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면 사람들은 저마다 정성이 담긴 선물을 준비해 가족뿐 아니라 지인에게 전한다. 당연히 고마움의 뜻이 담겼을 것이다. 명절에 선물을 주고받는 관례가 언제부터 생겼는지 명확하지 않지만(국립민속박물관 자료에는 설날에 선물을 주는 유래는 조선시대 설 그림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함) 분명한건 지금은 선물이 하나의 추세가 된 것만은 분명하다.

현대사를 보면 선물이 가지는 의미는 많이 변한 듯하다. 한국전쟁후 먹을 것이 부족했던 시절 명절 선물은 계란에서 기름진 돼지고기 한 묶음까지 대부분이 생필품이었다. 먼 곳 마다하지 않고 찾아온 가족도 반가웠지만 그 손에 들린 작은 선물하나는 더 없이 귀한 것이었음에 분명하다.

경제개발이 본격화된 20세기 후반. 우리 주변에는 먹을거리가 풍성해졌다. 지금처럼 화려하지도 대형화되지도 않았지만 작은 가게가 골목 곳곳에 자리 잡았고, 생필품은 돈만 있으면 언제라도 구할 수 있었다. 이 시기 선물은 쉽게 구하지 못하는 특별한 것. 외국 어느 나라에서 넘어왔다는 ‘코~오피’세트, 느낌이 보들보들 한 유럽산 원단부터 국내에서 본격 생산되기 시작한 각종 조미료세트, 양말세트도 좋은 선물이었다.

21세기에 들어서 대한민국에서 선물은 그저 정을 담아 감사함을 전하는 수단을 노골적으로 넘어섰다. 유사 이래 선물을 뇌물로 사용하지 않은 시대가 없었겠나 싶지만 이 시기에 접어들어 선물의 목적은 화려한 포장만큼 다양해졌다. 명절을 전후해 주고받던 행위는 일상의 소소한 ‘꺼리’가 됐으며, 담겨진 내용물은 계란도, 외국산 ‘코오피’세트에도 머물지 않았다.

특히 일부(?) 고관대작에게 주는 선물은 ‘헉’ 소리가 절로 나올 만큼 정성(?)이 담기지 않으면 아니 준만 못한 결과가 되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같은 물건이라해도 선물용이라면 더 비싼 것을 구입해야 했다. 선물 시장은 급격히 커졌다. 정성만 담으면 된다는 순수한 마음은 한해가 멀다하고 오르는 선물가격에 부담감으로 바뀌었다.

일부 고관대작들뿐 아니라 이해관계에서 갑 위치를 선점한 이들은 선물을 종용했고, 그 선물의 대가로 원하는 것을 도와주기도 했다. ‘선물’을 매개로 한 온갖 비리가 결국 사회적 문제로까지 커지자 나라가 나섰다.

주고받은 선물 가격까지 정했다. 받지 말아야 할 사람, 주지 말아야 할 사람까지 규정했다. 이른바 ‘김영란법’이란 틀을 통해. 그리고 이 법이 시행된 이후 처음 맞은 명절. 2017년 새해, 용인시가 달라졌다. 그동안 명절이면 기자 등에게 보내던 선물이 사라졌다. 다른 관공서도 마찬가지다. 일부에서는 갑자기 사라진 명절 선물에 서운함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그래도 반기는 목소리가 더 많은 듯하다. 사람은 응당 받으면 고마움의 마음을 가지기 마련이다. 선물을 주는 사람 역시 ‘고마움’ 혹은 그 이상의 것을 은근히 기대할 것이다.

용인시가 명절 선물을 보내지 않은 이유는 명료하다. 김영란법에 따른 것이다. 그래도 법에 정한 금액만큼의 선물은 무방하겠지만 용인시는 이마저도 차단했다. 선명한 관계를 만들겠다는 의지로 이해하고 싶다.

용인시의 이 같은 의지에 공감하면서도 한편 걱정스러운 부분이 있다. 지역경제다. 선물 문화가 변한다고 당장 지역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주는 것은 아니겠지만 영향을 받은 시민은 없는지 두루두루 살펴야 할 것이다.

매년 명절은 찾아온다. 추석지나 다시 설, 그리고 다시 추석. 용인시의 초심이 긴 시간 변하지 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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