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9월 미국 동부 메사추세츠주 보스턴 근처 인구 2만8천명의 작은 마을 프래밍햄에서 한 연구가 시작됐다. 그 연구는 70년이 지난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 전 세계 의학계에서 가장 유명한 연구 중 하나인 ‘프래밍햄 심장 연구’다. 프래밍햄이 연구 도시로 선택된 이유는 하버드대학에서 가까운 작은 마을로 인구 변화가 적었기 때문이었다. 미국은 루즈벨트 대통령이 1945년 고혈압 합병증으로 급사했으며 성인 3명 중 1명이 60세 이전에 심혈관 질환이 발생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다. 항생제 개발로 전염병이 조절되면서 전체 사망 원인 중 심혈관 질환 비율이 증가하고 있었다.

의료계 관심이 전염병에서 고혈압, 심장병과 같은 만성질환으로 바뀌기 시작했으며 만성질환도 전염병처럼 역학조사를 통해 예방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1946년 하버드 의대와 메사추세츠주 보건부는 프래밍햄에서 심장병 예비조사 후 주민들을 장기간 관찰해 심혈관 질환 원인을 찾는 계획을 했다. 장기간에 걸친 막대한 연구비용과 무의미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우려와 함께 의료계는 의료기관 통제나 진료 방해를 걱정해 협조를 주저하는 등 연구 시작에 어려움을 겪었다.

여러 난제를 극복하고 1948년 연구가 시작됐고, 프래밍햄 주민 중 5000여명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적극성을 보여줬다. 연구자들은 곧 실수를 알게 됐는데 자발적 참여자들을 대상으로 할 경우 정확한 인구집단을 대표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연구 대상자를 전체 주민 중에서 무작위로 다시 선정해야 했는데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우여곡절이 계속되면서 연구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이 늘어났다. 일부 의사들은 ‘바보같은 프로젝트’라고 부르기도 했다.

어려움에 빠진 프래밍햄 연구를 재구축한 것은 내과 의사인 도버였다. 도버는 지역 주민 대상 연구에는 의료진과 주민의 참여를 핵심적으로 생각하고 대화와 협력에 힘을 기울였다. 도버의 노력으로 의료진과 주민이 협조하면서 연구는 계속될 수 있었다. 10여년이 지난 1961년 고혈압, 고지혈증, 흡연, 심전도 이상이 심혈관 질환의 위험인자임을 밝혀냈다. 고혈압, 고지혈증 등이 심혈관 질환의 발생을 높인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었지만 명확한 ‘위험인자(risk factor)’로 확인된 것은 프래밍햄 연구 결과였다. 이후 위험인자라는 단어는 전 세계 의학계에서 흔히 사용되는 용어가 됐다.

프래밍햄에서의 연구는 그 이후 수십 년 동안 계속돼 1971년 연구자들은 처음 연구에 참여한 사람들의 자녀들을 연구 대상에 포함시켰고 2002년에는 손자세대 5천여 명이 포함됐다. 3세대에 걸친 연구는 고혈압과 심혈관 질환에 큰 기여를 했다. 수천 건의 논문들이 발표되면서 프래밍햄은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 중 하나가 됐다.

프래밍햄 연구 이전에는 혈관이 단단하게 굳어져가는 현상은 노화과정으로 피할 수 없으며, 좁아진 혈관을 통과하기 위해서 심장의 펌프압력이 높아지기 때문에 고혈압이 발생한다고 믿었다. 프래밍햄 연구를 통해 혈압과 고지혈증을 조절하면 심혈관 질환 발생을 낮출 수 있다는 개념이 생기면서 여러 약물이 개발됐다. 미국에서는 1960년대 10만 명당 515명이나 되던 심혈관 질환 사망률이 2010년에는 254명으로 감소했다.

과거 의학연구는 경험적 치료법을 수집 정리하는 방식이었으며 장기적인 추적 관찰로 분석한 연구는 드물었다. 동양에서도 <본초강목> 등은 약초 경험을 모아서 편집한 것이고, 허준의 <동의보감>도 수백 권의 의학서적을 인용해 새롭게 편찬한 것이다. 구한말 이제마에 이르러서 체질을 4가지로 분류하며 질병의 양상이 다를 것이라는 생각을 시작했는데, 분류법의 주관적인 한계로 현재까지도 객관화 시키려는 노력과 함께 2000년대 이후 몇 차례 추적관찰 연구가 시도되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도 장기 추적 연구가 시도됐는데 1986년 강화군 초등학교 1학년을 선정해 현재까지 30년 동안 추적 관찰한 연구가 있다. ‘강화 연구’라고 불리는 이 연구는 소아 시기의 비만, 고지혈증, 혈압 상승이 성인기에도 영향을 준다는 결과를 밝혀냈다. 

장기간 추적 연구의 핵심은 주민의 참여다. 수십 년간 의료기관을 방문해 건강 검진을 하는 일, 어떻게 보면 간단할 수 있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장기 연구는 많은 비용이 들어가며 프래밍햄 연구는 초기 50만 달러(현재 가치로 약 350억원)라는 거액의 연구기금이 있었기에 추진될 수 있었다. 현재도 매년 수백만 달러의 연구비가 들어가는 거대한 연구 사업이다. 지역사회 사업으로 문화체육시설 건축이나 축제 개최도 좋은 일이겠지만 프래밍햄 연구와 같은 지역 중심 연구를 기획, 추진하는 것도 지역사회 발전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질병 예방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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