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 8월 4일 경향신문에 실린 로딕신 광고.

언제부터 고혈압을 치료해야 할 것인가는 오랜 숙제였다. 1900년대 혈압 측정이 시작되면서 높은 혈압이 사망률을 올린다는 사실이 밝혀진 이후에도 혈압을 낮추려는 시도는 쉽지 않았다. 혈압이 올라가는 현상 자체가 질병이라기보다 자연스러운 생리과정으로 잘못 생각했기 때문이다.

신장의 이상과 동반된 아주 높은 고혈압은 뇌혈관 질환을 유발시키는 악성 고혈압으로 불리기도 했다. 반면 나이가 들면서 혈압이 서서히 증가되는 경우 양성 고혈압으로 부르기도 했다. 양성이라는 의미가 양호하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으므로 질병의 인식에 대한 심각성이 낮았다는 것을 뜻한다.

1900년대 초반 항생제가 개발되면서 전염병이 감소했고 주된 사망 원인이 심혈관 질환으로 바뀌게 됐다. 특히 미국의 경우 1950년까지 국민 3명 중 한 명꼴로 심혈관 질환이 발병했다. 1945년 미국 대통령이었던 루즈벨트는 2차 세계대전 종전을 얼마 앞두고 고혈압으로 인한 뇌출혈로 급사하기도 했다. 저염식과 채식, 안정 등의 생활요법으로는 혈압을 낮추는데 한계가 있었고 확실한 치료제가 필요했다.

인도에서는 뱀에 물렸을 때 수천 년 간 사용되던 약초가 있었다. 인도사목으로 불리는 이 약초는 심신을 안정시키는 진정 효과가 있었다. 1931년 인도의 의사들이 약초 뿌리를 갈아서 두통과 높은 혈압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복용시키자 혈압이 낮아지면서 두통이 사라지는 것을 발견했다. 1953년 혈압 약으로 출시된 이 약품은 리설핀이란 물질로 국내에도 1956년 셀파질과 로딕신 등의 상품명으로 판매됐다. 그러나 인도사목에서 추출된 물질은 어지러움증, 우울증, 변비 등의 부작용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안전한 의약품이 필요했다.

1956년 12월 20일 동아일보에 실린 셀파질 광고

짠 음식을 많이 먹으면 혈압이 올라가기 때문에 저염 식이요법으로 어느 정도 혈압을 낮출 수 있다. 만일 저염식으로 혈압이 조절되지 않을 경우 짠 성분을 몸 밖으로 빼내면 혈압을 더 낮출 수 있을 것이다. 실제 1957년 티아자이드 이뇨제가 혈압을 안정적으로 낮춰준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임상적으로 고혈압 환자에게 사용되기 시작했다. 티아자이드 이뇨제는 비교적 부작용이 적었고 현재까지도 혈압 조절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흥분하거나 긴장할 경우 교감신경계의 기능이 활성화 되면서 혈압이 상승한다. 효과적인 고혈압 약물이 없었던 시절에는 교감신경을 일부 절제하는 수술로 높은 혈압을 낮추기도 했다. 1900년대 초반 교감신경 말단 부위에 분비되는 신경 전달 물질이 세포에 특정 부위에 작용하는데 두 가지 서로 다른 형태가 있다는 것이 발견됐다.

그리스어의 첫 번째, 두 번째 글자인 알파, 베타라는 이름을 붙였다. 1960년 영국의 제임스 블랙은 두 번째 베타 부위를 차단할 경우 심장 박동수를 감소시키고 협심증을 조절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가설을 세운 뒤 베타 차단 물질을 개발했는데 협심증뿐 아니라 혈압 강하에도 효과가 있었다. 신약 개발을 위해 수많은 약초나 화학물질을 분석해 시행착오 끝에 성공하는 방식이었다.

특정 부위를 선정해서 해당 분야에 효과를 나타내는 성분을 찾아내는 것은 획기적이었으며 의약품 개발에 큰 변화를 줬다. 블랙의 베타 차단제 개발 이후 효과적인 고혈압 치료제들이 속속 개발되면서 정상 혈압을 유지하는데 도움이 됐고 고혈압의 합병증인 혈관계 사망률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경우 2000년 의약분업 이후 의료기관을 방문하는 국민이 증가하면서 고혈압을 알게 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1998년에는 20.4%에 불과하던 치료율이 2013년 62.3%로 3배 이상 증가했다. 그러나 고혈압 환자가 정상 혈압을 유지하는 적절한 조절률은 45%에 불과해 뇌혈관 사망률은 2006년 인구 10만 명당 61.8명에서 2015년 48명으로 22.3%나 감소한 반면 심혈관 질환 사망률은 큰 변화가 없다.

고혈압은 혈압 약을 복용하는 것뿐 아니라 적절한 혈압 유지와 합병증 유무에 대한 주기적인 관리가 필요한데 약만 복용하면 치료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고혈압 환자는 의료기관을 주기적으로 방문해 혈압 점검뿐 아니라 심혈관계 상태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 혈압 약만 먹는다고 고혈압 치료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고혈압 약품 복용은 혈압 조절의 시작일 뿐이며 더 중요한 것은 높은 혈압으로 발생하는 각종 합병증을 예방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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