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름엔 재미있는 것들이 많다.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이 땅이름에 붙기도 하고 심지어 상스럽거나 촌스러운 이름까지 지명으로 옮겨가기도 한다. 용인 관내에 있는 쥐산이나 쪽박산, 공알바위나 불알배미, 개고개 등도 그중의 한 예가 된다.

기름고개(油峴)와 방울고개(鈴峙)도 비슷한 지명인데 기름고개는 수원으로 넘어간 이의동에 있고, 방울고개는 수지구 상현동에 있는 고개이름이다. <조선지지자료>에는 기름재고개와 방울재로 나와 있다. 기름은 참기름이나 들기름처럼 가정에서 상용하는 것들이다. 석유나 경유도 기름이라고 하지만 예전에는 없었던 것이다. 개화기 이후에 들어왔으니 잘해야 역사가 100여년을 넘길 수 있을 뿐이다.

기름은 보통 쌀을 찧는 방앗간이 아닌 떡 방앗간에서 짠다. 참깨나 들깨를 볶은 다음 기계에 넣고 유압(油壓)을 이용해 압착하면 기름이 흘러나온다. 하지만 예전에는 이런 기계가 없었다. 

나무에 홈을 파고 아래편에 구멍을 잘게 뚫은 다음 깨를 볶아 절구에 찧어 베보자기에 싸서 그 안에 넣고 위에서 디딜방아공이처럼 생긴 것으로 눌러 힘을 가해 기름을 짰다. 위에 가로막대기를 걸치고 맷돌이나 무거운 물건을 올려놓아 압력을 높였는데, 기름은 지금보다 훨씬 귀하고 비용이 많이 드는 재료였다.

기름고개나 기름재의 유래에도 당연히 기름이 등장한다. ‘옛날 어떤 사람이 기름을 사가지고 재를 넘다가 마루턱에서 넘어졌는데 주위가 온통 기름으로 범벅이 됐다’는 식이다. 그 귀한 기름이 얼마나 많았으면 주위가 온통 기름으로 흘러넘쳤을까? 지금이라면 혹시 가능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기름고개나 기름재는 본디 지름고개나 지름재이다. 질러가는 고개라는 뜻이다. 이는 긴등이 진등이 되고, 긴밭이 진밭으로 변화되는 것과 반대의 경우가 된다. 지름이 기름으로 변화된 것이다. 충북 충주에는 계립령이라는 고개가 있다. 역사상으로 고구려와 신라가 쟁탈을 벌였던 요충지인데, 고구려의 온달이 “계립현(鷄立峴)과 죽령의 서쪽이 우리에게로 돌아오지 않으면 나도 돌아오지 않겠다”라고 했던 말이 역사에 남아 있다.

현지에서는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데 지릅재나 지름재, 또는 기름재라고 하며 한자로는 유티(油峙)나 경티(經峙)로 쓰기도 한다. 기름재의 뿌리가 지름재임을 나타내는 것이고, 경(經)은 지름재의 뜻을 살려 옮긴 표기가 된다.

방울재 역시 당연한 것처럼 방울과 연결시키고 있다. 영월로 넘어가는 방울재는 단종 임금이 귀양갈 때 타고 가던 말에서 방울이 떨어졌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라는 유래가 있다. 방울보다 말이 더 컷을 텐데 왜 말고개나 마재라고 하지 않았을까. 임금이 지나갔으니 왕재나 왕고개가 될 수도 있고.

방울재는 바늘재의 변음으로 생각된다. ‘가늘고 긴 고개’ 정도의 뜻이 있을 것이다. 실제로 바늘고개도 여러 군데 있는데 바늘재>바눌재>반울재>방울재로 바뀐 것이 아닌가 한다.

기흥구 하갈동의 쑥고개는 쑥이 많은 고개가 아니라 속고개의 변음이다. 작은 골짜기 안에 있는 고개인 것이다. 처인구 이동면 묵리에는 염치(鹽峙)가 있다. 소금고개이니 소금장수들이 넘나들었던 고개라는 설명이 뒤따를 것이다. 하지만 1900년대 초반의 1:50000지도에는 염치(廉峙)로 나온다. 소금과 관계없는 표기인 것이다.

예전에는 진종일 인적이 끊이지 않던 고갯마루가 지금은 잡초 속에 묻혀 있다. 그런가하면 소달구지도 못 지나던 오솔길이 8차선 대로가 지나는 고개가 돼 있다. 세월이 흘러 고갯길이 크게 달라지는 것처럼 지명 유래 또한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염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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