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미국 정책이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군사, 정치, 경제에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의 자국 이익 우선 정책은 일견 이해되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국민 건강을 보장하는 오바마케어를 수정하거나 폐기하겠다는 주장은 한국 국민으로선 이해하기 힘들다. 미국 의료비는 간단한 맹장수술도 수 천만원씩 해서 큰 부담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저렴한 의료비를 약속한 오바마케어를 미국 국민은 왜 반대했을까? 높은 비용과 복잡한 규정 때문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인들의 80%는 이미 건강보험에 가입해 있다고 한다. 미국은 한국처럼 단일 보험회사가 아닌 수많은 보험회사들이 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건강보험에 가입돼 있다. 저소득층에게는 연간 1~2천만원이라는 부담스러운 보험료 때문에 가입을 기피하는 경우가 있었다. 건강보험료 납부가 어려운 사람들에게 수 백만원의 보조금을 지원해 건강보험을 가입하게 한 것이 오바마케어다. 당연히 막대한 비용이 예상된다. 10년간 약 4천만 명에 대한 초기 지원비 추정액은 약 1조 달러(1155조원), 최근에는 1조7600억 달러(2032조원)라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예상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반대한 것이다.

막대한 비용이 발생한 이유는 높은 인건비와 고가 의약품으로 미국 의료비가 비싸기 때문이다. 미국 인건비가 높은 것은 당연하겠지만 미국 약품 가격이 높다는 점은 의아할 수 있는데, 이는 한국의 약값이 비싸다는 잘못된 정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의약품 가격은 비슷한 편이다. 2014년 기준 한국의 1인당 의약품비는 연간 445달러로 OECD 평균 433달러에 비해 약간 높은 편이다. 단지 한국 의료비가 매우 낮아 총 의료비 중 약제 비율이 20.6%로 높아 보이는 착시효과다.

한국도 오바마케어처럼 전 국민 의료보험 도입 시 지역가입자 부담에 대해 50% 국고 지원을 약속하는 당근책을 제시했다. 1989년 전 국민 의료보험 도입 첫 해에는 국고 지원금이 946억원에 불과했지만 2016년에는 5조4천억원까지 증가했다. 하지만 전체 보험 수입의 11%에 불과하다. 정부가 늘어나는 의료비용에 국고 지원금을 감당할 수 없어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이다. 특히 2000년 의약분업 이후 약사 인력들이 건강보험으로 편입되면서 지출이 급증해 2001년 건강보험이 파산 위기에 직면하자 의료비를 강제로 인하하기도 했다. 한국의 총 의료비는 2014년 기준으로 GDP 대비 7.1%인 105조원 규모로 OECD 평균인 135조원(9.1%)에 비하면 약 30조원 부족하다. 반면 건강보험 재정은 48조원으로 터무니없이 적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은 어떻게 낮은 비용으로 의료체계가 유지될 수 있었을까? 그 비밀은 의료기관의 엄청난 구조조정이다. 전 국민 건강보험이 도입된 1989년은 컴퓨터가 본격적으로 보급되던 시기였다. 의료기관의 다양한 업무가 전산화되면서 행정인력이 감축될 수 있었다. 의료진도 축소해 의사 1인당 진료량을 늘렸다. 국내 최대 규모 병원의 의료진이 수천 명에 불과한 반면 비슷한 진료량을 가지는 메이요클리닉은 수만 명을 고용하고 있으니 얼마나 많은 인력이 부족한지 알 수 있다. 의료진이 부족한 것은 국민건강 측면에서 안전하지 않아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다. 2015년 메르스 사태가 발생한 것도 결국 충분한 의료진이 확보되지 않은 결과이다. 따라서 병원에 적자 경영을 강요할 수 없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오바마케어의 약점으로 알려진 복잡하고 애매한 규정 역시 한국의 건강보험에도 존재한다. 부족한 재정으로 충분한 의료행위에 대한 보험 급여가 불가능하며 때로는 애매한 조항으로 일선 의료진을 당혹하게 한다. 예를 들면 사마귀를 치료할 때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경우 건강보험 적용 대상이 되고 아닌 경우에는 비급여라고 한다. 그렇다면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는 경우가 어떤 경우일까? 발바닥에 사마귀가 생겨서 걷기 어렵고 손등이나 손바닥에 있어 필기에 장애가 있으면 보험적용 대상일까? 모호한 사마귀 치료 보험 규정으로 2016년 의사 2명이 자살하기까지 했으니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간단한 사마귀조차 이런데 복잡하고 전문적인 수많은 의료행위의 모호한 규정은 의사들을 어렵게 하고 있다. 한국 국민들 대부분이 복잡한 건강보험 규정을 모르는 이유는 의료기관이 행정 처리를 무료로 대행하기 때문이다. 물론 미국 등은 의료기관이 대행하는 경우 추가 비용이 청구된다. 의료비가 올라가는 이유 중 하나다.

싼 의료비가 좋은 것은 아니다. 다리를 건설할 때 너무 싼 가격을 고집하면 부실시공 위험성이 있고 과적 차량이 계속 지나가면 무너질 수 있다. 이처럼 낮은 의료비는 부실 의료를 만들고, 과도한 보장성 확대는 의료체계를 무너뜨릴 수 있다. 우리나라는 의료보험 도입 초기 낮은 보험료로 아주 기본적인 의료 보장이었다. 그러나 민주정부 이후 복지혜택을 늘리면서 국민 부담을 증가시키는 보험료 인상은 꺼리면서 외형적인 확대 정책으로 일관해 내부적 부실은 가속화되고 있다. 일단 늘어난 복지 혜택은 다시 줄이기 힘들고, 그 결과 부족한 재원으로 제공된 의료는 부실할 수밖에 없다. 정부부터 초기 약속한 건강보험 국고지원금을 납부하되 과도한 보장성 확대 정책은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선거 때면 선심성 공약이 남발되기 마련인데 부실 공약에 현혹되지 말고 튼튼한 정책에 관심을 가지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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