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아파트’하면 재건축이 떠오르는 것은 요즘을 사는 일반 사람들의 생각일 것이다. 그렇다면 필자는 일반사람이다. 하지만 항상 숲을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다른 각도의 시선도 가질 수 있으니 다행이다. 오래된 아파트는 그 만큼 오래된 식물들이 함께 있다. 뿌리도 내릴 만큼 내리고 가지도 무성해질 만큼 무성해져 본연의 자기모습을 찾은 식물들이 위풍당당하게 그 자리에 서있다. 간혹 사람들이 잘못된 자리에 식물을 심었다면 그 자리에서 근근이 버티고 있거나 사라졌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잘 짜인 공간배치 안에 들어간 식물들은 건강하게 자라 그들만의 멋진 숲을 만든다.

얼마 전 길을 걷다가 아파트 가장자리에 심은 큰 ‘스트로브잣나무’들을 만났다. 이름이 많이 생소하게 들릴 수 있다. 우리 주변 침엽수 중에 솔방울은 솔방울인데 너무 삐죽하고, 잣나무열매라고 하기에 속이 빈, 어설픈 열매를 단 나무가 있다. 그것이 바로 ‘스트로브잣나무’이다. 잣나무와 같이 바늘잎이 5개 모여 난다. 하지만 잎이 빳빳하지 못하고 가늘고 길어서 쳐지는 특징이 있다. 스트로브잣나무는 딱히 눈여겨 볼만한 특징을 찾지 못하고 지나치는 식물 중 하나였다. 그런데 우연히 아파트단지를 지나가다가 필자가 평소에 생각했던 이미지와 많이 다르게, 참으로 튼실하고 멋있는 나무들을 발견한 것이다. 솔방울도 큼지막한 것들이 가지 끝에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오랫동안 열심히 커서 본래 느낌을 물씬 풍기는 나무들이었다. 이런 환경에선 주변에 새들도 많다. 그 흔한 참새도 오래된 아파트 숲에선 윤기가 반지르르하니 귀티나 보인다.

우리나라의 전국 낮은 지역에, 또는 조경수로 두루 심어 키우는 나무이니 누구나 한번쯤은 봤음직하다. 어쩌면 그냥 소나무려니 잣나무려니 하고 스쳐 지나갔을 수도 있다. 우리 주변에 그런 식물은 한둘이 아닐 것이다. 세상의 많은 것들은 먹을 수 있는 것과 먹을 수 없는 것으로 나뉘기도 하니 열매가 부실해 보이는 나무는 오죽할까. 그래도 덜 성숙한 초록색의 예쁜 스트로브잣나무 열매를 본다면 관심을 가질 수도 있겠다.

이름에서도 느껴지지만 이 나무는 우리나라가 고향이 아니다. 북아메리카가 원산이며 그곳에서도 숲에 많이 심는 나무라고 한다. ‘스트로브’는 이 나무의 학명인 Pinus strobus(속명+종명)에서 종명인 스트로버스(strobus)를 가져다 쓴 것으로 ‘솔방울’을 의미한다. 볼품없게 느껴졌던 열매가 이 식물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였으니 무지에서 오는 부끄러움이 크다. 용인시와 접해있는 수원시 권선구에는 잠사과학박물관이 있다. 이곳에는 1917년 잠업시험소가 생기면서 기념으로 심은 스트로브잣나무가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라고 한다.

어설프고 초라해보이던 스트로브잣나무는 원래 그런 나무가 아니었다. 키가 30m까지 곧게 자라고 잎이 무성하고 열매도 많이 달리는, 사람을 압도할 수 있는 나무였다. 시간이 된다면 오래된 숲도 좋지만 오래된 아파트 단지를 걷는 것도 좋겠다. 깊은 숲에서만 기대했던 무수한 새들 소리도, 침엽수림의 청량감도 느낄 수 있다. 가지가 우거져서 터널을 만드는 멋진 길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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