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암(窟巖)은 처인구 이동면 묵리에 있는 마을이고 구람말은 호동에 딸린 마을이다. 또 양지면 송문리에 송동(松洞)으로 불리는 마을이 있는데, 예전에는 구란이라는 이름으로도 많이 불렀다.

굴암은 마을 위에 있는 용덕사를 굴암절이라고 부를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는 지명이다. 실제 절 위쪽에 용이 승천했다는 용굴이 있고, 지금은 거의 무너졌지만 예전에는 서너 명이 충분히 들어가 앉을 정도로 넓은 암굴이 남아 있다. 굴암이라는 지명은 용굴에서 비롯된 이름이라는 설명이 많은데 일부이지만 마을 뒤 암굴에서 비롯된 이름이라는 이들도 있다.

구람말은 마을 입구 표석에 호동이라고 쓰고 구람말이라는 우리말 이름을 병기해 놓았다. 호동은 동부동에 속해 있는데 예직·용해곡·길업마을과 더불어 호동을 이루고 있다. 호동 또한 호1통에 속하는 자연마을을 겸하고 있다. 호동은 범앙굴이라는 우리말 이름으로도 불리는데 구람말을 가리키는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하지만 구람말의 유래에 대해서는 뚜렷한 설명이 없다.

양지면 송문리의 구란은 다음과 같은 유래를 가지고 있다. 마을 건너편 남쪽에 있는 형제봉꼭대기에 굴이 있는데, 그 굴에 들어가서 밖을 내다보면 동동마을만 보이기 때문에 구란이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이를 보면 세 마을 모두 각기 다른 유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어느 정도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되는데 세 마을 모두 발음이 비슷한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는 마을 이름이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반증이고 실제 모두 골짜기[谷] 안에 있는 마을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즉 골짜기 안이라는 뜻의 골안이 골안>구란>구람>굴암으로 바뀐 것으로 보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세 마을의 이름이 같은 뜻을 가지는 지명임이 확실해지고 지명 뿌리도 같다는 것이 확연하게 드러난다.

원삼면 두창리에 주내(州內)라는 자연마을이 있다. 예전에 한 고을의 소재지였다고 해서 고을 주(州)자를 쓰고 있기는 하지만 고을이 아니라 골짜기 안[谷內]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굴암의 경우도 굴(窟)과 바위를 뜻하는 암(巖)자를 쓰고 있기 때문에 용굴과 연관이 생겨난 듯하다. 하지만 굴암마을이 있는 묵리 골짜기 안에는 굴암마을 이외에도 여러 마을이 있기 때문에 굴암의 뜻이 골짜기 안에 있는 마을이라고 하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하다. 다만 현재는 알기 어렵지만 묵리 골짜기 안에서 가장 먼저 생긴 마을이라면 가능성이 더 높아질 수 있을 것이다.

호동의 구람말도 골짜기 안에 있는 마을일 가능성이 크다. 범앙골은 ‘범+앙골’로 나눠 볼 수 있는데 뒷부분의 ‘-앙골’은 안골, 즉 안에 있는 골짜기라는 뜻으로 풀이가 가능하다. 앞의 ‘범-’은 ‘벋- ’으로 볼 수 있는데 이를 지명풀이에 대입하면 범앙골은 ‘능선이 뻗어 내려온 안쪽에 있는 마을’ 정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송문리 구란도 마을 건너편의 굴 안에서 보여서 생긴 이름이 아니라 말 그대로 골짜기 안에 마을이 있어서 생겨난 지명일 가능성이 훨씬 크다. 실제로 작기는 하지만 골짜기도 있고 사람이 살았던 집 터도 남아 있다. 마을의 역사가 오래되면 지명도 같은 연륜을 가진다. 사람이 살면서 여기저기 땅이름이 생겼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마을 형상과 예전의 마을 배치가 같다고 볼 수는 없다. 골짜기에 있던 집들이 사라지는 수도 있고 사람이 살던 마을이 옮겨가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집이 없어지고 마을이 사라져도 그 흔적은 땅이름으로 남는 경우가 많다. 그조차 세월이 오래되면 사라져버린다. 바로 이점이 우리가 땅이름을 아끼고 사랑해야 할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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