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측백 열매

눈이 내리자 나뭇가지에 쌓인다. 잎을 달고 있는 늘푸른나무에 더욱 수북이 쌓인다. 크리스마스가 지났는데도 눈 쌓인 나무는 그때를 생각나게 한다. 함박눈이 내릴 때면 마당에 1m나 쌓인 눈을, 삽으로 굴을 파며 놀던 어릴 때가 생각나 좋기도 하고,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부러질 소나무가 걱정되기도 한다.

주변에 많이 심은 서양측백에도 눈이 쌓여 가지가 쳐진다. 서양측백은 잎이 땅과 수직으로 서는 것이 특징이다. 책장에 책을 꽂아두는 모습처럼 말이다. 가을엔 노랗고 작은 열매가 탐스럽게 달린다. 생울타리로 많이 심는데 잔가지가 많아 벽을 세운 것처럼 촘촘하고 어디에서든 잘 자라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측백나무는 석회암지역의 환경이 열약한 곳에 남아 있다. 사람들의 많은 간섭에서 살아남은 소중한 숲이다. 그리 흔하지 않은 숲이지만 몇몇 곳이 남아있어 다행이다. 측백나무는 서양측백과 달리 잎이 땅과 수평하게 자란다. 필자의 고향은 시멘트공장이 많은 석회암지역이다. 그래서 측백나무를 소나무보다 더 가까이 느끼며 자랐다. 자주 오르내리던 뒷산 밭의 경계는 높고 푸른 측백나무이거나 성글성글한 탱자나무였다.

산울타리로 심은 서양측백

탱자나무는 꽃이나 열매 향은 좋지만 가시가 무서워 꺼려지는 나무였다. 반면, 측백나무는 침엽이지만 나뭇잎이 부드럽고 열매도 백색이 도는 푸른 콩처럼 생겨서 따다가 놀이하기를 즐겼다. 측백나무 잎을 스치며 좁은 밭길을 뛰어다니던 추억이 아련하다.

밭 경계로는 탱자나무가 더 좋았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 중에 측백나무가 있었던 이유는 측백나무가 흔한 것도 하나의 이유였겠지만, 밭 중간 중간에 무덤이 있었기 때문인 듯하다. 옛날 중국에서는 소나무는 왕의 무덤에 심고, 그 외 왕족의 무덤에는 측백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죽어서이지만 왕족에 버금가게 대우하려 했던 우리 조상들의 노력이 엿보인다. 요즘은 많은 사람들이 화장하기 때문에 측백나무와 무덤 풍경이 점점 사라지는 것이 아쉽다.

오래전부터 측백나무를 귀하게 여겼기 때문에 중국에는 2100년이 넘는 측백나무가, 우리나라에도 300년이 넘는 나무가 있다. 대구시 도동 측백나무숲은 우리나라 1호 천연기념물이다.

2016년 조사에 따르면 3만5600여m²에 측백나무 1400여 그루가 자라고 있다고 한다. 숲은 하나의 생물공동체이다. 소나무 숲에는 산초나무와 맑은대쑥이 있고, 신갈나무 숲에는 단당풍나무와 제비꽃들이 있다. 이 흔하지 않은 측백나무 숲에 또 어떤 동·식물이 함께 살고 있을지 너무 궁금하다. 생태와 둘레길이 화두인 요즘, 대구에서도 이곳에 있는 향산마을을 생태 힐링 체험공간으로 개발할 것이라고 한다. 흔하지 않은 숲이면서 우리나라 지역의 생태를 대표할 수 있는 만큼 대구에서 잘 보존하고 알리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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