관장은 2000년 자비를 털어 수지구 한 빌라 지하공간에 작은 도서관을 만들었다. 이후 2007년 건물을 지어 자리 잡은 게 지금의 느티나무도서관이다. 지역에 도서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많은 이웃이 도왔다. 지금까지 느티나무도서관이 지역을 넘어 전국적으로도 유명한 사립도서관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데는 사실 시민의 힘이 크다.

박 관장은 도서관을 발전소에 비유한다. 시민이 탄생하는 ‘제 3의 공간’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최근 시민들은 국정농단 사태로 큰 실망과 분노를 느꼈다. 하지만 우리는 시민들이 행동하고 참여할 때 민주주의 사회를 이룰 수 있음을 깨달았다. 도서관도 마찬가지다.

“지난 몇 달간 우리가 경험했던 일들은 시민의 가능성을 일깨워줬어요. 자신감을 회복하게 해줬다고 할까요? 그 모습을 보며 전 도서관에서 발견한 가능성을 떠올렸죠.”

도서관 이용을 오롯이 시민의 자율성에 맡겼을 때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책을 지키는 사람이 없다면 책이 많이 사라질까? 박 관장이 경험을 통해 얻은 답은 ‘아니다’였다. 지난해 8월 동천역에 마련된 느티나무 열린도서관은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줬다. 지키는 사람도 어떤 제재 장치도 없이 ‘시민의 힘으로 작동하는’ 도서관을 만든다고 했을 때 주위 사람들은 말렸다. 책을 잃어버릴 게 분명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모두의 예상은 빗나갔다. 아니 정확히 하자면 박 관장의 예상만 적중했다. 시민들은 낯선 이 경험을 통해 스스로 도서관을 지키고 가꾸는 방법을 터득했다.

“책은 거의 없어지지 않았어요. 인간의 존엄함과 자유 욕구를 인정했더니 사람들은 도서관을 더 사랑하고 아끼게 됐어요. 자긍심을 갖고 뿌듯한 마음으로 도서관을 이용하게 된 거죠.” 누가 가르쳐주지도 강제하지도 않았다. 시민들은 도서관을 통해 시민의식을 배우고 있었다.

느티나무 도서관에는 ‘컬렉션’이라는 코너가 있다. ‘나는 왜 이일을 하는가’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 ‘떠나지 않고 여행하는 법’ ‘인공지능 더 이상 SF가 아니다’ 등 우리가 쉽게 지나칠 수 있지만 시대를 반영하는 다양한 주제로 분야에 상관없이 책을 모아놓은 것이다. 각 주제들은 마치 도서관을 찾은 이용자들에게 말을 건네듯 다가간다. 그리고 독자들은 알고 있다고 착각했던 주제들에 대해 깊이 있게 다가가며 생각하지 못한 무수한 발견을 하게 된다.

올해 느티나무도서관은 소장한 도서들을 대거 ‘컬렉션’ 방식으로 분류할 예정이다.

“보통 도서관들은 책을 십진분류로 정리해요. 정말 오래된 방법인데다 지극히 학문적인 입장에서 분류하는 방식이죠. 이와 반대로 도서관이 적극적으로 이용자에게 다가설 수 있는 방법이 필요했어요. ‘넌 어떻게 생각해?’하고 물음표를 던지는 거죠.”

이용자들은 도서관이 모아놓은 ‘컬렉션’ 속의 책들을 읽으며 한 주제에 대해 고민하고 성찰한다. 때로 낭독회를 갖기도 하고 함께 모여 대화를 나누며 토론의 장을 열기도 한다. 시민에게 말을 거는 도서관, 시민을 끊임없이 생각하게 만드는 도서관이 된 것이다.

시민들은 이런 ‘낯선’ 경험을 통해 자신도 모르게 “도서관을 가면 뭔가 깨닫고 배우게 된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삶에 있어 꼭 필요한 공간이 생기는 것이다.

“무모한 실험들을 계속하고 있어요. 저희들은 ‘도박’이라고 표현하기도 해요. 사실 이런 도전들은 어떤 도서관에서도 가능한 일이에요. 저는 특히 많은 시민이 이용하는 공공도서관이 시민의 가능성을 열어줬으면 좋겠어요.”

공공도서관은 정해진 기준, 평가와 성과가 중요하기에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공공도서관 역시 랑가나단의 법칙처럼 ‘성장하는 유기체’여야 한다. 단순히 시민들이 오기만을 기다리는 도서관이 아닌 시민 스스로 찾아오는 도서관이 돼야 한다.

“요즘 도서관들은 시민 참여를 위해 많은 프로그램을 진행하죠. 하지만 아쉬운 건 일회성 행사에 그친다는 거예요. 여타 문화시설의 프로그램과 다를 바가 없죠. 사람들은 수많은 프로그램 중 마치 상품을 구매하듯 몇 개를 골라 참여해요. 오랜 시간 고민하고 성찰할 수 있도록 유도할 수 있는 도서관만의 전문적인 프로그램들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저작권자 © 용인시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