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4월 12일, 별장 안락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하면서 지인들과 대화를 나누던 63세의 노신사는 오후 1시경 뒷머리가 뻣뻣해지는 심한 두통을 호소하면서 쓰러졌다. 환자는 즉시 병원으로 이송됐고 응급실에서 측정된 수축기 혈압은 350mmHg이었다. 이 노신사는 회복되지 못하고 오후 3시 사망했다. 환자의 이름은 프랭클린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이었다. 현재 수축기 혈압의 정상 상한선을 140mmHg로 생각한다는 사실을 비교해 보면 루즈벨트 대통령의 혈압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수준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을 앞둔 시점에서 연합군 중심축인 미국 대통령의 급사는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줬고, 미국은 그야 말로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었다. 1950년대까지도 고혈압의 위험성은 간과됐고 효과적인 치료 방법도 없었기 때문에 루즈벨트 대통령이 고혈압으로 쓰러진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서구에서 혈압 측정이 시작된 것은 18세기였으나 이전에도 혈압 상승에 대한 다양한 기록이 존재한다. 특히 진맥을 중요한 진단 방법으로 사용했던 동양에서는 강한 맥이 촉지되는 현상과 고혈압 증상 중 하나인 두통이 뇌혈관 질환으로 진행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다. 두통 원인으로 내부의 ‘담’이라는 가상 물질의 정체로 이해하거나 ‘신허’라는 개념 등 다양한 설명을 시도했다. 두통에 대한 대증 치료로 진통 성분의 약초를 활용하거나 마음의 평안을 권장하며 과도한 열기 제거를 위한 사혈 요법이 시도되기도 했다.

고혈압 기록이나 대응은 서구도 비슷하며 히포크라테스는 맥이 강하게 촉지된다. 두통이 발생할 경우 과도한 육식을 자제하고 채식을 권장하는 생활요법과 나쁜 피를 제거한다는 의미로 피를 뽑아내는 치료를 했다. 이런 사혈 요법은 다양한 질병 치료 방법으로 동·서양 모두에서 사용되는 공통된 치료법 중 하나였다.

강한 맥 등으로 표현되던 것이 혈압을 수치화 해서 객관적 측정이 시도된 것은 1733년이다. 영국의 헤일스라는 성직자가 말 동맥에 파이프를 연결해 약 3미터까지 혈액이 올라간 현상을 관찰한 것이다. 헤일즈의 실험 이후 사람에 대한 혈압 측정 방법이 연구되기 시작했다. 동맥 부위에 가느다란 탐침을 설치해 맥박 변동이 기록되는 맥진기라는 장비를 이용해 맥파의 높이로 혈압을 측정하기도 했다. 이후 19세기 중반 혈관을 눌러줬을 때 혈액순환이 멈춰지는 순간의 압력이 바로 혈관 압력이라는 개념을 발견하면서 현대식 혈압계가 개발되기 시작했다. 1905년 러시아의 코로트코프가 혈압을 측정할 때 잡음이 생기는 현상을 발견하면서 현재와 같이 수축기 혈압과 이완기 혈압을 모두 측정할 수 있게 됐다.

현대식 혈압계를 활용한 혈압 측정이 시작되면서 그 원인에 대한 탐구도 진행됐지만 혈압이 높다는 점이 어떤 의미인지는 명확하지 않았다. 한때 의사들조차 높은 혈압이 건강한 사람이라는 잘못된 믿음을 가진 시절도 있었다. 1874년 영국의 마호메드는 여러 환자들의 맥파를 분석해 신장의 이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혈압이 올라가기도 하며 높아진 혈압이 심장과 신장의 압력을 가해 변형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마호메드가 발견한 고혈압은 현재에도 사용되며 많은 고혈압 환자들의 병명인 ‘본태성 고혈압’이다. 원인 없이 증가된 혈압은 나이가 들수록 높아지고 결국 심장과 신장, 뇌혈관에 손상을 줬다.

높은 혈압의 위험성이 알려지면서 가장 먼저 활용한 곳은 보험회사였다. 1900년대 초반 미국 보험회사들은 생명보험 가입 시 혈압을 측정했는데 혈압이 높을수록 사망률이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보험회사 입장에서는 가입자가 사망할 경우 수입이 줄어들고 지출이 늘어나니 매우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보험회사들은 혈압을 다양한 그룹으로 분류해 분석했다. 1939년 수축기 혈압이 108~137mmHg인 경우에는 전체 평균보다 사망률이 낮았지만 153mmHg 이상일 때는 평균보다 3배 이상 높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러나 혈압을 낮추는 방법은 저염식과 안정과 휴식뿐이었고 몇 가지 약품이 개발돼 시도됐지만 부작용으로 보급되지 못했다. 루즈벨트 대통령 역시 안정과 휴식을 취하면서 채식 위주의 식사를 했지만 뇌출혈로 사망했다. 미국 대통령까지 쓰러트린 고혈압은 치료돼야 할 질병임이 명백했고 많은 과학자들은 그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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